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인과 조 쪼쭘바리가 막걸리를 세 통 비웠을 때 송강과 마공을 비롯한 독립군들이 연례행사 치르듯 우루루 몰려와 합석을 했다. 물론 술값은 전부 이 시인이 낸다.

「이 선생님, 마음은 좀 괜찮은교?」

결정적인 순간에 꼰(패착)을 둔다 하여 이름 앞에 꼰자가 붙은 꼰충호는 지난번 농사 사건 이후로 이 시인에게 말조심을 하는 편이나 천성이 워낙 괄괄하고 시끄러운지라 너스레를 떠는 버릇은 여전하다.

「비가 와서 그런 거 아인교?」

저녁 무렵에 정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이 울리기는 더 울리네.」

이 시인은 고뇌에 젖어 괴로워한다.

「마음이 그래가 우짜마 좋겠소. 아지매요, 막걸리나 몇 통 더 주소.」

「그래 비 올 땐 술이 최곤 기라. 고기도 좀 시키라.」

노 독립군 이 영감이 맞바람을 잡는다.

「충호야, 개는 없나?」

「아이고 영감님도. 비싼 개를 어디서 찾는교. 돼지머리라도 닥상이지.」

술과 고기가 들어오고 술판이 다시 벌어진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마공이 민수에게,

「박 사범, 신문 봤나? 주류회사 사장집에 폭발물 장치하고 돈 뜯어 낼라카던 아들 말이야. 글마들 머리 기차게 좋제. 그런 폭탄은 우째 만들었겠노. 좌우간 있는 놈들한텐 그기 약인 기라.」

지역 신문에 며칠 전부터 사회면 톱을 장식하던 사건이었다. 범인은 벌써 주류회사 사장집 현관에 사제폭탄을 터뜨리고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며 불응할 시 다음엔 집을 폭파해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나섰다. 경찰 쪽에는 초비상이 걸렸고 주류회사 사장은 범인의 소재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그 당시로선 거액에 속하는 200만 원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공산당도 아이고 폭탄을 진짜 우째 만들었겠노.」

「그라이 기찬 놈들이라 안 카는교.」

이 영감의 말에 팔수가 대꾸한다.

마공이 술을 한잔 비운 뒤 다시 민수에게,

「박 사범. 우리도 하나 만들어 가꼬 들이대까? 맨날 바둑만 둔다꼬 돈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마공의 말투가 농 비슷하다. 송강의 안색이 불편해진다.

「근데 글마들 와 그런 짓을 했겠노?」

꼰충호가 걸신들린 놈처럼 안주를 집어먹다가 무안한지 젓가락을 놓으며 물어 본다.

「와 그라기는 세상이 좆 같아서 그랬겠지.」

「세상이 좆 같아도 그런 방법은 안 되지.」

서서히 송강과 마공의 싸움이 시작된다.

「안 될 거 있나! 어차피 개 좆 같은 세상에 무슨 짓인들 못하겠노!」

마공의 말투는 니글니글하다. 그냥 하는 욕도 질근질근 씹어서 한다.

「세상 탓하지 마라. 세상이 뭐 어쨌길래 세상 탓이고.」

송강의 어법은 정확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좀체로 흥분하지 않는다.

「세상 탓 좀 하자. 좆 같은 세상 좆 같다 카는데, 내 말이 뭐 잘못 됐나.」

「좆 같은 세상이라도 자꾸 세상 들먹이지 마라. 사내가 세상이 어떻고 하면 구역질이 난다.」

송강이 한 시비 올린다. 마공이 담배를 물고 천천히 불을 붙인다. 사람들이 마공을 주시한다.

「좆도 아인 놈들이 도통한 척하면서 폼 잡는 기 요즘 세상 아이가. 돌아서마 돈밖에 모르는 놈들이 알고 보이 천하에 둘도 없는 도덕군자같이 행세하더라꼬.」

송강은 마공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마공, 뭐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인다고 자네 마음에 따라 그만큼 보일 뿐이야. 생각 한 번 잘못하면 집안 망치고 몸 망치고 종국에는 폐인이 되는 기라.」

「용담도사가 또 나왔구만. 학창 시절에 데모까지 했다 카는 사람이 와 그 모양이고. 볼썽 사납게.」

「마공.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젊은 후배(민수) 앞에서 체신을 지켜라.」

「체신이 밥 먹여 주나. 체신 같은 거는 우리한테 어울리지도 않는다. 고고한 놈들은 고고하게 살고 우리거치 무식한 놈들은 방내기나 두고 그런 거 아이가.」

송강이 계속 받아 치려는데 이 시인이 송강을 가로막는다.

「이 사람들아 그만해라. 안 그래도 마음이 그런데 너거까지 그카마 우짜노.」

「마음이 아직도 그런교?」

꼰충호가 안주가 떨어지자 슬슬 시동을 건다. 이 영감이 재빨리 눈치를 채고,

「충호야.」

「말씀하이소.」

두 사람의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마음 그런 사람한테 자꾸 물어 보는 기이 아이다. 오죽하마 시인 선생님께서 후배들이 막 씨부리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겠노.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마 아무 생각이 없는 기라. 시인 선생 같은 분은 그게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더하다꼬. 다른 놈들은 몰라도 그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충호 니만은 이해해야만 된다 카이.」

충호가 고개를 떨구는 척한다.

「자꾸 그카이 내 마음까지 그래 될라 카네. 안주나 한 접시 더 시키라 충호야.」

충호가 못 이기는 척 안주를 더 시키는데 독립군 박 총알과 서 중사가 들어선다. 두 사람은 합석을 마다하고 다른 자리에 가서 앉는다.

전직 총알택시 기사였던 박 총알과 월남 참전 용사였던 서 중사는 같은 불구의 몸이다. 박 총알은 다리가 하나 없고 서 중사는 팔이 한쪽 없다. 박 총알은 총알택시로 인해 다리를 하나 잃었고 서 중사는 제대를 한 달 앞두고 나트랑 전투에서 왼쪽 팔을 잃었다.

동병상련이라고 두 사람은 끼리끼리 잘 어울린다. 다른 독립군들하고의 관계도 원만했으나 애써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바둑은 서 중사가 1급, 박 총알이 3급으로 기원에서는 상수에 속하는 편인데 마땅한 호구가 없으면 저희들끼리 자주 대국을 했고 하루 걸러 벌어지는 마작판엔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완벽한 고정 멤버였다.

마공이 일어나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편 교수가 한마디 입을 열었다. 자기 말로는 대학에서 부교수까지 하다가 퇴직했다는데 소문엔 학원에 강사로 있었다는 설도 있고 친한 친구가 전문대학 교수라는 이야기도 있어 그도 여느 독립군처럼 믿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마공은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기라.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마 끝이 없다꼬. 생각해 봐라. 잘사는 놈들은 전부 개새끼고 도둑놈인데 그기 말이 되나.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된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꼬. 안 그러나 박 사범?」

술집 밖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비를 피해 들어왔다. 여자는 비에 젖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손수건으로 닦아 준다. 그들은 마주 보고 앉아 소주에 순대국을 시킨다.

민수는 얼마 전에 온 민혜의 편지가 생각 났다.

요즘 날씨가 유난스럽네, 바람도 많고.

니가 내려간 지 두 달인데 길게 느껴져.

학교는 하루 건너 연일 휴강이야.

군인들이 정문에 진을 치고 살벌해.

니 말처럼 우린 너무 일찍 절망을 배우나 봐.

난 선배 화실에 묻혀 살아. 작업에 몰두하면 마음이 편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거든.

부모님들은 여전히 유학을 원해. 미국에 있는 오빠까지 매일 전화가 걸려 와.

어쩌니.

마음이 흔들려.

무엇이 현명한 것인지 구별이 안 돼.

자아 상실이야.

사막의 모래밭을 혼자 걷는 기분이야.

너랑 잘 가던 삼청동 공원엘 가 보려다 그만뒀어.

화랑에 들러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

주말엔 선배 언니 따라 강화도에 다녀올까 해.

어쩜 안 갈지도 몰라. 마음이 그래. 들쑥날쑥이야.

가을인가 봐.

추억처럼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네.

………….

보고 싶어.

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