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 묵언수행(黙言修行)이란 말이 있다.

 불교대학에 다닐 때, 자주 들어온 말이다. 너무도 당연한 듯해서 그냥 듣고 흘려버린 말이기도 하다. 

 불교철학이 좋아 불교대학에 다니긴 했으나, 한번도 수련해보지 못한 주제라 참뜻은 알 수 없지만, 내 짧은 생각으로는 ‘말하지 않는 수행’이나, ‘말을 하지 않고 하는 수행’이라는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이런 묵언은 수행의 틀로서가 아니라 수행의 기본이 되어, 염불이나 불경을 염송하는 수행을 빼고는 모든 수행의 방편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특히, 선정(禪定)에 들 때에는 묵언 말고 달리 무엇이 필요할까? 이 때의 말은 방해만 될 뿐이다.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것인데 정신을 통일해야하는 마당에 여러 가지 생각이라니, 말조차도 될 법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선정은 말 이전에 잡념부터 금기해야 할 것 같다. 포교에 대한 사명이 커지기 전에 절이 깊은 산속에만 은둔했던 속뜻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 세상에 말이 없다고 상상해보라. 과연 견딜 수나 있을 것인가?

 이렇듯 말이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비교적 천박하거나 불필요하게 취급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다. 말이 화근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채근도,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 라는 격언도 모두가 다 그 아류가 아닌가 싶다.

 연령에 따라 말의 가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어릴 때에는 말이 많아도 흉이 되지 않지만, 늙어서 말이 많으면 정말 보기가 싫다. 하기야 늙어서 보기 좋은 게 무엇이 있을까 마는, 이 말이란 것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말이 많아지면 잔소리가 되어 늙음을 추하게 만들게 된다.

 아무리 귀한 금과옥조라 하더라도, 부탁받지 않은 충고는 절대로 하지 말라 했던 영국의 지성 세익스피어도 늙은이들의 추태를 미리 걱정해서 한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늙음이란 곧 말과 반비례하는 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늙음은 곧 말수를 줄이는 때란 얘기이다. 젊지 않다는 것은 삶의 경험이 그만큼 축적되어 있다는 것이고, 경험의 축적은 생각이 깊다는 뜻이며, 깊은 생각은 결국 말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언행일치까지 곁들이면 행동까지 조심한다는 뜻이 되기도 하니, 어른이 되어 하는 말은 많지는 않지만 결코 빈 말일 수가 없고, 또 그 말에는 행동이 따라가야 하는 책임감 또한 무거우니, 하고 싶은 말이 자연히 느리고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게 모두가 다 늙음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를 더해가면서 나이에 따라 변해가야 한다고 한다. 겉이 변하면 속도 따라가는 게 조화이기 때문이다. 겉(몸)은 늙어 주걸거리는데 속(마음)이 나이를 외면하고 팔팔 대기만 하면 주책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요즘은 반론도 드세다. 나이는 산술적인 것일 뿐, 내용이 아니라고 해서이다. 나이를 먹더라도 처지지 말고 마음을 다져, 활기찬 생활을 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이해하고는 있지만, 글쎄다. 격려하는 뜻과 사실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마음이 중요한 건 사실이나, 본래 인생이 무상하듯 건강이나 젊음이란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겉이 변해 가는데 속이 아니라 한다고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기 마련이다. 이게 자연의 섭리요, 하나님의 법이다. 결국 보조를 맞출 수밖에, 별 도리 없는 일이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 보조 맞추기를 거부하는 이가 있다. 이 분은 체구가 작다보니 80이 가까운데도 얼굴부터가 별로 주걸 거리지도 않고, 마음도 젊은이들 못지않은 신 사고의 인물이다. 그래서 언행도 젊은이들과 격 없이 나누지만, 젊은이들처럼 모습과 언행이 어딘가 어울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보기가 민망할 때도 있다. 아무리 신사고라 해도 쏟아내는 말들이, 말없이 풍기는 나이테와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아무리 접고 봐도 젊은이들처럼 활기찬 삶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이든 늙은이로 보아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조금은 유치해 보이기도 해서이다.

 마치 몸은 동양인인데도 마음은 동양인임을 거부하는 이민 2세들처럼, 결국 양쪽에서 소외를 당하는 외톨이가 되는 샘이다. 세상 섭리를 무시한 까닭이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나이에 걸맞는 본래의 모습이 더 귀해 보인다. 

 그래서 노인들의 역동적인 삶은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데서만 찾기보다는, 나이에 맞는 일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에 대한 열정도 아름답지만, 조화에서 나오는 늙음의 미덕은 더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생각이 깊어 언행에 품위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생각 자체가 후덕하고 행동 또한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그리고 생각과 행동에 흔들림이 없고 뭐든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것도 다 늙음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노인 인격도 바로 이런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이순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결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경지가 바로 노인 인격의 이상형이 아닐까? 이것은 출가해서 절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들뿐만이 아닌, 보통사람들도 묵언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묵언수행은 불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수행해가야 할 노후철학의 진수가 아닌가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