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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진 “격렬해야 바둑 맛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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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악!” 오유진은 혼자 방으로 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여자세계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본능적 에너지에 불을 붙였다. 기쁨이란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분출된다. 바둑엔 세리모니가 없다. 대국상대도 관중도 없는 공간에서 오유진은 원없이 감정을 쏟아냈다. 그토록 염원했다. 첫 우승이었다. 2인자라는 꼬리표가 지긋지긋했다. 결승마다 번번이 막아선 건 한국여자 최강 최정이었다. 오유진은 세계대회 정상에 오른 기분을 만끽하면서 한국여자 1위가 누구고 2위는 누구다 따위의 말을 잊었다. 오유진은 지난 16일 중국 쑤저우시 우중구 궁륭산 손무서원에서 막을 내린 제7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에서 4회 대회 우승자인 중국의 왕천싱 5단을 186수 만에 백불계로 누르며 우승을 차지했다. 생애 첫 우승이었고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1998년생으로 18세. 2012년 입단 후 2015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 MVP 등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16ㆍ17기 여류명인전에 결승에서 번번이 최정에게 막혀 준우승에 그쳤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2인자’의 한을 풀었다. 한눈에도 가녀린 체구에 앳된 용모가 먼저 눈에 띄는 오유진. 오유진의 스승 한종진 9단은 “최정은 씩씩하고 남성스럽지만 오유진은 너무나도 여성스럽다.”고 했다. 여성스러운 게 나쁠 리 없겠지만 "여성스럽다는 건 예민하고 생각이 많다는 것"이라며 승부적인 측면에서 걱정스러워했다. ![]() 오유진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나의 방식대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에 돌아오니,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해’라는 말은 안 하고 ‘밥은 언제 사’라고들 한다.”며 깔깔 웃는 오유진. 오유진의 얼굴에선 웃음기와 장난기가 떠나질 않는다. 장중하고 심각해 보이기만한 바둑을 어떻게 저런 발랄함으로 정복했을까 의아해질 정도다. 톡톡 튀는 여전사 오유진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 첫 우승을 세계대회 우승으로 장식한 소감은? “난 타이틀은 언제쯤 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여류국수전 결승전이 기회라고 생각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궁륭산병성배를 다녀오려고 했는데 덜컥 우승을 해버렸다. 나도 놀랐지만 엄마도 정말 많이 놀라셨다. 전화로 우승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믿지를 못하셨다.^^” - 이번 궁륭산병성배 결승을 되돌아 보면? “상대였던 왕천싱 5단은 초반에 중앙을 무척 중시하고 힘을 비축했다가 폭발시키는 스타일인데, 왕천싱 5단의 페이스에 휘말려 도저히 이기기 어려운 바둑이었다. 인내하고 인내하다가 왕천싱의 보가를 부수면서 역전할 수 있었다.” - 동료들 반응은? “나와 동갑인 동료들이 은근히 많다. 송지훈, 박하민, 송규상, 이어덕둥 등등 기사들이 메시지로 ‘넌 우승이야’라며 응원해 줬다. 외려 내가 ‘아우, 설레발 치지마’라고 하긴 했는데 응원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 2인자라는 말?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었다. 계속 강조들 하시니까 싫었다.” ![]() ▲ 저를 노엽게 하시면 이런 표정이 됩니다. ^^* - 두 살 언니 한국여자 최강 최정 7단과 친하다. 최정 7단은 한국여자 일인자이며, 강력한 경쟁자이자 단짝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충암바둑도장에서 같이 기숙생활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단짝이 됐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면 둘이서 노래를 불렀다. 마치 모닝콜처럼 동료들이 자든 말든 신경을 안 썼던 것 같다. 히히. 마음이 잘 맞는다. 항상 서로 장난친다. 그런데 승부 얘기는 하지 않는다.” - 최정 7단은 오유진 4단에 대해 “한 상대에게 자꾸 지면 위축되고 성적은 더 나빠진다. 우승은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유진이가 궁륭산병성배에서 우승한 것은 변화의 기회다.”라고 말했다. “궁륭산병성배 출전하기 직전에 여류국수전 4강전에서 최정 7단과 대국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내가 지던 최정 언니한테 이겼다. 엄청난 자신감이 생겼다.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때 승리가 궁륭산병성배 우승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 아직 의식하는가? “원래는 (최)정이 언니한테 하도 지니까 가장 신경쓰였다. 모든 게 정이 언니로부터 시작될 만큼 나한테는 중요한 존재다. 정이 언니는 같이 지낼 때는 편하고 대국할 때면 내상을 입는다. 그게 반복된다. 올 시즌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정이 언니한테만 3번을 졌다. 마지막으로 지던 날 한국기원에서 고속터미널까지 무턱대고 걸었다. 그때부터 웬일인지 앞서 있는 사람을 점점 의식하지 않게 됐다.” - 중국일인자 위즈잉은 어떤가? 의식한다기보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위즈잉은 바둑을 정말 쉽게 두는 것 같은데 바둑은 균형이 맞아 있어 신기하다. 감각이 좋은 것이다. 중국여자기사 중 가장 뛰어난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위즈잉 선수랑 바둑을 둘 때 마음은 편하다. 바둑 스타일이 서로 맞는다. 이기고 진다는 압박이 별로 크지 않다. 이길 자신도 있다. 위즈잉도 후반에 세서 서로 힘들다. 한편으론 정이 언니가 위즈잉한테 왜 자꾸 지는지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 오유진 4단의 스승 한종진 9단은 “그때 유진이가 우승했으면...” 하고 한탄하곤 한다. 한화생명배에서 신진서와 사실상의 결승전(스위스리그)에서 맞붙었을 때의 얘기다. “아, 신진서~. 내가 초등 6학년, 진서가 4학년이었다. 나는 6살(2004년) 때 바둑애호가이신 아빠의 권유로 바둑을 배웠고 공부를 계속하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렸고 그 대회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바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형세판단 하지 않아 내가 그렇게 우세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였는지 지고서 큰 아픔을 못 느꼈다. 실은 내 형세가 많이 좋았는데 수상전에서 한수 차로 져서 대마가 잡혀 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진서는 그때도 수읽기가 좋았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우승했더라도 인생이 크게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다.” - 초등학생 때 바둑 지고서 ‘통곡’을 많이 했다는 어릴 적 친구들의 증언이 있다. “많이 울었다. 부모님이 엄하셨다. 바둑을 지면 혼나는 게 두려워 겁이 났다. 지금은 부모님이 뭐라고 하신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말씀도 안하신다. 지금은 눈물이 나오질 않는다. 근데 지난해 궁륭산병성배 16강전에서 왕천싱 5단에게 졌을 때는 울 뻔했다.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 바둑이 싫었던 적은 ? “초등6학년 겨울에 바둑이 너무 싫어져서 바둑을 쉬었다. 한화생명배에서 신진서에게 진 뒤이긴 하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쉬는 동안 바둑을 쳐다 보지도 않았다. 우연히 충암바둑도장에 놀러갔다가 허장회 사범님과 한종진 사범님을 만났는데 사범님들이 다시 바둑을 하라고 권하셔서 재개했다.” - '오유진은 수읽기가 단점'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수읽기가 약점이다. 프로도 묘수풀이 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을 잔뜩 먹었다가 작심삼일로 끝난다. 묘수풀이보다는 내가 둔 바둑 복기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너무 복기만 많이 한다. 편식은 이제 그만 해야 할 것 같다.” - 뉴스ㆍ댓글 자주 보나? “내가 나오는 뉴스ㆍ댓글은 챙겨 본다. 기분 나쁜 댓글도 있지만 화날 정도로 심한 댓글은 아직 못 봤다. - 인상 깊게 읽은 바둑책이나 존경하는 기사가 있나? “그런 게 없다. 내가 바둑을 두게 하는 힘은 '격렬함'이다. 꼭 전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상대와 치열하게 지략싸움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치열하지 않아도 압도적으로 이긴 바둑이면 그나마 낫지만 치열하지도 않고 허망하게 지기까지 하면 너무 속상하다.” -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주중에는 바둑공부만 한다. 아침 10시~오후 5시까지는 국가대표 상비군 훈련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금세 잠자리에 든다. 집이 한국기원에서 멀다. 밤 11시엔 잠이 든다. 주말에는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프로기사들이 만든 배드민턴 모임에도 간다. 영화는 판타지나 로맨스 코미디가 좋아하는 장르다.” - 커제에 대해선? “커제 9단의 바둑을 높이 평가하고 좋아한다. 지난해 한중미래천원전 개막식에서 내가 커제 9단에게 귀엽다고 말한 것을 두고 내가 커제 9단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졌다. 별 뜻을 담은 말은 아니었는데 중국 뉴스에서 내가 커제 9단을 좋아한다고 썼다고 한다. 놀림 많이 받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하느라 바빴다. 커제 9단의 바둑이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것뿐이다. 커제 9단의 바둑은 자유롭다. 나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바둑을 추구하기는 하는데 아직 내 바둑은 자유로운 바둑이 아니다. 장차 전투바둑도 두고 싶은데 자신이 없으니까 잘 안 두게 된다. 싸움 실력을 늘리고 싶다. 그러면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 ▲ 2015 한중미래천원전 개막식에서 오유진이 "커제 9단과 대국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남자기사들과의 경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남자기사가 여자기사에 비해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 인공지능(알파고)에 대해선?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수를 과감하게 둔다. 알파고 포석도 생겨났다. 당시에 정말 놀랐다. 바둑의 룰이 바뀌었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알파고의 바둑은 충격이었다. 지금도 충격에 빠져 있는 기사들이 많다. 바둑을 이렇게 두어도 되는구나 할 정도로 인공지능의 바둑은 우리가 두는 바둑과 많이 다르다. 나도 더 넓게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 - 바둑 배우길 잘했다 생각한 적 있나?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모여서 연구회를 할 때가 즐겁다.” - 한국바둑계에 대한 생각? “한국에서 바둑은 비인기종목이다. 잘 모르시는 분도 많고. 다가가기 어렵다는 이미지가 있다. 좀 더 쉽게 다가가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다. 실상 나도 바둑을 배울 때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게 느낀다. 그러니 일반 바둑팬들에게는 얼마나 바둑이 어려울까.” - 바둑팬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무슨 반응이라도 해주시는 게 좋다. 아무런 말씀도 없는 것보다 질책이 낫다.” - 목표는? “우선 여류국수전 타이틀을 꼭 따내겠다. 남자기사들과 겨룰 수 있는 경쟁력도 늘리겠다. 올해는 한국랭킹 100 안에 진입하는 게 목표였다. 내년 목표는 50위 안에 드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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