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시간이 되자 곧장 회사에서 나온 기영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길이 더 막히는 바람에 시간이 빠듯했다.

 점심시간에 성준과 연락이 되어 7시에 한 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 놓은 터라 6시 50분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그러나 시계는 이미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양복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눈에 띄는 대로 주워 입은 다음 성급히 집을 나섰다.

성준이 만나자고 한 술집은 일본식 오뎅 바였는데 조명도 은은한데다가 오뎅 국물에서 모락모락피어 오르는 김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가게 안엔 성준이 홀로 앉아서 오뎅을 하나 베어 물고 있었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 퇴근 하는 데 길이 막혀서.”

“괜찮아, 나도 금방 왔어. 이거 오뎅 좀 먹어봐. 맛있네. 그나저나 너 저녁 안 먹었지? .”

“아직.”

“그럼 우리 우동 먹을까? 여기 우동이 맛있더라고.”

“응, 그리고 돈까스도 하나 먹자.”

“아주머니! 여기 우동 두 그릇에 돈까스 하나랑 정종 두 잔 주세요!”

성준이 한 손을 가볍게 들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근데 예비 와이프는 어쩌고 혼자 왔어?”

“야, 오랜만에 친구 만나는데 혼자 와야 맘 놓고 옛날 얘기도 하고 그러지.”

“왜, 옛날 여자 친구 얘기 하려고?”

“내가 여자 친구가 언제 있었다고 그래.”

“어, 시치미 떼는 거야? 너 현주 좋아했었잖아. 중학교 1학년 때 인가? 그때 너 약 올리는 거 참 재미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흥분했나 몰라, 아 너한테 줄게 있다 참.”

“청첩장 주려고?”

“오, 눈치 빠른데?”

“내가 뭐 눈치 빼면 시체지. 안 그래?”

“하긴 시험도 눈치로 풀던 녀석이니까.”

“그래도 집에서 너 몰래 공부 좀 했었어.”

기영이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항상 노는 것 같은데 성적은 잘 나와서 신기하다 했었지. 그건 그렇고 요즘엔 어떻게 지내?”

“졸업하고 취직해서 회사 다녀. 한 일년쯤 되었나.”

“무슨 회사 다니는데?”

“고려자동차.”

“야 대기업에 취직했구나. 축하한다.”

“축하는, 대기업이라고 좋은 것 만은 아니더라고, 경쟁이 치열한데다가 일도 확실히 해야 하고…… 너는 어때?”

“입시학원에서 고등학생들 수학 가르쳐. 나도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 애들 보면 공부에 치여서 지쳐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치여 사는 게 어디 고등학생들뿐이겠어?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야 그렇지. 근데 너 말하는 폼이 많이 힘든 가봐? 일이 잘 안 풀려?”

“그냥 뭐. 회사 일이란 게 다 그렇지. 다연씨 얘기 좀 해봐. 어떻게 만난 거야?”

“대학교에서, 너 다연씨 무슨 일 하는지 모르지?”

“응. 무슨 일 하는데?”

“바둑 프로기사야. 멋지지? 나도 나지만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다.”

“바둑 프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