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이 서울과 맞닿은 곳이지만, 면소재지요 요즘 보기 드문 리에 살다 보니, 집 뒤가 온통 산이네요. 어제 집사람이 약수터에 밤 따러 가자고 하더군요. 전 여기에 10년을 살도록 한 번도 안가봤는데, 집사람이 동네 분들하고 몇 년 전에 가봤다며 같이 가보자 하더라구요.

느지막히 아침을 먹고 퀴즈 대한민국 보고 뭐 그러다 보니 12시가 되더군요. 집에서 나와 천천히 산책 걸음으로 가는데, 내려 오는 사람마다 한 봉지씩 꽤 많이들 가지고 내려오는거지 뭡니까. 어떤이는 배낭을 지고 내려오기도 하고요. 우린 길 따라 올라가며 길 옆에 떨어져 있는 밤 서너개를 주워 가지고 가며, “어디서 저렇게 많이 땄지?”하고 부러움 반, 신기함 반 얘길 하며 가는데 어느 분이 산으로 올라가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뭐 약수터야 이리 올라도 되고 저리 올라도 되니, 그래서 산으로 난 길(?)로 올라갔죠. 사실 산엔 온통 밤나무인데 땅에 보이는 것은 밤송이 가시 껍질뿐, 알맹이는 안보이더라구요. 더구나 저는 시력이 별로인데 안경은 티브이 볼 때와 운전 할 때만 끼는지라 당연히 안끼고 왔고, 더구나 적록 색약이다 보니 네 눈에 밤알이 보일리 만무, 눈 좋은 집 사람만 홀로 몇 개 주우며 올라갔죠. 그런데 그 밤알의 크기라 해 봐야 도토리만할까 한 정도가 대부분이고 ‘야 큰거다.’ 외칠 정도면, 장에서 파는 작은 밤알 정도 크기였죠.

그러다 약수터엘 도착해서 물 한잔 들이키고, 집 사람은 운동 기구에서 ‘이렇게 하는건가’ 하고 시범(?)을 보이고 있는데, 젊고 건장한 한 사람이 플래스틱 양동이에 2/3 쯤 밤알을 담아 오더라구요. 집게며 장갑, 그리고 그 쓰임새가 의심스러운 야구방망이까지 가지고요. 밤알도 다 먹을 만할 정도로 큰걸로.

다음주에 장갑하고 집게를 준비해서 오자하며 오던길과는 다른 쪽으로 내려왔죠. 그런데 오다 보니 여기 저기 밤알이 떨어져 있어 그걸 주으며 내려 오는데, 울타리가 쳐진 곳이 있더라구요. 집 사람이 예전 다른 사람들한테 들었는데 여기도 주인이 있는 밤 밭이 있는데 거기 들어 가면 밤을 많이 주울 수 있다더라고요.

그러며 참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간다고. 울타리가 아니라 팻말만 붙여 놔도 주인이 있는 것이니 들어가면 안되는 것인데, 울타리를 쳐놔도 들어가서 남의 밤을 따니, 도둑이 따로 있냐고요. 그냥 주위만 좀 돌아 다녀도 그래도 먹을 만큼 줍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보따리로 따서 지고 가 장사할 거냐는 거죠.

어제도 보니 울타리 안에 꽤 여러명이 들어 가 있더라구요. 장대까지 준비해서... 그렇게 하면 굵은 걸로만 금방 한보따리 채울 수 있겠지만, 어디서 툭 하고 소리나면 소리난 곳 주변을 눈으로 샅샅이 살펴 두어알 밤알을 줍고, 또 덤불 속에 숨어 있는 밤알을 찾는 재미는 없는 것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저 사람들은 수확(?) 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우린 보물 찾기 놀이를 하는 셈이죠. 돈으로 따진다면 수확이 훨신 많겠지만, 재미를 따진다면 보물 찾기 아닐까요? 여하튼 두어 시간 동안 그래도 밤 주으러 간다며 집사람이 챙겨간 봉지에 1/4 정도는 채웠죠. 이제 그만 내려 가자고 재촉하니, 집 사람 왈 “내려 가려고 하면 보이지 않던 밤이 보이네. 밤이 더 놀다 가라하는데.” 여하튼 그러며 내려 오는데,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낚싯대로 나뭇가지까지 꺾으며 밤을 따네요. 그리고 집 사람이 또 한마디 중얼 거리네요. “애들 보고 뭐라 할 것 없어. 가르쳐야할 어른들이 더 하잖아. 밤 따는 사람, 은행 따는 사람들 보면 꾼들 같아. 실은 꾼이 아닌데 말야.”

밤을 주우며 자연 학습장이 따로 없다며 기분 좋았는데, 꾼 아닌 꾼들 모습을 보곤 삭막하게 변한 세상을 본 듯 우울했죠. 한 줄기 미풍에도 툭하고 떨어지는 밤알이 여기 저긴데, 장대로 낚싯대로 흔들고 가지를 꺾고, 그리해서라도 배낭 가득 채워 가야하는지...

여하튼 그래도 먹을 만큼은 주워 왔죠. 그리고 밤에 작은 것만 골라 칼집을 좀 낸 다음 가스렌지 아래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그릴에 넣고 구었죠. 그래도 약 한번 안친 그야말로 자연산 아닙니까. 나름대로 고소하더라구요. 그리고 아침에 애들 학교에 데려다주고(이번주 제가 카풀 당번이라) 와 보니, 나머지 밤을 모두 삶아 놨는데, 꽤 되네요. 집사람이 손등과 팔에 모기와 벌레에 몇 방 맞은 댓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