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알면 한반도 통일이 보인다(5회)

1,2,3,4 부를 안 읽으신 분은 이해를 돕기 위하여 1,2,3,4부를 먼저 읽으신 후 5부를 읽도록 권합니다

고르비의 등장

소련은 1922~1923 년 레닌을 시발로 1923~1953년 스탈린, 1953~1964년 후르시초프, 1964~1982년 브레즈네프, 1982~1984년 안드로포프, 1984~1985년 체르넨코까지 우리들 귀에도 익은 독재자들이 공산당 제1서기장이자 국가 원수로서 소련을 통치하였다. 그러나 천년 만년까지 계속될 것 같은 소련 땅에 드리워진 철의(鐵衣) 장막이 걷히고 경천동지할 사변이 발생한 것은 체르넨코의 사망으로 서기장직을 승계한 고르바초프(1985년~1991년)에 의해서였다. 고르바초프가 취임하고 그가 주재한 공산당 정치국 첫 비밀회의에서, 소련 인민의 생활 수준은 너무나 나아진 것이 없다. 우리는 동서 이념 전쟁에서 졌다. 우리 인민이 가난한 것은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음모 때문도 아니며 그들의 경제 봉쇄 때문도 아니다. 철의 장막 속에 갇혀서 공산당이 나라 경제를 망쳤다. 공산국의 종주국이라고 자처하지만 우리의 위성국 동독보다도 낙후된 소련이 무슨 수로 미국과 경쟁을 한단 말인가! 우리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공산당은 국가 운영에 간여해서는 아니 된다는 자기 고백과 공산당의 내정 간섭을 금지시켰다.

그 후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각종 제도의 개혁과 더불어 서방 세계에 자신들의 치부(恥部)와 취약점을 낱낱이 드러내고 서방 여러나라와 협조하고 도움을 받으며 더불어 살아갈 정책들을 펴 나겠다고 선언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다. 고르바초프는 1988년도에는 공산당 서기장에 이어서 연방최고회의 간부회의장 직에 까지 취임하여 입법부까지 장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렇지만 그 때까지 소련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이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임자들과 같은 구두탄일 뿐인지 하고 반신반의하던 중, 1989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버그에서 열린 유럽 연합 회의에 그 때까지 소련의 국가 원수들의 영부인은 늘 베일 속에 싸여서 대중 앞에 공개하지 않던 금기를 깨고 미인인 영부인을 대동하고 참석한 고르바초프가, 미국 23 대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필적하는 제2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관한 중대한 발표를 한다.

그 내용은, ' 바르샤바 조약국들은 앞으로 모든 자국 문제를 자국 인민의 뜻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어느 나라도 주권 국가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 소련은 앞으로 바르샤바 조약국들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 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는 과거 소련의 위성국들은, 국내 중요한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사전에 소련과 협의해야 한다는 소련의 위성국 내정 간섭의 근거가 됐던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무효화하는 획기적인 선언이었다. 고르비의 이 선언은 독일 통일은 소련이 좌지우지할 문제가 아니라 독일 내부의 문제라는 함축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고르비의 업적

동서독은 물론이고 동구권 소련의 위성국들은 고르비의 용단을 뜨겁게 환영했지만 봇물처럼 분출될 국민들의 민주화 욕구와 공산당 타도 주장과 독재자들의 하야나 처벌 요구로 귀결될 후유증 때문에 공산권 국가원수들을 전율하게 만든다.

소련의 국가 원수로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그의 광범위한 개혁과 유연한 국제 관계 및 대외 정책으로 서방에서 ' 고르비 ' 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6년의 재임 기간중 다음과 같은 다양한 업적을 남긴다.

1. 공산당의 내정 간섭 금지 실행

2. 소련의 대외 개방 및 개혁 정책 선포 및 추진

3. 철의 장막을 걷어냄

4. 아프칸 파병 소련군 철군

5.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

6. 동서 이념 대결 포기로 냉전 종식

7. 미국과 전략 핵무기(중거리 핵탄두) 유럽에서 철거하는 감축 협상 체결 이행

8.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 직에 등극(1990.3.15~1991. 12.25)

9. 소련 공산당 해체

고르비는 당초 공산당을 해체까지 시킬 의향은 없었다. 1990년 군부와 공산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독 주도의 독일 통일에 동의하고 이를 추진하자 동독 등 위성국에 주둔하던 250만명 이상의 독일군이 소련으로 귀국하고 본인 의사와 관계 없이 남아도는 철군 병력에 대한 강제 전역 등 불안을 느낀, 소련 군부, 공산당, 비밀 경찰(KGB) 등 극우 보수파들이 1991년 8월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절대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못 받고 3 일만에 실패로 돌아가자 대통령 권좌를 되찾은 고르비는 소련 역사와 함께 해온 공산당을 전격적으로 해체하고 역사 속으로 날려 보낸다.

10. 독일 통일 조약 체결

1982년도에 취임하여 독일 통일의 성업을 달성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국내적으로 조용히 통일 기반 조성에 전념하는 한편 데탕트를 통하여 동서독 간의 긴장 완화 분위기 조성과 소련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여 소련에 수차례 직접 방문하거나 고르바초프를 초청하는 등으로 유대를 쌓고 소련이 어려울 때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경제적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서독에 의하여 동독이 흡수통일 되더라도 소련에 손해가 없다는 인식을 점차 넓혀 가도록 만든다. 고르바초프를 정신적 지주라고 부르면서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고 국제회의 석상에서도 서방 지도자로는 유일하게 소련의 입장을 옹호하여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환심을 고르비로부터 받게 된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콜 총리의 주도면밀한 접근과 설득에 이해를 함께 하고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을 설득시키게 되는 데 호네커는 처음에 완강하게 반대하지만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달리 선택이 없게 되자, 동독 지도자들에 대한 통독 후 보복이 없을 것임을 보장하는 선에서 묵시적 동의를 받아내지만 동독의 비밀 경찰 총수를 비롯하여 호네커 등에 대한 면책은 지켜지지 않고 통일 독일에 의하여 단죄된다.

독일 통일 조약의 공식 명칭은, ' Treaty on the Final Settlement with Respect to Germany ' 로 독일에 대한 최종 결의 조약 ' 으로 번역할 수 있다. 전승 4개국과 동/서독 정상들이 합의했다는 의미에서 Two(동서독) Plus Four(승전 4개국) Treaty(조약)란 약칭으로 흔히 불리는 독일 통일 조약은 1990년 9월 12일 모스코바에서 체결되고 독일의 재통일과 독자적 주권 회복(전승 4개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을 4 개국이 보장하였다.

동 조약의 주요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점령 4 개국은 독일 영토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

2) 1991년 3월 15일부로 독일은 완전 공식 재통일을 성취한다

3) 동독에 주둔하는 소련군은 1994년도 말까지 완전 철군한다. 당초 미영불 3개국과 서독은 소련군의 즉각적인 철군을 바랐지만, 통일 당시 동독의 276 곳에 육상기지와 47개의 비행장, 116개의 전술훈련장에 주둔하던 군 전력 24개 사단, 4,200 대의 탱크, 8,200대의 기갑 차량, 690 대의 전투기와 680대의 헬기, 군병력 338,000 명과 군인 가족 및 군속 208,000 명, 도합 546,000 명의 대규모 인력 및 물자를 수송하고 소련 내에 귀국자들을 수용할 관사와 장비를 보관한 시설 마련과 소요 예산의 문제, 건축 및 토목 공사에 소요되는 시간 등을 이유로 통일 후 4년 3 개월의 체류 연장을 요청하여 반영시킨다. 뭐니 뭐니 해도 소련군의 철군 지연은 머니가 문제였고 서독과 소련은 철군 비용 협상을 계속하여 20억 마르크(현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한화 10 조원 상당)을 서독이 지원하기로 합의했는데 독일인들은 공식 합의금 외에도 추가 금액이 테이블 밑으로 건너간 것을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소련은 그 돈으로 귀국한 군인들의 관사 건립에 요긴하게 사용하였지만 수월치 않은 뒷 돈을 받았음에도 워낙 어려운 경제 사정때문에 소련군은 군인들의 급여도 지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곤란을 겪자 현역 군인들을 대폭 조기에 예편시키는 병력 감축 조치를 단행하여 당초 철군 계획보다 4 개월 빠른 1994년 8월 31일에 소련의 마지막 잔류 병력이 동독 땅을 떠남으로써 적군(赤軍)이란 이름으로 1944년 스탈린그라드를 넘어서 나치 독일군을 추적하여 독일 땅에 입성했던 소련군은 50년 동독 주둔 역사를 청산하고 더 이상 소련 적군이 아니라 러시아 군으로 탈바꿈하여 그들의 왔던 길을 되짚어서 볼가강을 건너고 스탈린 그라드에서 옛 이름을 회복한 볼고그라드를 지나서 처자와 식솔들을 대동하고 귀국함으로써 소련군과 독일 민족의 악연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소련은 자신들의 군대를 동독에서 철군시키면서도 독일땅에 주둔하는 NATO 군(미군)의 철군을 주장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추측컨데,

가) 동독이 아니라 서독에 의한 흡수 통일이란 점을 감안하고

나) 미군이 통일 독일에 소련에 대한 도발을 선동할 이유가 없으며,

다) 독일이 혹시라도 본 조약을 어기고 소련이나 동구권에 대한 침략 전쟁을 시도하고

자 할 경우 미국이 억제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본 것이다.

4) 통일 후 독일은 구 동독 지역에 방어용 재래식 무기를 반입하는 것은 가능하나 어떠한 핵무기도 반입해서는 아니 된다.

5) 소련군이 완전 철군할 때까지 연합군(미/영/불/소)은 베를린에 남아있는다.

6) 통일 독일의 총 병력은 37만명을 초과할 수 없다. 그중 육군과 공군은 345,000명 이하라야 한다.

7) 독일은 핵무기, 생화학 무기를 제조하거나 보유해서는 아니 된다.

8) 베를린과 통일 전 동독 지역 6개주에 외국군대의 주둔이나 핵무기의 반입, 핵 항모의 진주는 금지한다.

9) 통일 독일은 얄타 협정에서 인정한 현재의 국경선을 인정하고 이를 변경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해서는 아니 되며 이 문제는 독일과 폴란드가 별도의 협정으로 확인한다.

11. 후임자 옐친에 의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USSR)을 해체하여 러시아라는 독립국가 연합을 창설하도록 하는 계기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