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스승의 무덤을 돌보고 텃밭을 가꾸어 농사를 지었다. 드문드문 소문을 듣고 동삼에게 바둑을 청해 오는 사람이 있긴 했다. 동삼은 바둑을 두고자 사람이 찾아오면 상대방 실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상대해 주었다. 그러나 워낙 벽촌이 되어서인지 그런 목적으로 고가를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고가에서 제일 먼저 사귄 사람은 열 살 난 종열이라는 아이였다. 스승의 무덤을 오르내릴 때 가끔씩 눈에 띄는 아이였다. 아이는 볼 때마다 등에 망태기를 지고 있었고 손에는 호미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외톨이였다. 처음에는 무심코 보던 동삼이 항상 혼자 다니는 아이를 보자 조금씩 아이에게 관심이 쏠렸다. 어린아이가 망태기를 메고 꼴을 베는 모습이 조금은 측은했다.

그럭저럭 얼굴이 익자 아이는 고가 주위를 얼씬거리기 시작했다. 동삼이 밭일을 하고 있을 때면 불쑥 모습을 드러낸 뒤 한동안 주위를 서성이기도 했고 때로는 삽짝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한번은 삽짝 밖에서 얼쩡거리는 아이를 동삼이 불렀다.

「얘야, 이리 들어와 보렴.」

동삼의 손짓에 아이가 쭈삣거리며 들어온다.

「같이 놀 친구가 없느냐?」

아이는 대답이 없다. 그냥 고개만 끄덕인다.

「이름이 뭐냐?」

「종열.」

아이의 음성은 맑았다.

「왜, 친구가 없니?」

「걔들은 날 상대해 주지 않아요.」

「왜?」

「우리 아버지가 소작농이라고 놀려요.」

뒤에 알게 된 사실은, 종열이는 여섯 살 되던 해 어머니를 병으로 잃고 줄곧 경기도 평택에 있는 외가에 얹혀 살았다. 그때까지 외지에서 떠돌아다니던 종열의 아버지가 어디서 여자 하나를 데리고 나타나 아이와 함께 이곳까지 소작농으로 흘러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여러 모로 종열이는 이곳 토박이 아이들과는 이질적인 요소가 많았다.

「저, 아저씨. 하나 물어 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물어 봐.」

「아저씨는 왜 이런 외딴 집에서 혼자 사시는 거예요?」

「아저씨는 옛날에 여기 살았단다.」

「그럼 아저씨 집으로 돌아온 겁니까?」

「그래.」

아이의 눈에 호기심이 반짝거린다.

「아저씨, 이건 바둑이지요.」

아이가 손으로 바둑판을 가리킨다.

「그래. 바둑을 아느냐?」

「이장님 집에서 몇 번 구경한 적이 있어요.」

「두 집을 내야 산다는 건 아느냐?」

「예.」

「단수는?」

「알아요.」

「축도 아느냐?」

「예.」

동삼은 슬기에 가득 찬 아이의 눈망울을 들여다본다.

「바둑을 배우고 싶으냐?」

「예.」

「그럼 가르쳐 주마.」

불현듯이 처음 바둑을 배울 때 법고 스님에게 둔하다고 머리를 쥐어박힌 일이 생각난다. 종열이와 비슷한 나이였다.

빨리 안 둔다고 스님이 재촉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금방 따낸 패를 되 따내자 스님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야! 임마. 이놈 이거 희한한 놈이네. 패는 금방 되 따낼 수 없다고 몇 번을 말하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진 동삼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회돌이 축을 착각한 동삼의 돌을 무려 열 몇 개나 들어 내며, 골이 난 동삼의 얼굴을 보고 스님이 약을 올렸다.

「다 그런 설움을 받아야 바둑이 느는 게다.」

함지박만큼 벌리고 웃는 스님의 큰 입에 주먹이라도 들이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둑에 진 벌로 주전자를 들고 5리가 넘는 산길을 내려가 부락에서 막걸리를 사 오기도 했었다.

「스님. 호랑이가 나타나면 어떡해요?」

「이놈아, 호랑이를 만나면 법고 스님 심부름 가는 길이라고 해라. 그럼 호랑이가 길을 밝혀 줄 것이다.」

말은 그래 놓고 법고 스님은 늘 산 아래 초입에서 기다렸다. 동삼이 술 주전자를 쥐고 쫄랑쫄랑 올라오면 물었다.

「그래, 호랑이는 만났더냐?」

「만났습니다.」

「저런! 배고프다면서 잡아먹어야겠다고 하지 않든?」

「법고 스님 심부름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길을 밝혀 주던걸요.」

「하하하. 그놈 말하는 걸 보니 싹수가 있다.」

「왜 오셨어요?」

그 말에는 대답 없이,

「이리 다오.」

스님은 주전자를 받아 들었다. 산길을 올라가는 길에 스님은 목이 마르다며 한 주전자 가득한 막걸리를 다 비웠다.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며,

「주모가 술 주며 아무 말도 않더냐?」

「누가 마실 거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스님이 마실 거라고 했지요.」

「이 미련한 놈아. 스님이 술 마신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스님의 얼굴은 태평스러웠다.

「자꾸 이렇게 곡차에 맛들이다가 그나마 중노릇도 못해 먹는 게 아닌지 몰라…….」

스님은 껄껄 웃었다.

산이 울리도록 시원하게 웃던 웃음소리, 빤히 바라보던 노루 새끼가 놀라 후다닥 도망쳤다.

다리가 아파서 쉬면 업어 주곤 하던 법고 스님. 걸음을 장단 삼아 흥얼거리던 염불소리…….

30년이 다 된 까마득한 옛 기억이다. 그렇게 술 좋아하던 스님은 이제 가고 없다.

동삼은 틈틈이 아이를 가르쳤다. 대부분의 낮 시간은 스승의 무덤을 돌보는 일과 밭일을 하기에 시간이 넉넉치 않았지만 짬짬이 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아이의 자질은 보통이었다. 머리는 뛰어난 편인데 바둑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바둑에 흥미를 가지고 나서부터 배우는 데 열성을 보였다.

아이는 거의 종일 동삼의 주위를 맴돌았다. 서툰 손길로 동삼의 밭일을 거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스승의 무덤에까지 하루 종일 동삼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애들을 일러 보살의 화신이라고들 하더니……. 동삼은 아이의 천성이 투명한 유리처럼 맑고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동삼이 고가로 돌아온 지 1년이 넘어 봄이 되자 종열이는 근처 분교에 재입학을 했다. 쉬고 있던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예전처럼 자주 들르지 못했지만 가끔씩 들를 때마다 그 동안 겪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 때묻지 않은 천진무구함을 대하면서 동삼은 마음이 흐뭇했다.

그러던 중에 고수(鼓手) 노인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