바둑일기 134, 나무꾼과 선녀

4단 파일함의 젤 위층이 열려진 채 속의 담배종류들이 보이는 채 열쇠는 꽂혀있다. 원장이 항상 잠그고 다니는 곳이어 원장이 없을 때는 사범에게도 키를 안 맡기어 담배를 인근 편의점에서 사다 펴야 할 정도로 끔찍이 신경 쓰며 관리하는 것인데 늦은 시간에 집에 가기 바빠 깜빡 잊으셨나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범에게 열쇠가 꽂힌 채 담배 서랍이 열려있다고 하자 아직 퇴근을 안 하셨을 거라며 화장실을 찾아본다. S대를 나왔다는 사범도 이젠 나이가 많아 저리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일까? 내가 서랍을 닫고 열쇠를 빼 올려놓는다.

점심 무렵 군대예기 국보위시절 예기 등을 한 바퀴 돌다 예기는 결국 625때 이야기로 당신은 초등 1학년 들어간 지 20일 만에 전쟁이 발발해 피난을 안가고 할머니와 둘이 서울에 있었다는 12년 선배인 원장의 이야기와 국방부라 불리는 영감님의 군 시절 이야기 등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원장이 안 계신 때 나라도 챙겨드려야 할 입장이다.

“아니 전 사범님하고 이 선생님은 평소 좋은 사이인줄 알았더니 그리 무자비하게 바둑들을 두세요?” 평소 친하게 다니시는 두 분이 반상에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의 실수를 무참하게 짓밟으며 차이를 벌리거나 되지도 않는 자리에 신경을 거슬리며 흔들어 진짜 살아버려 상대를 무참하게 만든다. “이 양반이 원래 이렇게 나쁜 사람이야.”라며 서로 웃으며 계속 반상에 눈길을 싣는다.

곁에서 보기에는 저리 내용도 없는 바둑을 무의미하게 시간을 오래 끌며 소모하는 것일까 싶으며 구경하기도 시간이 아까운 졸작이다.

집에 가 쉬는 것이 낫지 싶으면서도 조금 더 있지 싶어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10시가 넘자 빛나리가 들어온다.

보쌈집 오토바이 배달을 밤 10시 까지 마치고 이제 오는 것이다. 눈가는 벌겋게 충혈된 채 상당히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다. 가락 인근만 배달하는 것이 아니고 수서 장지 강동구의 올림픽 아파트까지 배달을 다닌단다. 전국 200여개의 체인이 있어서 본부에서 연락을 주면 가야 한단다. 오토바이를 타면 바람에 날리는 것 같아 무섭다는 그의 말에 잘 모르면서도 공감이 느껴진다.

다치거나 죽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는 그의 말은 오토바이 타는 것을 무서워하면서도 할 수 없이 타야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이겠지.

보쌈집 배달은 중국집과 또 달라 갖다 주기만 하면 남는 것이고 인건비도 적어 최근 새로 차린 왕갈비 보다 매출이 두 배는 된다는 그의 말은 나름 정확한 정보이겠지.

보쌈집사장은 내게 선7목인데 바둑은 약해도 나름 철학이 있다. 자신은 젊어서 하루에 만원씩 매일 저금을 했었다던 그의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벌어놓은 사람의 이야기는 다 옳은 말씀이 되는 것이겠지.

이쪽에선 8명의 편 바둑 저편에선 하급자 네 명의 편 바둑, 그 외 개인전에 열중인 이들, 토요일 야심한 시각에도 기원은 북적거린다. 주중에는 장애인 재활센터에서 있다가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 귀소시간까지 휴가라는 조 씨는 재활센터 명찰을 목에 건채 집에도 안가고 이곳에 먼저 들려 수담을 나눈다.

저쪽 끝에선 치과 임 원장과 전 사범이 편 바둑에 열중이다. 주말이면 집에서 가족과 같이 보내는 것이 상식인 구미와 달리 주말이면 늦은 시간에도 이곳에 모여 저리 바둑에 열심인 이들은 바둑을 사랑하는 기우여서일까? 한국인이어서 일까?

언젠가 미국이민시절 만약 한국에 돌아갈 기회가 있으면 제일가고 싶었던 곳이 기원이었던 생각이 난다. 나야 원래 그런 사람이었지만 저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 같은 것일까?
하긴 미국에서도 위켄드(금요일 오후 부터 일요일저녁)에는 코리아타운의 모든 한인들이 L.A올림픽기원에 모였엇지. 주유소 강사장, 철공소 사장, 봉제공장 사장, 나가시 택시기사 정사장.. 그들은 L.A 폭동때는 목숨을 걸고 서로 지켜주기도 했었지.

애기들 하나는 스키장에 갔고 하나는 영화관에 갔는데 자신은 이제 치우기 시작할 거라며 더 있으려면 더 있으라는 처의 말이 내게는 가장 큰 위안을 준다.

나를 이해해 주는 이는 이 세상에 저 사람밖에 없지!

처의 대학시절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다.

나무꾼과 선녀의 선녀가 하강하던 모습 같아서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