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사자 신진서, 다시 포효
고독한 사자 신진서, 다시 포효
[AI나들이] 김수광  2024-12-25 오후 11:54   [프린트]


사자는 외롭다.
뜻밖의 상처를 입고 잠시 틈을 보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생채기를 다른 맹수들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삼성화재배를 열정을 쏟아부어 준비해오던 신진서 9단이 지난달 본선 8강전에서 중국의 강호 딩하오 9단에게 진 것은 뼈아팠다. 신진서는 세계최강, 딩하오는 중국의 떠오르는 태양이다. 승부 세계에서 한판 지는 것이 엄청난 일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길목에서 당했다.

게다가 중국의 내로라 할 고수들은 신진서의 바둑 내용을 의아해했다. 예전의 신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상을 화려한 색채로 물들이던, 발랄하고 창조적인 신진서의 모습은 흐릿해졌고 이기기 위해 안전 길을 찾아 멀리 돌아가는 움직임만 감지된다는 것이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신진서에겐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고 그것으로 세계 최강이 되었다. 그 방식에서 무뎌진다는 것은 중국의 경쟁자들에겐 좋은 소식이다.

[2024 중국갑조리그 플레이오프 2라운드 2경기] 신진서(승)-中딩하오: 222수 만에 신진서가 백으로 불계승했다.

신진서가 변한 것은 자의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근년, 세계대회에 나가면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이 오래 버텨주지 못하고 신진서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 중압감이 신진서를 그렇게 만들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신진서가 어떤 환경에서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건 분명했다.

마침, 약 한 달만인 12월23일, 그 딩하오와 2024 중국갑조리그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재회했다. 세계 바둑계의 눈이 이 대국으로 향했다. 신진서는 한 달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과감했다. 발랄했다. 그러면서도 정교했다. 이런 바둑을 막아설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딩하오는 벽을 느끼는 것 같았다. 표정에 당혹감이 역력했다.

[그림1] 딩하오는 상변과 우변을 확장하고 있었다. 신진서(백)는 대칭을 이루며 좌변과 하변을 키웠다. 1~4까지는 실전. 2의 시점에 딩하오는 우변을 공격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고 3의 대세점으로 손길을 돌렸다. 그러자 신진서는 4로 다가서서 우변을 간접적으로 보강했다.

고수들은 공격을 할지 말지를 놓고 신중하다. 섣부른 공격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 그 후유증은 크기 때문이다.

[그림2] 만약 1의 날일자로 공격하는 게 얼핏 시원해 보인다. 아주 나쁜 수라고 할 수 도 없다. 하지만 공격의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림3] AI는 1처럼 두칸을 뛰어 나가거나 A로 한칸 뛰는 정도로 백은 훌륭하게 타개할 자신이 있다고 한다.

[그림4] 흑이 1로 두칸 사이를 파고들어오는 데 대한 대비는 해 놓아야 한다. 1에 이은 3은, 8까지 바꿔치기로 대응한다. 이어서-

[그림5] 6까지, 우변을 내주는 대신 하변에 웅장한 골짜기를 만들 수 있다. 백이 우세하다.

[그림6] 도중에 1로 끊어서 3으로 되단수 치는 게 유명한 맥점이긴 하다. 5까지 중앙 봉쇄가 멋들어진 것 같지만 조금 후 흑은 난감해진다.

[그림7] 1로 찌르는 수가 당연하면서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2로 막으면 3으로 양단수이므로 흑은 큰일난다.

[그림8] 결국 1로 따내는 정도인데, 4까지 우변 실리를 크게 확보한 백이 아주 만족스럽다.

[그림9] 흑에게 날일자 공격을 당했을 때 1로 대응하는 것도 훌륭하다.

[그림10] 1로 고압적으로 눌러와도 백은 우하귀 형태의 약점을 이용해 싸울 수 있다. 6에 흑은 양단수를 피해 7로 꼬부려야 하는데-

[그림11] 3까지 여유롭게 싸울 수 있다.

[그림12] 흑이 1로 끊는다면 6까지 대응할 수 있다. 흑이 A로 백 한점을 따내는 것은 백은 B로 흑 두점을 잡으므로 안 된다.

[그림13] 따라서 흑은 1로 되돌려칠 수밖에 없다. 이후 8까지 예상해볼 수 있는데, 이 정도라면 백이 우변에서 터를 잘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하변 자세도 좋다. (6…백세모)

[그림14] 참고로, 흑이 1·3으로 두어오면 4로 치받아 쉽게 타개할 수 있다.

[그림15] 이렇게 고수들의 세계에서 A로 우변 백을 공격하는 것은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에 노련한 딩하오는 우선 요처인 1을 차지하고 본 것이다.

[그림16] 이후 실전이다. 신진서가 1로 다가서자 딩하오는 빠르게 2, 4로 젖혀 이어서 근거를 마련했다. 이때 5가 주목해볼 만한 신진서의 감각이다. 하변을 키우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이며 우변은 조금 당하는 걸 감수하겠다는 의지다.

[그림17] 실전은 흑이 이렇게 두지 않았지만 1로 차단을 노리고 나오면 어떻게 할지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물론 신진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은 자체로 좋은 수는 아니지만 백이 잘못 받으면 좋은 수로 변한다.

[그림18] 1에 2로 느는 게 흑의 주문에 빠지는 길이라고 한다. 흑은 3과 같은 수로 하변을 교란한다. 백은 4로 뻗는 정도일 것이다(다른 수는 오히려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런 뒤 5로 유장하게 중앙을 향해 전진한다면, 백으로선 어딘가 기분 나쁠 듯하다. 하변 백 모양은 다소 중복으로 볼 수 있고 우변은 앞으로도 어느 정도 차단을 대비해야 하며 5의 대세점까지 당하니 말이다.

[그림19] 따라서 신진서로선 1로 젖히는 데까지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이러면 백이 작전의 일관성을 유지하게 된다.

[그림20] 만약 1로 끈다면 2의 호구가 힘차다. 일단 우변까지 단단하게 연결되었고 하변의 틈새도 그리 걱정할 거 없다. 3엔 4로 막고-

[그림21] 1로 는다면, 8까지 예상해 볼 수 있는데, 그러면 흑이 구불구불 중앙 돌파를 하긴 하지만 백세모들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모두 활기차다. 이 그림 역시 백이 약간 기분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림22] 1로 는다면 2로 막겠다는 계획.

[그림23] 1의 끊음은 백으로선 하나도 무섭지 않은데, 그것은 A와 B가 맞보기이기 때문이다.

[그림24] 1로 뻗어서 한 점을 살린다면 백2로 함께 뛴다. 혹시라도 흑이 3, 5로 끊는다면 백은 6~10의 수순으로 가운데 요석을 잡아 버린다.

[그림25] 반대쪽 약점을 막겠다고 1로 행마한다면 2로 흑 한점을 축으로 잡아둔다. 두텁다. 이후 3엔 4로 막고, 5에 6으로 하변에 울타리를 쳐둔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백이 편안한 국면이다.

[그림26] AI는 1로 두는 걸 연구하겠다고 한다. 이 부근은 끊어서 공격하는 걸 노릴 일은 당초에 없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깔끔하게 연결을 시켜주고(아마도 강요일 듯), 3에 두어 좌변부터 풀어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림27] 또 다른 방안으로는 하변에 1로 붙여 보겠다고 한다.

[그림28] 7까지 한판의 바둑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림29] 중반에 딩하오(흑)가 우세한 싸움을 벌였지만 하변 패 싸움 이후엔 미세해진 국면이다. 반집 승부가 될 수도 있던 장면. 다소 우세했다가 주도권을 놓쳐서인지 딩하오는 초조해진 듯했다. 신진서가 1로 밀고 들어갔을 때 2로 반발에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반발은 좋지 못했다.

[그림30] 순순히 1로 받으면 백2~6까지의 활용이 아프다고 본 듯하다.

[그림31] 그리하여 실전처럼 둔 것이고, 신진서가 1로 그냥 받아준다면 이하 6까지를 상정하면서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본 듯하다. 한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되면 신진서가 약간이나마 우세해진다고 한다.

[그림32] 즉, 1~3까지를 예상한 결과 나온 형세판단이라고 하는데, 실전에서 이 장면이 등장한다면 딩하오가 AI처럼 완벽한 형세판단을 하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림33] 신진서는 아예 1로 돌파해 버렸는데, 이 판단이 정확했다. 이후 2와 3은 거의 필연이고-

[그림34] 6까지 진행됐다. 흑은 백 진영이 될 수 있던 곳에서 살게된 셈이긴 하지만 신진서는 이 변화가 백에게 두텁고 좋다고 봤고 실제로 그랬다.

[그림35] 만약 5처럼 살면 백이 2집반 정도 우세하다고 한다.

[그림36] 다만 신진서로서 신경 쓰였을 법한 것은 좌상을 손빼고 다닐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가령 1의 곳을 차지하면 2로 차단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결론적으로 신진서는 이에 대해서도 다 대비해 놓고 있었다.

[그림37] 1로 찝는, 재치 넘치는 대응책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림38] 수순을 따라 진행하며, 5 때 6으로 뻗는 수가 선수다.

[그림39] 흑은 1의 선수로 살아두어야 하는데, 백은 4~6로 촉촉수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이후

[그림40] 흑이 1로 따낼 때 2로 깨끗하게 넘어갈 수 있어서 사활엔 전혀 걱정 없었던 것이다.

[그림41] 따라서 딩하오는 좀 더 복잡해 보이는 1로 흔들어갔다.

[그림42] 이때 신진서는 1로 물러나도 우세하긴 했다. 흑이 2, 4로 살 때 5를 차지해서 3집반 정도 우세한 것.

[그림43] 참고로, 좌상에서 1로 끊기더라도 살아 있다. 2로 단수친 후 수순을 따라 8까지집을 내고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44] 신진서는 1로 젖혀서 최강으로 대응했다. 아예 부러뜨린다는 심산이다. 대담하고 정교한 수읽기가 필요한데, 그 길을 택했다.

[그림45] 일단 수상전 형태다. 5로 끊길 때 6으로 받아도 충분하긴 하다.

[그림46] 수순이 길긴 하지만 가령 14까지 진행된다면 빅 형태다. 빅이 되어도 신진서가 승리하는 형세.

[그림47] 그런데 더 독하게 두었다. 2가 그것.

[그림48] 5에 6으로 늘어서 수조임에서 더 강렬하다.

[그림49] 실전은 12까지 진행되었고-

[그림50] 결국 한 수 늘어진 패를 내어 여유 있게 앞서갔다. 종내에 신진서는 중앙을 잡는 바꿔치기로 불계승을 거두었다.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워러04 |  2024-12-26 오후 9:42:00  [동감1]    
와우 간명하고 명쾌한 해설 정말 좋군요
궁금하다 싶으면 바로 다음 보에서 설명이 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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