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g){kind=logo}
나도작가
|
작가의 말[4회] 1부 침묵하는 바둑판 (4)
|
|
| 숱한 고수들의 바둑을 복기하며 그 영역을 더러 훔쳐보긴 했으나 직접 현실로 접하게 되니 기보를 대할 때와는 실로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승부는 미궁으로 빠지고 있었다. 국수의 눈은 타오르고 있었고 손끝에서는 투혼과 정염의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국수는 이미 노년이 아닌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다. 국수의 저 눈매, 저 손의 떨림, 저 흐느끼듯 가슴을 쥐어짜는 신음 소리. 국수의 상대는 박 화백이 아니었다. 국수의 상대는 그가 지금까지 싸워 온 저 무수한 승부사들이었다. 반상 위에는 숨막히는 고요와 처절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분노와 좌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희와 희열이 물결치고 있었다. 온갖 승부의 기운들이 일시에 반상위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박 화백은 반상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젖었다. 한 생애를 바쳐 이룩한 명인의 치열했던 삶을, 그가 걸어온 구도의 종적을 박 화백은 상기했다. 박 화백은 갑자기 맥이 풀리고 전의가 감소됨을 느꼈다. 어렴풋이 승부가 백 쪽으로 가고 있을 때 국수가 돌연 돌을 거두었다. 반상에는 거의 바둑돌로 가득 채워졌다. 박 화백이 고개를 들어 국수를 바라보았다. 국수는 어느덧 가부좌한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박 화백이 정 국수의 집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거의 새벽녘이었다. 그 날 밤 정 국수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며 박 화백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문제의 바둑판에 얽힌 의문으로부터 쉽게 달아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의혹과 바둑판에 대한 관심은 다음 달에 열릴 개인전 준비로 인해 점차 뇌리에서 희미해져 갔다. 그렇게 분주한 시간이 한 달 가까이 흘렀다. 정 국수의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삼청동 화실에서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돌아오던 날 자정 무렵이었다. 정 국수가 자신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급한 전갈이었다. 이 늦은 시각에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국수의 부름은 다시 한 번 박 화백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박 화백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성북동 정 국수의 자택으로 차를 몰았다. 정 국수의 사랑방으로 박 화백이 들어서자 국수는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국수는 몹시 쇠약해져 있었다. 지난번 초상화를 그릴 때에 비해 겨우 한 달이라는 시간이었건만 국수의 모습은 바로 대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국수는 보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다.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국수는 손을 내저었다. 방금 잠에서 깨어난 그의 얼굴은 퍼석퍼석 말라 있었고 이마 근처에서는 이따금씩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화백이 나에겐…… 마지막 인연인 것 같아…….」 호흡을 가다듬던 국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 |
|
아~따라와
서울 중구 퇴계로27길 28(충무로3가) 한영빌딩 6층 [사업자정보확인]
제호 : 사이버오로 I 발행인 : 곽민호 I 편집인 : 정용진 I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아02753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병준 I 발행일자 : 2013년 7월 26일
E-mail:oper@cyberoro.com Tel:02-2285-6950 (상담시간10:00~14:00) Fax:02-2285-6955
Copyright ⓒ 세계사이버기원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