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티벳바둑에서 또한 주목되는 것은 반면 운영상의 특이규정이다. 그것은 사석을 잡은 자리에 바로 놓지 못하는 규정이다.

이 규정을 채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You must wait one move before killing any one-eyed group or before playing where a stone, or stones have been captured.(Peter Shotwell, 'Go in Snow')

(한 집인 말을 죽이기 전 또는 사석을 들어낸 자리에 착수를 하기 전에 한 수를 쉬어야 한다.)

통상 우리가 패에 대해서 팻감을 써는 것은 '동형반복금지의 원칙' 때문이다.

패 하나 생긴다고, 그 바둑을 비긴 것으로 하고, 그만 둘 수는 없기에 패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에 한 수를 쓴 후에야 (팻감을 쓴 후) 다시 원하는 그 자리에 둘 수가 있다. 그러나, 패보다 더 복잡하고, 자주 일어나지 않는 삼패,  장생 등의 경우에는 동형반복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금지의 원칙을 적용시키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원칙이라고 쉽게 부르지 못하는 것은 홍길동의 호부호형(呼父呼兄)보다 더 안타까운 바이다.

그런데 티벳의 경우에는 동형반복금지의 원칙이 아니라, 불교에서 원용한 소위 '자비의 원칙'이 실현되고 있다. 그것은 패의 형태 뿐 아니라, 사석을 잡은 자리나, 포위된 미생마(未生馬)의 급소 일격에로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자비의 원칙에서 나오는 것뿐일 것인가?

8) 티벳바둑에서는 계가시 사귀생을 당한 쪽에 20 포인트(point)의 페널티(벌점)를 물리고, 통어복을 획득한 쪽에는 5 포인트의 프리미엄(상점)을 주고 있다. 그런데 월간바둑에서 확인되는 시킴바둑의 계가규칙은 사귀생에 30집, 통어복에 20집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을 그냥 단순히 읽으면, 25 포인트(사귀생 20 + 통어복 5)와 50 집(사귀생 30 + 통어복 20)의 큰 차이가 발생하여 증언된 사실들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티벳은 중국의 국가영역에 속하므로, 증언자들의 증언을 중국바둑에서의 인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1 포인트(point, 점)는 중국바둑 규칙의 1 자(子)이며, 이것은 한국 및 일본바둑의 계가기준으로는 2 집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세부 사항은 조금 달라도 사귀생 통어복이 합계 50 집인 것은 변함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월간바둑 2005년 8월호의 장주주 루이나이웨이 부부의 티벳바둑 보고에 따르면 팔보도(八寶圖)라는 계가규칙이 하나 더 보인다. 팔보도를 완성하면, 8 자(16집)를 얻는다는 것이다. 팔보도 규칙의 세부내용이 궁금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사귀생과 통어복 그리고 팔보도 모두 배자(排子, 配子)와 관련된 규정일 것이다.

이 사귀생 통어복의 가점(加點, Advantage) 중 통어복과 관련하여서는 쇼트웰(Peter Shotwell)은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천원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고, 프리미엄이 있다. 따라서 누구든 먼저 천원을 확보하고 싶을 것이다. (현대 바둑에서 이것은 매우 쉽다. 그냥 그자리에 두면 되기 때문이다. 신포석에서 오청원이 그렇게 했고, 순장바둑에서는 16 배자 후 흑이 그냥 그 자리에 두어버린다. 결국 천원에 프리미엄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먼저 둔 사람의 차지가 된다. ) 

따라서 티벳바둑에서는 천원으로 쉽게 가는 것에 제동을 걸 필요가 생겼다. 그것이 기착점의 한 칸 이내에 두어야 하는 착수 규정이다. 이제 대국자들은 착수 규칙을 지키면서 서로 먼저 천원으로 가려고 경주하게 된다.

쇼트웰의 관점은 바둑의 한 형태(Variation) 중의 하나인 티벳바둑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티벳바둑이 바둑의 원시적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필자의 관점과는 해석의 방향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쇼트웰의 해석은 그대로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는 최소한 규칙의 이면에 있는 원리에 대해 합리적인 추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티벳바둑의 특징은 더 많이 있다. 예를 들면, 9) 반상위의 정형화된 舌戰(Tongue Fights), 10) 동물들을 형상화한 바둑용어, 11) 천원의 금강저(vajra) 문양, 12) 그외 뵌교나 불교와 관련된 전승 등 끝이 없는 이야기이어서 본론을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티벳바둑 이야기는 이정도 하고, 티벳의 또다른 바둑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티벳사람들은 바둑을 믹망(mig mang, 密芒, 藏圍棋)이라고 한다. 이것은 많은 눈(many eyes)이란 뜻인데, 사실은 바둑판을 일컫는 말이다. 즉 그들은 믹망(바둑판)에서 바둑을 두므로 바둑을 믹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믹망(바둑판)에서 두는 것은 바둑 말고도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또다른 믹망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bKugom bu Chos 또는 Gundru라고 한다.

이 또다른 믹망의 정확한 규칙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게임은 끼워먹기(협식, 挾食, custodial capture)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한단순의 예경에도 협식 관련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夾食者 二人黃黑各十七 其橫列於前第四道上甲乙迭推 二棊夾一爲食棊 不得食兩 不得邊食 不由道則不行棊 入夾不取食 一棊爲籌 賭多少隨人所制

협식(끼워먹기)이란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황(黃)∙흑(黑)의 棊(말, 돌) 각 17개를 제4도(線) 위에 가로(橫列)로 늘어놓고, 갑과 을이 번갈아 민다. 말(棊) 두 개로 하나를 끼워서(夾) 먹는다. 두 개는 먹을 수 없고, 변(邊)에서도 먹을 수 없다. 길(道)이 아니면 돌을 움직(行)일 수가 없으며, (상대의 말이 자기의 두 돌 사이로) 끼여 들어온 것은 먹을 수 없다. 棊 하나에 (얼마씩) 계산(籌)하며 당사자들이 정한 대로 내기를 한다. (김달수, '바둑의 기원과 관련된 문헌의 재해석')

그런데 김달수 박사가 번역한 소천탁치(小川琢治)의 '중국 위기의 기원과 발달'에 나오는 원문은 조금 다른데 아래와 같다.

夾食者 二人貴黑各七十 棊橫列于前四道上 甲乙迭推 二棊夾一 爲食棊 不得食十兩 不得過食 不由道則不行棊 如挾不取 食一棊爲籌 賭多少隨人所

아무래도 김달수 박사의 논문에 나오는 문장이 더 이해하기 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원문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일단 두 원문을 함께 놓고 보면 이상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1) 백(白)이 아닌 황(黃)과 귀(貴)의 정체, 2) 김달수가 十七(17)으로 인용한 소천(小川)의 七十(7 10), 3) 4 선 포진과 화점의 자리, 그러나 소천(小川)의 前四道(4 선 앞)에서의 전(前)이란? 4) 갑자기 왠 갑을(甲乙), 5) 소천(小川)의 不得食十兩과 김달수의 不得食兩과의 차이, 6) 소천(小川)의 過食과 김달수의 邊食 등... 

이 역시, 협식을 단순히 이해하고자 할 때 교독하는 행위와 원자료의 원천 의미를 통해 바둑의 기원을 탐구하는 행위와의 차이에 의해 달라지는 문제의식에서의 이상함이다. 그러나 필자는 연구자가 아니므로 당분간은 2차 자료로 살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티벳의 믹망은 협식만 하는 것이 아니다.(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