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연승 끊은 유하준, 2승 더 추가하면 한국 우승
중국 4연승 끊은 유하준, 2승 더 추가하면 한국 우승
[어린이세계최강전] 오로IN  2026-01-07 오후 07:07   [프린트]
▲ 한국의 마지막 보루 유하준.


한국의 마지막 보루 유하준이 성난 파도 같았던 중국선수의 연승에 급제동을 걸었다.
7일 오후 3시 충남 아산 SG아름다운골프앤리조트에서 펼친 ‘2026 SG골프 어린이세계바둑최강전’ 6국에서 한국 유하준이 중국 양첸이(杨千逸)에게 310수 만에 흑으로 18집반승했다.

이 대국 전까지 연승전 판세는 완전히 중국으로 기울고 있었다. 중국 선봉 양첸이는 2국부터 5국까지 한국과 일본의 선수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4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중국이 한 판만 더 이기면 우승컵을 가져가는 시점에 유하준이 등판했다.

승부처는 초반부터 찾아왔다. 좌상귀 접전에서 유하준이 정확한 형세판단으로 두터움을 차지하며 주도권을 쥐었다. 이후 하변에서 승패가 갈렸다. 치열한 수읽기 대결 중에 백(양첸이)의 착각이 나왔는데 유하준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찔러 들어가서 승기를 잡았다. 양첸이의 끝질긴 추격이 이어졌지만 유하준은 큰 차이를 벌리며 앞선 끝에 이겼다.

[6국] 양첸이-유하준(승).

▲ 韓유하준.

▲ 中양첸이.

이번 대회는 한·중·일 3개국에서 각각 3명의 어린이가 출전해 이기면 계속 두는 연승전 방식으로 치르고 있다. 대회 사흘째인 7일, 일본은 소 신켄, 이시카와 지호, 다나카 다쿠토 등 3명의 선수가 모두 패배하며 가장 먼저 짐을 쌌다.

한국은 아직 위태롭다. 앞서 출전한 박준우가 1승 후 연승으로 이어가지 못했고 김정현이 승리 없이 곧바로 탈락했다. 반면 중국은 이제 1명이 탈락했고 아직 류샤오위(刘笑宇)와 한자준(韩佳骏) 두 명의 선수가 남아 있다. 한국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유하준이 남은 두 선수를 모두 꺾고 3연승을 달성해야 한다.

유하준은 이번 대회의 키플레이어다. 조훈현 9단이 보유하고 있던 최연소 입단 기록을 63년 만에 깨뜨린 주인공이다. 8일 목요일 유하준은 오전 11시 류샤오위와 7국을 치른다. 승리할 경우 오후 3시에 열리는 최종 8국에서 한국 우승을 놓고 마지막 승부를 벌이게 된다. 시선은 대회가 열리는 아산으로 쏠리고 있다.


▲ 복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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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8 |  2026-01-08 오후 9:47:00  [동감0]    
조훈현 시대하고 지금하고 바둑을 뜨는데 시대가 아니 바꿧지? 당시는 인터넷 대극이란게 없었지 ㅡㅡ
다은혜 |  2026-01-08 오후 7:33:00  [동감0]    
역시 차세대 선두 주자에 대한 기대가 크네요
기꾸리도사 |  2026-01-08 오후 5:56:00  [동감1]    
포스터 신진서
낭만 |  2026-01-08 오전 6:15:00  [동감0]    
세상은 왜 그리 호들갑이 심한지. 조훈현이 입단하던 시절에는, 지금의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입단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조훈현의 기록을 깨트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유하준군, 모습이 귀엽기도하고 기대가 큽니다. 오늘 대국도 선전하기를 바랄게요.
서민생활 너무 아득히 먼 옛날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정말 조훈현이 입단할때가 지금 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 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에 동내 바둑은 많이들 두었지만, 푸로가 그리 활성화 되지 못했을 때였다고 기억됩니 다. 조상연이 어릴때 입단이 아마 시발점이었죠? 그리고 김인, 조치훈은 일본으로 갔고 조훈현이 입단하고 일본 갔고, 그런 아주 초창기였는데, 지금 입단보다 더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낭만 말씀을 듣고 보니, 비교 판단이 어렵긴 합니다.ㅎㅎ~제가 기억하는 건, 1960년대 말인데, 가까운 기우가 입단대회에 더러 참가하였었지요. 그 시절에는 입단대회가 1년에 봄과 가을 두차례 열렸는데, 한번에 두명, 그러니까 1년에 네명이 입단을 하였었지요. 그리고 요즈음 은 유하준군과 같은 어린이들만 따로 모아서 어린이 입단대화를 별도로 여는데,그 당시에는 어린이들로부터 나이 많은 어른들까지 모든 사람이 함께 겨루었던 걸로 압니다.조훈현이 입 단한 것은 그 시절보다 좀더 이른 시기이었는데, 입단대회는 아마 같은 방식이었을 가라고 유추하여서 위와 같은 글을 올린 것입니다.그러니 전국적으로 통틀어 1년에 4명밖에 입단할 수 없었으니, 입단의 경쟁율은 지금보다 더 치열하였다고 볼 수 있겠지요.물론 지금은 AI의 시대이니 바둑의 수준은 그 시절보다 발전했겠지만요.저는 입단의 경쟁율만을 단순비교해 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낭만 1960년대말로부터 1970년대초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입니다. 저는 1960년대 중반, 조남철로부터 김인으로 일인자의 자리가 넘어가던 무렵에 바둑을 배웠는데, 1972년도에 한국기원에서 처음으로 아마 3단의 면장을 받았었지요. 그 면장에는 조남철 선생님과 김인국수의 친필 붓글씨 싸인이 있었는데, 이사를 다니느라 그만 그 면장을 잃어버렸었지요. 아~, 아쉽네요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입니다.~  
낭만 컴퓨터를 통하여 글을 올리니, 제 답글이 순서대로 서민생활님의 글 뒤에 보이는데, 그 글들을 스마트폰으로 다시 보니 글의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네요. 그거 참! ㅎㅎ~ 그 사실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clint 1960년대 입단은 한해에 2명 정도였던것 같은데 인구 비례해서는 경쟁이 더 심했고, 제가 아는 명문고 친구는 나중에 서울대 들어갔는데 그 친구는 중학교때 아마정상급이었는데 내가 왜 입단 한번 해보지 그랬냐고 했더니 사법시험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1960-70년대에 바둑은 오락이 별로 없던시대에 유일한 어른 아이가 즐길 수 있던 오락이었고 동네마다 길거리 마다 기원이 있었죠. 저도 친구 만나면 바둑한판하자고 다방에서 나와 근처 기원에 갔을 정도로 아마 서울시내에 천개 이상 있었을 겁니다. 물론 직접 요즘과 비교해 프로가 되는 관문이 그때가 더 어려웠다고 말할수 있을지 몰라도 의외로 요즘과 달리 왠만큼 바둑 둘줄알면 기원 차리면 먹고는 살 았어요. 그 당시 프로 생활을 잘 몰라 제가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몰라도 아마 입장에서 본 의견입니다.  
바람곁으로 |  2026-01-07 오후 10:28:00  [동감3]    
신진서 계보 잇는 세걔적 선수되길 기원
함께하기 |  2026-01-07 오후 9:54:00  [동감1]    
유하준 사범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tjsay |  2026-01-07 오후 9:30:00  [동감2]    
이름 좋고 바둑도 잘 두고 잘 생기기까지!
대한민국 바둑 최소 10년은 책임지겠다. 헐헐헐...
봄가을동화 |  2026-01-07 오후 7:10:00  [동감4]    
신공지능을 잇는 유공지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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