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로마의 원형극장

 로마의 원형극장 역시 로마가 지배했던 곳이면 으례히 있는 문화의 한 전형이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목욕문화가 로마를 망쳤다고 하듯이 원형극장 역시 만나고, 토론하고, 구경하며, 즐기는 곳이고 보면 로마의 멸망은 탐미적인 생활문화가 그 원인이 아닌가도 싶다.

 소위 가락의 민족이라는 우리가 이를 또 놓칠 수 있을까? 역사 속으로 들어 가보고 싶은 듯, 현지를 안내하던 안내양이 저 아래 바닥에 있는 무대로 내려가서 목청을 돋구어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관객이 되어 둥근 객석에 앉아 그 노래를 감상했다.  그러나 어찌 2,300년의 시공을 그리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다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인가, 목소리가 조금만 우렁차면 마이크 없이도 음악제나 연설회가 충분할 것만 같았다. 이 원형극장의 신비중 하나가 바로 음향의 조화란다. 무대중앙의 한 지점, 연설자가 올라서는 돌단 위에서 토해내는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도록, 객석을 원형으로 설계했다는 그 과학성에 우리는 놀랐고, 이를 증명해 보이려고 그곳에서 노래를 불러 본 것이란다.

  ㅇ 불가사이의 하나인 파로스 등대와 카이트베이 성체

 이날 점심은 지중해변, 한 조그만 2층 식당에서 생선요리를 먹었다. 바다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오랜만에 입맛을 돋구어 배불리 먹었다. 우리의 마늘과 김치냄새에 질리는 외국인들처럼, 우리 또한 그들의 조미료에 익숙치 못해 현지식은 대부분 체험 차원에서 건성으로 치려왔다.

 그러나 현지식으로 먹은 오늘의 점심이 유난히 맛있었던 것은, 맛도 맛이려니와 뜻 깊은 역사의 도시, 크레오파트라가 코브라에 물려 330년간의 왕조를 조용히 마감했던, 안타까우면서도 무거웠던 역사의 현장과 쪽빛바다라고 표현되는 아름다운 지중해변이, 때 지난 시장끼와 합쳐 맛있는 반찬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점심을 마치자 말자 길 건너 바닷가로 나갔다. 

 정말로 초록빛이 깔린 수정같이 맑은 바다다. 이를 쪽빛이라 하는가? 물도 맑고 색깔도 곱다. 깨끗하다는 동해안의 푸른 바다와는 또 달랐다. 여기 바위로만 뒤덮혀 있는 해변위에 백악관 같은 하얀색의 성이 하나 있다. 바로 7대불가사이의 하나였다는 ‘파로스 등대’가 있었던 자리에 세웠다는 ‘카이트베이 성체’ 이다. 

 파로스 등대는 BC 3세기말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건립한 등대이다. 높이는 180미터, 부속실은 300개, 불빛은 무려 50키로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세계에서 등대의 원조로 불리우는 초대형 등대였단다. 건축물도 건축물이려니와 당시 무슨 연료와 기술로 멀리까지 불빛을 보낼 수 있었느냐가 불가사이라고 한다.

 당시에 벌써 대형거울과 랜즈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여기에 햇볕을 모아 겨냥하면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 후 1,700년이 지난 후 14세기 초에 두 차례의 큰 지진으로 마침내 등대 전체가 수장되고, 그 훨씬 후에 그 자리에 당시 오스만 터키제국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건설한 것이 이 성체란다. 이름 하여 카이트베이 성체.  

 이 성체에는 또 18세기말, 프랑스의 나폴레옹 함대와 영국의 넬슨 함대가 벌렸던 유명한 해전사가 깃들어 있다고도 한다.

 ㅇ 크레오파트라

 힘없는 왕조를 지키기 위해 로마의 시저(일명:카이사르)와 연대했다가, 시저 살해 후 다시 안토니우스와 동맹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어온 왕조를 마감 후 어디에 잠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는 결국 남부 이집트의 상징인 코브라로 자결했어야 했을 때 무엇을 깨달았을까? 혹여 미모를 앞세운 외교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한 나라의 운명에는 종속적인 외교가 아닌 오로지 굳건한 나라의 힘이 우선이라는 뼈아픈 회한은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아름다운 지중해변에 서서 떠올려본 크레오파트라의 역사에서, 뜬금없이 우리의 국력과 우리의 외교가 함께 걱정되는 이유는 또 무엇 때문일까?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의 어려운 여건과 신통찮은 외교가 아니라. 한 발짝도 내일을 지향하지 못한 체 끝도 보이지 않고, 희망도 주지 못하는 우리의 끝없는 정치적 혼란이 아닌가 싶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 시대에 과연 우리에게 누가 있어서 이 혼돈을 정리해줄 것인가? 

 5천년의 짧지 않은 우리의 역사도 그동안 이어온 왕조들의 탄생과 멸망, 그리고 그 국운의 융성과 쇠퇴에 대해서는 우리들에게 사례를 들어가며 너무도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

 질곡의 과거사를 보는 우리는 때로는 분통을 터트리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고, 때로는 긴 숨을 토해내며 안도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박수를 치며 감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의 이 혼란이 더 안타까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오늘의 역사를 써내려가면서 무엇을 깨우치고 또 무엇을 다짐하고 있는지? 무릇 국가의 흥망성쇠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고 하는데,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법칙과 오늘의 현실과는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예 외면하고 있는 것은 또 아닌지? 무엇하나 석연한 게 없다.

  다음은 3일째 룩소르일대의 유적 이야기로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