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상대의 손끝이 야무지게 반상을 두드린다.

저 수, 저 수의 의미는 뭔가.

정신이 혼몽하다. 등에 땀이 축축이 흘러내린다. 바둑은 불리했다. 전주 엔도가 결국 선에서 양보해 두 점으로 두는 대국이었다. 시코쿠(西國) 제일의 강자라는 사내 쪽 전주는 치수가 어쩔 수 없이 두 점에 낙찰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판돈을 최대로 올렸다. 그 치수면 사내 쪽 전주는 자신이 있었다.

큰 판인데…….

엔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평사는 온몸이 욱신욱신하다. 근간에 지나치게 자주 승부를 한 탓도 있지만 왠지 예전같이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더구나 어젯밤엔 손씨 생각에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전부터 몸에 열이 나고 마른 기침이 잦았다.

아무래도 너덧 집은 부족한 것 같은데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다. 정신이라도 맑으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가물거리는 정신을 수습하려고 평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이마마쓰 중사가 따라 나오며 퉁명스레 물었다.

「또 어딜 가나, 귀찮게.」

펑사는 묵묵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마마쓰가 화장실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평사가 소변을 보고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는데 엔도가 화장실에 나타났다.

「이마마쓰, 자넨 좀 나가 있게.」

잔뜩 굳어 있는 엔도의 표정이 심상찮다.

「곤란한데요…… 소장님 지시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있잖은가.」

엔도의 눈짓에 이마마쓰 중사는 못 이기는 척 밖으로 나갔다.

「이봐.」

엔도의 말투가 거칠다.

「이거 하난 명심해 둬.」

「…….」

「이 바둑을 지게 되면 너는 다시는 바둑을 둘 수 없다. 너는 다시 지옥 속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

「이기란 말야. 무슨 수를 쓰든.」

표독스런 엔도의 말에 평사의 가슴이 섬뜩해진다. 이제까지의 행동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엔도였다. 그가 아는 거라곤 승부와 돈밖에 없었다.

엔도가 화장실을 나가자 평사는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의 얼굴이 부스스하고 창백하다. 꺼칠꺼칠한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자리에 돌아와 앉으며 평사는 힐끗 호소카와 소장의 얼굴을 훔쳐봤다. 져 봐야 잃을 게 없는 소장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둑판만 보고 있었다. 여간해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소장이었다.

평사는 정신을 가다듬고 전판에 걸쳐 형세 판단을 해 보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너덧 집이 불리했다. 상대의 실력을 감안하면 절대 뒤집기가 어려운 바둑이었다.

상대의 유일한 허점은 좌변 쪽이었다. 허점이라야 별 것도 아니다.

수순을 교묘하게 밟아 기껏 선수 한 집이나 한 집 반 정도다. 그렇다면 승부는 역시 부동이다. 평사는 반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질 수는 없다. 지옥 같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가 보자. 가다가다 지쳐 쓰러지면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러나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 보리라, 끝까지…… 끝까지…….

사실 엔도가 평사를 협박한 것은 평사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다.

오늘따라 바둑판을 앞에 두고 비틀거리는 평사의 모습이 승부를 떠나 화가 났고, 두 점의 치수가 무리한 치수임이 분명한데 승부를 강행한 자신의 무모한 처세가 스스로 못마땅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엔도를 초조하게 만드는 건 승부에서 패하게 될 경우 소실될 거액의 돈이었다.

평사는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평사는 꾸준히 나아갔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날이 저물어도 평사는 쉬지 않고 길을 갔다. 반 집, 혹은 반의 반 집의 수순을 찾아 저 거친 세상을 평사는 끝없이 헤맸다.

반면이 어둑어둑해지고 평사의 추적이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을 즈음 바둑은 끝이 났다. 마지막 반패를 평사가 이어 가고 계가한 결과 놀랍게도 반면 빅이었다.

「이럴 수가! 세상에, 그 바둑을 비기다니!」

시코쿠 제일의 승부사라는 사내의 전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집 수를 자꾸 헤아려 본다.

평사를 바라보는 엔도의 얼굴은 만족을 넘어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