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숨겨진 이별.

내가 견디지 못할 수치와 모멸감으로 폭발 직전에 몸을 떨며

매를 맞고 있던 그 옆자리에 김 하사가 엎드렸다.

“무슨 짓이냐?

.어서 일어 나거라.!“

박 상사에 노기 어린 음성이 명령으로 떨어졌지만

김 하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포탄과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적의 방어선을 뚫고

적진 앞 으 로를 목쉬게 외치며 선두에서 돌진하는 신임 소대장 같은,

김 하사의 다소 비장한 목소리가 단발의 총성처럼 울렸다.

총성은 갑작스런 황당함과 어색함을 깨부수며 팽팽한 긴장감으로

부푼 풍선처럼 꽉 차있는 행정반의 화산 같은 공기를 송곳처럼 찔러왔다.

“현재 포대에 배속된 병력은 모두 제 부하입니다.

부하들이 잘못을 했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제일선임인 제게 있습니다.

벌을 주셔야 한다면 그건 모두 제 몫일 겁니다.

만약 꼭 맞아야하는 일이라면 모든 책임은 지고 제가 맞겠습니다.“

한참이나 정적이 흐른 뒤에 예상치도 못했던 호탕한 박 상사에

천둥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게 군인 이야!

불알 찬 사내새끼들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거야!!

둘 모두 일어나라!!“

‘으하하하!“

피에 젖은 바지를 끌어올리며 엉거주춤 일어나 간신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내 얼굴 앞에 장쾌한 박 상사의 웃음이 터져

춤추는 무녀의 얼굴처럼 다시 다가왔다.

웃음이 끝나고 또 한 번의 정적이 지나갔다.

정적이 지루해 김 하사와 내가 눈을 맞추어 가는데 말없이 서있던

박 상사가 불쑥 내게 손을 내밀어왔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잊어 버렸다.

방금 전까지 얼굴과 바지에 피를 흘리며 내가 맞고 있었다는 사실과,

계급과 작은 권력에 의지해 자신의 불만과 분노로 주먹과 몽둥이를

미친놈처럼 휘두르고 있던 폭군이 박 상사였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박 상사가 내민 솥뚜껑 같은 그의 손을 나도 모르게 힘차게 맞잡았다.

나도 모르게 사나이들의 굵은 세상 속으로 왈칵 들어 가버린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는 군복 앞섶을 툭툭 털며 일어선 김 하사가

나를 보고 싱긋 던진 그 웃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냥 가슴이 벅차고 뜨거웠다;

한 뼘은 차이가 날 큰 키에 박 상사 옆에 서있어도

김 하사는 전혀 작아 보이지 않았다.

막혔던 둑을 뚫고 흐르는 힘찬 물살처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

박 상사의 웃음은 차갑던 행정반 공기를 후끈한 사나이들의 열정으로

붉게 달아오르게 만들며 오래도록 퍼져나갔다.

폭풍은 지상에 많은 폐해를 남기고 가지만

하늘엔 언제나 그랬듯 맑고 푸른 청량함을 함께 남기고 갔다.
 

한참이 지난 뒷날에 일이지만,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고 인사차 갔던

부대 앞 술집 천안 댁에게서 비밀엄수를 맹세하고 들었던

젊은 날 박 상사의 비화는 식어가던 내 피를 또 한 번 뜨겁게 데워왔다.

그 날 격하게 내밀어 오던 박 상사의 손을 나도 모르게 잡게 했던

그 알 수 없는 힘은, 김 하사가 아닌 박 상사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사나이다움 때문일 꺼 라는 내 가슴속에 은연 중 숨어있던

가설을 뼈대 있게 세우게 해주었다.

부대 대원들 앞에서 뺨을 맞고도 항변조차 못했다는

나약했던 친구 중사에게 주접스런 위세를 부리던 옆 부대

보병연대 대위 계급에 당시 중대장을 죽지 않을 만큼 패대고,

군인이 사회에서 폭행을 했다고 헌병대 영창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중사 시절에 박 상사 행적은 사내모습을 듬뿍 담고 있었다.

상관폭행에 죄명이 걸리면 불명예제대는 물론이고 군복을 벗고

군 교도소로 직행할 큰 사건이다.

그런 중차대한 위기에 순간에도 팬티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사단영창에서 아주 편하게 하루하루를 잘 먹고 잘 자고 있다는

사건 보고를 받고, 대범하고 사내다운 호기로움을 높게 사주었던

당시 사단장을 만난 건 박상사의 대단한 홍복 이었다.

공수 여단장을 지냈던 전임 사단장이 껄껄 웃으며 계급 없이 싸운

사내들끼리 싸움으로 처리하라는 사단장 비공식 특명을 내린 배경에는,

폭행 장소가 부대가 아닌 번잡한 술집이었고 사복을 착용했으며,

포단과 연대가 멀리 떨어져 교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군인끼리인지를

서로 모를 수도 있었다는 가정을 전제로 일단락이 되었다고 한다.

빠져 나갈 퇴로를 열어 두고 상관을 폭행한 박상사의 영악함이 숨어 빛난다.

체면에 몰린 중대장은 항소를 포기하고 타부대로 자원 형식에

전출을 갔고 박 상사는 주점에서 난동을 부린 죄명을 만들어

3개월 감봉으로 끝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고,

위험을 감수하고 약자를 도와준 의리의 사나이를 만났다.

그날 들었던 박 상사가 장쾌하게 토해내던 웃음이 결코 비열 하지 않은

진정한 사나이의 큰 웃음 이였다는 것을 가슴 벅차게 다시 한 번 느꼈었다.

군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애국 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앞에 걸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 한다는, 위선에 가면을 두텁게 쓴,

영웅처럼 추앙을 받았던 추악한 군인을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병사들을 추위와 배고픔에 떨게 하며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무지로 순진한 대다수의 군인을 기만하며 검소와 절약을 덕목으로

자신의 부정을 위해 세뇌를 공작했던 부끄러운 별을 단

협잡꾼 장군들과 그의 추종자들.

숱한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던 위정자를 닮지 못해 안달하던

추하고 비열한 군인들 틈에서 어쩌면 그는 진정한 군인 이였는지 모른다.

대통령 특명으로 전군 부대 막사 앞에 심어졌던 무궁화가

게으른 기지개를 피며 봄을 오라고 손짓한다.

남쪽 산간지대로 앞서간 타지에 봄 뒤를 따라 헐레벌떡 거리며

늦 걸음을 하는 원주에 봄도 어느새 우리 곁으로 살며시 돌아왔다.

새순을 피워 올리며 늦은 꽃망울을 준비하던 무궁화나무를 돕듯

봄비가 조리에 물처럼 천천히 고루고루 뿌려지며 내리던 4월의 어느 봄날.

우리 포대 대원들은 선임하사 한분을 더 모시게 되었다.

김 하사가 중사로 진급을 했다.

대대장과 포대장에게 진급 신고를 마치고 내무반으로 들어오던

김 중사가 새 계급을 쑥스럽게 손으로 가렸다.

이 시간에는 분명 아무도 없어야할 내무반이다,

포탄 사격장이 있는 홍천을 다녀온 부대전력 점검훈련 뒤에

장비 점검과 보수정비로 연병장에 나가 있어야할 병력 들이다.

그런 내무반에 점호시간처럼 제 1~2 내무반통로에

문이 활짝 열려있고 침상위에 열외 없이 전원이 부동자세로

각 지게 정렬해 있는 포대 대원 들을 보고 김 중사는 매우 놀란 것 같았다.

얼떨떨해 서있는 김 중사를 통로 중앙 주번사관이 점호 등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 세웠다.

“부대 차렷!!”

“신임 선임하사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사단장도 못 들었을 힘찬 목소리로 포단이 뜰썩이도록 구호가 울려 퍼졌다.

군 생활 중 보고를 하기위해 했었던 뒤로돌아 자세 중

가장 멋진 동작으로 돌아서서 경례를 올리며 보고자의 구호를 외쳤다.

“충성!!!

“충성!”

답하는 김 중사에 눈가에 눈물이 짧게 머물다 사라진다.

“진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 목소리에도 물기가 배어있다.

“축하드립니다.”

와글와글 축하의 인사가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 잡는다

“전체 동작 그만!!

선임 하사님 훈시가 있겠다.

부대 차렷!!!“

목이 살짝 멘 김 중사에 첫 번째 명령이 떨어진다.

“쉬어”

구령 복창을 끝내고 나 홀로 부동자세로 섰다

“내무반장 고맙다

그리고 모든 부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훈시 끝!!“

계급의 무게만큼 김 하사는 중사로 훌쩍 자라있었다.

“부대 차렷!”

“신임 선임하사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이렇게 뻑적지근한 진급 축하를 받은 하사관이 또 있을까?

김 중사와의 동거는 그렇게 끝났다.

오늘 저녁부터는 김 하사는 영외거주로 출 퇴근을 하게 된다.

함께 살던 동생 장가보내는 형의 기분처럼 묘하게 마음이 들뜬다.

“충성!!

형님 고맙습니다. “

중사가 하사에게 경례를 부치고 퇴근을 한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 속에 국방색 우의를 입은

김 중사의 모습이 작아져 흔들리다 사라지자, 하릴없이 돌아선 내 앞에

어느새 맺혀있는 무궁화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린 꽃망울들이 다가왔다.

곧 꽃이 필 것이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고

아주 선명 하진 않으나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윗 막사에 걸려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까닭모를 즐거움으로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지는 석양을 보던

편안한 안식 같은 휴식 뒤에 바짝 따라붙어 고개를 파묻고 숨어 있던

아파야할 시간들이 있었음을...

오래지 않아 김 중사를 영영 보내야 하는 이별이 도사리고 있었음도.



                                                              -끝-

그때의 댓글입니다.

조아해유 ｜ 2010-12-12 오전 10:58:4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캬아 ,중대배치첫날 밤새도록 터지던 기억과 행정반 배치받던날 줄빠따 맞은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며 입가에 웃음이 맴도는군요..담편을 학수고대함니다..구우벅'

一圓 그런 기억들을 새롭게 다시 만들수 없어 더욱 소중해지나 봅니다 고맙읍니다

홍선비 ｜그래도 박상사는 차라리더 인간적이군요.나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위해 젊은 병사들을 배고픔에 떨게한 저위에 높은 계급들에 분노를 느낍니다.6.25때 그 참혹한 전쟁중에도 군수품을 착복하여 수많은 병사들을 죽게만든 가증스런 관습들이 그때까지도 .....

一圓 부정부패가 판 치던 어둡던 세월이 절망도 함께 주었죠 참 많이 세월이 변했읍니다 고맙읍니다

AKARI ｜ 2010-12-12 오후 6:25: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흐읍... 반전이 있을것 같아여..ㅠㅠ

一圓 예견을 함께 하고 봐주시니 쓰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고맙읍니다

꿈속의사랑 ｜ 2010-12-12 오후 8:23:4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일단 김하사의 극적인 출현으로 대반전이.....

一圓 그때는 멋진 사람이 부대에 한둘은 있었는데...지금은 어떤지 궁금 합니다 고맙읍니다

당근돼지 ｜ 2010-12-13 오전 5:28: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졸병시절 매일밤 야구방방이가 엉덩이 위에 춤추던 시절........지금 군대는 생각도 못할일

실감나게 써주셔서.......잘 보고 갑니다.

一圓 시절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지만 웬지 사람 냄새나던 그때가 그립읍니다 고맙읍니다

팔공선달 ｜ 2010-12-13 오전 7:50: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래도 저래도 군대는 짬밥이라고...^^&

몸으로 말해야 하는게 군대라 봅니다.

一圓 낙수가 돌을 깍듯 짬밥이 군인을 만든다는데 저도 1표 ㅎ 고맙읍니다 가능동아이 ｜ 2010-12-13 오후 10:57: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너무 살벌하네요...

그래서 더 몰입하게 되는건지도 모르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一圓 너무 팽팽해 끊기지 않도록 참고 하렵니다 고맙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