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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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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16회] 4부 나타난 승부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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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아시오?」 「어떤 분의 소개를 받았습니다. 뭐 좀 여쭤 볼 게 있어서요.」 신 영감이 보던 책을 덮고 판 위의 바둑돌을 쓸어 담는다. 「말씀해 보시오.」 「혹시 추동삼 선생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보통 추 사범으로 통했던 모양인데…….」 「추 사범이라…… 알지. 소식이 끊긴 지 오래 됐어. 그 사람은 왜 찾소?」 「그분을 꼭 찾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지금 어디서 찾는단 말이오.」 「그분의 소식을 전혀 모르십니까?」 「옛날에 그 바닥을 흘러간 사람인데…….」 신 영감은 고개를 흔든다. 「혹시 그 사람을 아실 만한 분도 없습니까?」 「글쎄…….」 신 영감은 생각하다 말고 갑자기 몸을 일으킨다. 「갑시다.」 「예?」 「호랑이를 잡으려면 산으로 가야지. 소식을 알려면 알 만한 사람한테 가야 할 거 아니오. 따라오시오.」 신 영감은 가게문을 닫고 성큼 밖으로 나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앞서가던 신 영감이 파고다 공원 부근에서 발길을 늦추며 박 화백에게 말을 건넨다. 「세상에 아무리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은 이기지 못해. 추 사범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고수일 거야.」 「그렇게 강했습니까?」 「강하다 뿐이겠소. 나도 그 양반한테 한 번 당했지.」 「어떻게요?」 「그 양반과 내가 데려온 선수가 승부를 했지. 우리 쪽에서 선에 오목(흑으로 먼저 두고 다섯 집 공제도 받는 것) 잡혔는데 난 유리한 치수로 봤어.」 「그런데요?」 「100여 수 만에 끝났어. 우리 쪽 선수가 아예 판을 못 짜더라고.」 「그랬었군요.」 「황일태라고 일명 황태로 불렸었지. 거진(巨津) 출신으로 강원도 제일의 국수였는데 추 사범에게 걸려 그 지경이 되고 말았어. 황태 그 사람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황태.」 박 화백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황태란 말이 나온다. 「근데 추 사범은 왜 찾소?」 신 영감은 박 화백이 추 사범을 찾는 이유가 궁금한지 슬쩍 물어 온다. 「…….」 「말 못할 사정이 있나 보군 그래.」 박 화백이 대답을 못하자 신 영감은 스스로 말을 잘라 버린다. 사실 박 화백이 자신의 모든 일을 팽개치고 추동삼을 찾아야 할 이유는 엄밀히 말하자면 애매한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정 국수와의 약속이나 그런 당대의 명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충분한 이유일 수는 있겠으나 일반적 견해로 보면 개인전을 비롯한 급한 일을 모두 제쳐놓고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니는 박 화백의 행동은 그가 아무리 한때 바둑에 심취해 있었다고는 하나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긴 했다. 그러나 박 화백에게 있어 추동삼이란 인물은 자신의 모든 합리적 사고방식을 뒤로 한 걸음 후퇴시켰다. 보편적 사고와 감정을 마비시켜 버렸던 것이다. 모든 이성적인 판단 이전에 우선 그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관계로 박 화백은 추동삼을 찾아야만 하는 사연을 남들에게 사실대로 말하기가 거북했다. 굳이 정 국수와의 약속과 바둑판에 얽힌 비밀이 아니더라도 박 화백은 추동삼이란 사람을 함부로 거론하기가 싫었다. 언제부턴가 박 화백은 추동삼을 생각하면 가슴에서 작은 동계(動悸)가 느껴지곤 했다. 그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설레임이었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안타까움이었고 그림자 없는 무색의 신비로움이었다. 신 영감이 찾아간 곳은 낙원상가를 지나 운현궁 쪽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어느 부동산가게였다. 가게 안에는 그만그만한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바둑판을 앞에 놓고 묘수풀이를 하고 있었다. 문제를 제시한 사람으로 보이는 신 영감의 친구 송 영감은 신 영감이 나타나자 한쪽 눈을 찡긋한다. 송 영감은 평소에 묘수풀이 문제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중절모자를 쓴 중늙은이가 꼬깃꼬깃 손때가 묻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바둑판 옆에 놓고 바둑돌을 쥔다. 박 화백이 보기에 그 묘수풀이 문제는 일선에 내려서고, 끼우고, 배붙이는 세 개의 수순 중 한 수만 삐긋해도 백을 잡을 수 없는 고급 사활 문제였다. 돌을 쥔 중늙은이가 자신만만하게 착점했다. 첫 수는 정확했다. 송 영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수했다. 다시 중늙은이의 손에서 돌이 떨어졌다. 배붙임 수였다. 그 수는 일견 백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끼우는 수를 빠뜨린 잘못 된 착점이었다. 송 영감은 번연히 그 수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그때 중늙은이의 손이 돈 쪽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손끝에 돈이 닿을락말락했다. 중늙은이는 여차하면 돈을 들고 튈 기색이다. 송 영감이 중늙은이를 빤히 쳐다보자 중늙은이의 손이 돈에서 멀어졌다. 순간 송 영감이 돈을 탁 나꿔챘다. 그와 동시에 이미 판 위에는 백돌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마치 씨름선수가 상대편 급습에 균형을 잃고 휘청이듯 중늙은이의 상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 수로 살았잖아! 자네 오늘 돈 천 원에 큰 경험했네.」 중늙은이는 얼굴이 허옇게 떠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것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일장의 소극(笑劇)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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