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나도작가 코너에 글을 올려서 그런지 예전과는 다르게 일거리가 하나가 더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곤한다.
사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도 들고, 꼭 집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처럼 꼬랑지(?)가 땡기는 게 예사롭지가 않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싶어 꼬랑지를 떼어버리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데 그래도 마음먹은대로 되질 않는다.

직장에서 무슨 자그마한 일이라도 생기면 그걸 가지고 글을 한 번 써 볼까하는 생각을 하고, 거래처 사람을 만나도 가재눈을 해서 요사람은 뭐 글 쓸 거리 하나 안 주나 하는 생각이나 하니 내가 일을 할려고 사람을 만나는지 글을 쓸려고 사람을 만나는지 헷갈릴 때가 있을 지경이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일이 있어 거래처인 관공서엘 들렀는데, 일처리하는 담당자를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다 나의 18번 질문인 혹시 바둑 둘줄 아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이 서류를 만들어 주다 뜻밖의 나의 질문에 다소 멍한 표정을 짓더니 씨익 웃으며 그건 왜 묻느냐고 반문을 한다.
내가 가만히 앉아 기다리려니 하도 심심해서 그냥 한 번 물어봤다고 그러니 한참을 껄껄 웃는다.
그러면서 자기는 못 두는데 자기 과장이 바둑광이라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뜻밖이었다.
그리고 그 웃음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다.
우리 직원넘들에게 그 과장은 얼음골과장이라 불렸다.
어찌나 차갑게 굴고 사무적인지 연배가 비슷한 나에게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물론 납품업체와 감독부서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했지만 다른 관공서에 비하면 그 도가 지나친 면이 없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바둑광이라니 입맛이 땅겨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담당자의 키득거리는 표정에서 오는 뭔가가 있었다.
바둑을 둘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광이라는 단어가 뒤에 붙었다는 게 바로 그거였다.
그렇다면 분명 뭔가 광이라는 소리를 들을 짓(?)을 직원들 앞에서 했을 것이고, 키득거리는 거로 봐서 그것은 이 부서에 공표된 그 무엇이어야했다.
그렇다면 머 뻔한 것 아니겠는가.
혹시 지금 저 칸막이 뒤에 앉아 전자결제를 하는 척 하면서 바둑을 두고 있거나 컴 밑창에 바둑사이트를 숨겨두고 바둑에 관한 글을 읽으며 킥킥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람은 다 머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러고 보니 맨날 인상을 쓰며 차갑게 구는 것도 다 그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나도 예전에 도둑바둑질(?)을 할 때는 일부러 인상을 쓰며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아예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막지 않았던가.

담당자가 서류작성을 마치고 나에게 건네주자 나는 능청스럽게 그걸 받아들고는 과장 자리로 갔다.
평소 잘 하지 않던 이글이글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작별인사를 하는척하며 과장이란 사람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폈다.
머 별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그랬지 않은가.
일하는 척 하면서 태연히 바둑둔게 어디 한두번인가.

"거, 담당에게 들으니 바둑을 아주 잘 두신다면서요 허허..."
평소같으면 인사나 꾸벅하고 갈 넘이 말을 걸자 과장도 의외인 모양이었다.
"아, 예... 일은 다 끝나신 모양이죠?  뭐......이제..가실려구요?"
그는 뜻밖의 바둑 이야기에 당황을 한 것인지 하여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충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건수라도 이런 대단한 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 바쁘시면 차나 한 잔 주시죠?"
그러면서 내가 그의 앞에 놓인 응접탁자에 불쑥 앉았다.
평소와는 다른 나의 모습에 그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녹차를 한 잔 내어왔다.
"바둑은 얼마나 두시죠?"
"머 한 3급 둡니다만,,,"
"그래요? 그럼 나와 비슷하네요...허허..맞수라..."
그는 계속된 나의 바둑 이야기에 다소 곤란한 모양인지 연신 눈치를 준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정말 바둑두고 있다가 나 때문에 시간패를 당한 건 아닌가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가 좋을 듯했다.
조금 남은 찻잔을 비우고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언제 시간 나시면 저하고 요 근처 어디 기원에 가서 바둑이나 한 수합시다"
그렇게 툭 한마디를 뱉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관공서를 나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 어렵게 생각되던 과장이란 사람이 바둑 둘 줄 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갑자기 만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건지 정확히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대국실에 있는 그 많은 아이디중에 저 사람도 분명 그 한 사람일 것이고, 어쩌면 저 사람과 내가 예전에 바둑을 한 수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유쾌해지고 앞으로 생길 다양한 건수(?)에 웃음이 비실비실 마구잡이로 기어나왔다.

싱글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직원넘들이 무척 의아한 모양이었다.
"머,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응, 거 관공서에 얼음골 과장있지...허구헌날 인상만 쓰는 사람말이야..."
"그런데요, 그 사람이 왜요?"
"그 사람 알고 보니 바둑 둘줄 안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