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비록 서울과 붙어 있지만, 요즘 보기 드문 면 소재지의 리에 살고 있으며, 서울 시내에 나갈 일도 별로 없다 보니, 그야말로 유행에 둔감하고, 조선 시대를 살고 있는 듯 살고 있죠. 

어느 날 제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나가게 됐죠.(마치 촌 놈 서울 구경 하는 것 처럼 얘기가 시작됐네요. 여하튼)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서있는 사람들 구경을 하는데, 저도 남자인지라 여자들이 먼저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어떤 이는 예뻐 보이고 또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하고 또 간혹 추해 보이기 조차 하는 이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빙 둘어 보며 생각했죠. 왜 내 눈에 그렇게 달리 보일까??? 과연 내가 느끼는 미의 기준이 무얼까?? 그리고 다시 한번 둘러 보곤 깨달았죠. 그 미의 기준이 무엇인지.

다른 분들은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눈엔, 제 머리 속엔 그 기준이 명확 하더라구요. 바로 젊음이죠. 뜯어 보면 그리 예쁜 얼굴이 아님에도 젊은이의 상큼 발랄 건강해 보이는 그 자체가 이미 얼굴 구조를 떠나 기준의 최상위에 자리잡아 있더라구요. 순간 내가 아무리 스스로 부정하려 해도 그 만큼 늙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란 것도 함께 깨달았죠. 미의 첫 번째 기준은 젊음이요, 두 번째는 풍겨 나오는(그냥 느껴지는) 지적 이미지요, 그 다음이 비로소 몸매요 얼굴로 이어지니, 젊었을 때완 거의 반대 순서가 되어 버린 것이죠.

많은 남자들이 남의 마누라, 딸내미들의 미니스커트 내지는 소위 노출 패션을 보는 건 좋아해도 자기 마누라 딸내미는 못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저는 아닙니다. 저는 제 집사람 딸내미 미니 입으라고 권장(?)하죠.

결혼하고 그 다음해 첫 애 낳고, 여름이었네요. 어머님이 집 사람을 부르시더니 이십만원을 주시며 옷 한벌 사입으라는 겁니다. 며느리한테 옷 한 벌 제대로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면서요. 그래서 같이 명동엘 갔죠. 그리고 미니스커트로 한 벌 샀죠. 집사람은 어머님이 주신 걸로 무릎이 나오는 미니를 사기가 좀 그랬는지 망설였는데, 제가 괜찮다, 예쁘다며 사라했죠.

집사람은 집에 와서, 그래도 어머님께 무얼 샀는지는 보여 드려야 하니 산 옷으로 갈아 입었죠. 나오면서 “어머님 미니스커트로 샀어요.”하며 약간 껄끄러워하는 집사람을 보시고 어머님이 “뭐 어때 예쁘기만 한데. 잘 샀네.” 하시자, 비로소 안도하며 배시시 웃더라구요. 젊어서 그런 옷 안입어 보면 언제 입어 보나요.(솔직히 어머님 생각도 이런 것이었지요) 또 남이 입은거 내가 예뻐 보이면, 내 집사람이 입은거 보고 남도 예뻐 보일 거 아닙니까? 그렇다고 벌거 벗은 것도 아니요, 훔쳐 갈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전 제가 예뻐 보인다면 집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거죠.

딸 애는 그야말로 유행과는 절벽이죠. 이 글 보시는 분들이 아이들 필통을 한번이라도 열어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보시면 예전과는 정말 다르다는 걸 아실겁니다. 대부분 필통 속엔 펜들이 총천연색으로 있죠. 요즘은 그래도 훨신 덜한데(그것도 유행이거든요), 소위 IMF 이전엔 그 정도가 최고였죠.

그 때 보통 애들이 펜을 10색 세트, 24색 세트로 가져 다녔었죠. 심하면 그런 걸 몇 세트씩 가지고 다니는 애들도 있을 정도였고요. 그런데 문방구집 딸 애의 필통 속에 꼴랑 검은색, 파란색 중성펜 두자루, 샤프 하나, 다 닳아 빠진 지우개, 샤프심 한통, 15cm자 하나가 전부더군요.

당시 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미안하더라구요. 용돈을 아주 안주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남의 가게에서 살 수는 없었을 테니, 그리고 제 가게는 좀 멀고... 저는 그리 생각했죠.

그래서 하루는 10색 중성펜 세트를 하나 갔다 줬죠. 그러고 한 달 정도 지났나? 어떻게 하다 애 책상 서랍을 보니 빨간색 하나만 빠지고 그게 그냥 그대로 있는 겁니다. 하기사 그런걸 좋아했다면 그래도 한달에 한두번은 가게에 오는데 안가져 갔겠습니까. 한마디로 그런거에 관심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저는 그런게 싫더라구요. 계집애가 다른 애들처럼 예쁜 것도 좋아하고, 좀 야발 대기도 하는게 좋을텐데... 그렇게 자란 애가 지금은 대학교 3학년이죠.

집사람 : 넌 미팅도 안하냐?

애 : 안해

왜 안해. 그런 것도 해 봐야지.

왜..엄마도 안해 봤다메..

엄만 엄마고.. 누가 소개팅 시켜 준다는 사람도 없냐?

많아. 할려면 얼마든지 해. 걱정 마.

지지배야 남자 만난다고 꼭 오래 사귀고 결혼하냐? 이러 저런 사람들 만나봐야 나중에 더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지.. 그런데 어디서 찌지꾸리 한 놈을 데려와만 봐라..

걱정마. 그리고 내맘이지 엄마가 무슨 상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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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유, 예전 내 생각이 나네요. 미팅도 커피 값이 있어야 하죠.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었는데... 한편으론 쟤가 데이트할 돈이 없어 그런가 생각하다가도, 아니 지 알바해서 모아놓은 것도 있고, 지 큰아빠하고 고모가 준 돈도 있는데... 여하튼 안한다는 놈 억지로 내 몰 수는 없잖습니까. 그나저나 집사람은 여고에 여대라 너무 남자 사귈 그런게 없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인가 봅니다.

얼마전 제가, “야 넌 치마는 안입냐?” 하니 “내 맘이야.” 하더라구요. 대학 다니며 한번도 치마를 입고 나간 적이 없는 것 같네요. 그러더니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 쇼핑으로 초미니 청바지를 샀더라구요. 집사람은 “야 이걸 어떻게 입냐? 한뼘 밖에 안되네...” ㅋㅋ 그러더니 자기가 먼저 입어 보네요. 그러며

“야 어때? 어울리냐? 정석씨 어때??”

“넌 배가 나와서 안 어울린다. 치마라면 그래도 어울릴텐데 바지는 아니다.”

딸 애는 배꼽을 쥡니다. 이상하다고.

그리고 딸애가 입고 나왔죠. 집사람은 “야 그건 집에서나 입어.” 했고, 전 “그래 너도 그렇게도 좀 입어라. 예뻐 보이고 좋잖아.” 애가 과연 그런걸 입고 나갈까 했는데, 그것도 기우였죠. 뭐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나가더라구요. 그러고 보면 그리 비정상은 아니었나 봅니다. 부모라 괜한 걱정이었나 봅니다. 어쩝니까. 다들 부모이시니 제 맘 충분히 이해하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