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을 시작하겠습니다.

인사와 함께 계시기의 백쪽 버튼을 누른다.

흑 최철한 9단의 착수.

그리고 이어진 백 이세돌 9단의 착수.

그런데..

나는 순간 잘못본게 아닌가 싶어 앞으로 당겨앉을 수 밖에 없었다.

삼삼..

조치훈 사범님의 필승포석이 양삼삼이었다지만.. 지금 내 앞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은 이세돌 사범님.

속기바둑에서 나오는 새로운 모양은.. 상대를 당황시키고.. 상대의 시간을 단축시킨다.

아.. 험난하겠구나..

가야할길이 멀고 멀다는 예감.. 아니, 확신이 들었다.

이세돌 사범님의 삼삼에 당황한 것은 은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최철한 사범님이 입으로 손을 가져간다.

계시를 하다보면.. 그 사람만의 버릇이 하나 둘 눈에 익는다.

이세돌 사범님은 수읽기를 할때면 긴 손가락을 툭툭 두들긴다. 그러다 생각이 정리되었다싶으면 무척 빠른 속도로 착수를 한다.

확신에 찬듯한 착점. 얼른 돌을 놓고는 제빨리 거두는 손.

착점을 끝내고 나면 흘끗. 반상 너머의 상대를 쳐다본다. 그리고 상대의 착점을 기다리며 눈을 자주 깜빡인다.

옆에서 보면..  빨리 재미있게 놀자~ 더 재미있게 해보자~ 라고 조르는 아이같다.

최철한 사범님은.. 자주 손을 입에 가져간다. 간혹 교정기를 살짝 다시 물기도 하고..

손톱을 물어뜯는건지.. 수읽기를 하거나 상대의 착점을 기다릴때면.. 얼굴에서 손이 떨어지질 않는다.

조금은 긴장되보이고.. 또 조금은 초조해보이는 그의 행동을 보고있자면..

‘누구야! 누가 이렇게 괴롭혀! 누나(?)가 혼내줄께!’ 하면서 손 붙들고 벌떡 일어나고 싶을만큼 안쓰럽다.(물론 그러면 초유의 방송 사고이지 싶다..)

한수.. 한수.. 무척이나 진지하게 이어나가는 최철한 사범님..

착점하고.. 손을 거두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망설임과 갈등이 묻어나는 손놀림. 지금 사범님의 머릿속에는 몇 수십개의 변화도가 서로 싸우고 있겠구나.. 라고 느끼게 만드는 그의 손.

episode 4. 타고난 승부사?!

초반 포석.

신중한 최철한 사범님의 한 수.. 그리고 이어지는 노타임의 이세돌 사범님의 다음 수.

최철한 사범님의 표정이 자꾸만 굳어지고.. 손은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런 그를 흘끗 바라보는 이세돌 사범님.

눈을 깜빡이며 다음 수를 재촉하는 듯한 표정..

내가 지금 이세돌 사범님과 마주앉아있다면..

아마도 상대의 지나치게 빠른 응수가 매우 당황스럽고..

혹시 지금 상대가 원하는 대로 판이 짜여져가는건가...?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날 것 같다.

노타임의 빠른 응수를 두고.. 미리 포석 연구를 해온 거라고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가 준비한대로 판이 짜여지고 있기때문에..이렇게 빨리 두는 것일까?

이세돌 사범님은.. 그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상대를 당황시키고.. 도발하는.. 그러니까.. 상대의 평정심을 잃게 만들고 있었다.

타고난 승부사.

이세돌 9단.

우하변에서 흑돌 하나를 늘어두는데.. 9분이 걸렸다.

다시 말하면.. 최철한 사범님은.. 초반부터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또 다시 말하자면.. 은하도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장장.. 1시간 40분동안 계속해서 초를 세야 했으니까...

우리(?)의 험난여정... 갈수록 험난해지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