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좋은 기원엔 3급과 5급들이 많다.
아니 기원에 3급과 5급이 많으면 그 기원은 그나마 먹고 살만한 기원이다.
5급은 바야흐로 밤에 누워도 천장에 바둑판이 보이는 급수다.
인터넷 바둑에선 대략 1급부터 3단까지의 기력이 이 범주에 포함될 듯 싶다.
그 폭이 다소 넓은 것은 기원에 따라 5급의 위상이 그만큼 다른 탓이고 4급이란 급수가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3급은 참 어중간한 급수다.
잘 두는 것도 아니고 못 두는 것도 아닌 급수, 1급들에겐 밥이요 5급들에겐 경원의 대상이 되는 그런 급수다.
3급을 둔다는 사람이 기원에 나타나면 따뜻한 밥 한그릇이 왔다고 보면 된다.
물론 기원 찌기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3급의 폭은 5급보다는 좁지만 그래도 가지가지다.
인터넷 기력으로 보면 4단부터 6단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 2급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계실 것 같지만 사실 한국기원 지원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기원에 2급은 존재하지 않는 급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3급으로 분류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1급 아니면 3급인 것이다.
만약 기원에 2급을 두는 사람이 나타나면 찌기미들은 너무 너무 좋아한다.
왜냐하면 정선으로 둘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대구 경대병원 인근의 기원.
말쑥한 차림의 신사 한 분이 들어와서는 멈칫거린다.
기원원장이 급수를 물으니 2급이란다.
소파에서 끈기있게 밥을 기다리던 찌기미들의 눈에 광채가 일어났다.
용기 있는 자 미녀를 얻으리라.
성질 급한 찌기미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저와 한수하시죠 하며 바둑판 앞에 앉는다.
옆에 앉아 있다 기회를 놓친 찌기미들의 눈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첫 판을 두고 난 신사가 머리를 글쩍이자 찌기미는 눈을 반짝이며 내기를 권한다.
일부러 몇 집을 지고 난 찌기미가 슬슬 바람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옆의 찌기미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따뜻한 밥인데 나눠 먹자는 듯 경마를 하자고 난리다.
바둑을 둔 찌기미의 눈에 독기가 서린다.
밥은 한 그릇인데 나눠 먹자니 안될 일이다.
막 거절을 하려는데 신사가 오히려 그게 좋겠다며 옆의 찌기미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한 판 가볍게 져 준 찌기미의 눈에 절망이 스친다.

드디어 경마.
신사는 연전 연승을 거듭한다.
찌기미들의 안면이 연신 실룩거린다.
신사의 행마와 수를 보면 아닌데, 끝에 가면 꼭 몇 집을 지니 미칠 노릇이다.

경마는 계속되지만 찌기미들의 교체가 계속된다.
"니가 한 번 해봐~"
몇 판을 패한 찌기미가 고개를 저으며 물러나면 또 다른 찌기미가 불나방처럼 대어든다.
결국 몇 시간이 지나면 찌기미들은 상대의 정체를 눈치챈다.
그러면서도 대놓고 말은 하지 못한다.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번의 판돌이를 하여 찌기미들 모두가 포기를 하고 나면 신사는 유유히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이 기원은 1급들이 좀 약하군요"
그러면서 기원문을 나선다.
찌기미들의 인상이 일제히 구겨진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런 양복입은 신사를 꽃뱀이라고 불렀다.
같은 뱀을 잡아먹고 살기에.....
강자가 많기로 소문난 대구에는 유독 이런 꽃뱀들이 많았다.
기원에서 흔치않게 보는 한편의 서부극이었다.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라 기원의 총잡이 꽃뱀, 당하기 전에 그를 알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기력을 이마에 써서 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