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한 벗들과 함께 단풍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남녘의 모 절을 찾은 일이 있었다.

우리들이
도착한 경내에는 단풍구경을 나온 소풍객과 법회 기도회를 참석하기 위해 나선 신도들로 하루 종일 북적거렸다.

일주문 밖의 주차장에는
자가용 승용차들과 관관 버스가 빼곡하게 들어차고 더러는 계곡 옆에 난 진입로에까지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절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웅전 앞마당 한옆에 자리 잡은 기도회 접수처 였다. 승복 바지를 입은 여신도 두 사람이 장부를 펼쳐놓고 앉아 접수를 받고 있는 제목은 ‘수능시험합격 기도회’ 였다.

젊은 부인, 나이든 부인들이 썩여 돈을 내고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중 한 아낙에게 같이 동행한 벗이 물었다.

“누구에게 빕니까?”

“부처님에게 우리 둘째아들 수능시험에 붙게 해달라고 빕니다.”

“부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낙은 대웅전 안의 아미타불을 가리켰다.

“저기 있지 않습니까.”

“구리물을 입힌 저 물건이 사람의 운명을 이리저리 변화시킨단 말입니까?”

“그래도 부처님이잖아요. 부처님이 아니라면 무었 때문에 저기 앉혀 놓았겠어요. 그리고 스님들이 무엇 때문에 참배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겠어요.”

아낙의 기도는 참으로 간절했다. 그녀는 하루에 수 백 번의 절을 하고 경전을 외우면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실 거라고 했다.

한낯의 대웅전은 그녀와 더불어 무슨 소원을 빌며 절을 하는 여신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들에게 있어 절은 기도의 도량이었다. 일반 신도들도 대부분이 그랬다. 할머니들은 기도와 염불을 통해 극락왕생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기도의 도량’을 살짝 벗어나 개울 하나를 건너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싼 선원이 나왔다.

문밖에는 ‘외부인 출입금지’란 푯말이 길을 막았다. 아직은 해제 기간 이어서 선방의 대중들은 모이지 않았고 본격적인 수행도 하지 않는 철인대도 이 푯말은 여기가 속세와의 인연이 끊어진 자리임을 알리고 있었다.

선원 안에는 안거 전인데도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는 승려들이 몇 명 있었다. 법랍 7년 안거 5년 차의 경력을 가진 승려에게 또 나의 벗이 넉살좋게 말을 걸었다.

“혼자서 참구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대게 종교라는 것은 가르침이 있고 이를 배우고 따르는 무리가 있어 종교인데 큰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가피를 바라면 그만 아닙나까? 법당에 나가서 기도하고 염불이나 하시지요.”

인내심이 무척 깊은 승려였다.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허망한 물건입니다. 아무리 많은 경전을 읽고 배우더라도 한 꺼풀 벗어나지 못하면 헛된 말장난에 그칩니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참배를 해도 구리로 만든 물건은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아요. 오로지 참선을 통해 깨닫지 못하면 그 많은 불경의 가르침도 기도와 예불도 다 소용없어요.”

“정말 그렇다면 대웅전에 엎드린 저 많은 사람들은 헛된 일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는 스님들은 그럼 사기꾼 이겠군요.”

“그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면 얻는 것이 있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옳은 길은 아닙니다.”

“저들도 불교가 만든 교리를 따지고 있고 불교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잇는대요. 그럼 불교가 저들을 속이고 있는 게 분명 하군요,”

그 말에 승려는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도 대승불교가 태동 하면서 합리화 시켜놓은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방편입니다. 근기에 따라 이렇게도 가르치고 저렇게도 가르치는 것이지요.”

“스님이 된 사람, 그 중에서도 참선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상근기라는 말씀 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기독교에서라면 목사처럼 선택받은 자에 해당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상근기와 하근기가 있어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릇이 다르다는 것이다. 큰 그릇은 큰물을 작은 그릇은 작은 물을 담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방의 수좌들은 자신들을 일컬어 상근기라 하고 교화승 들은 하근기라 생각하는 것이다. 상근기의 사람과 하근기의 사람이 다 같이 불교를 믿지만 도착하는 목적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것이라며 이러한 궤변으로 합리화 하였다.

“근기가 약한 사람은 참선을 하다가 오히려 정신이 망가지는 수가 있습니다.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현재
대 가람의 경내에서는 이처럼 믿음과 수행의 길이 하늘과 땅처럼 아득하게 벌어진다. 대 가람의 경내를 벗어나 작은 암자나 시중의 불교로 들어가면 그 차이는 같은 종교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현격해 진다. 이름만 불교이지 유일 절대 신에게 복을 비는 서양 종교의 형상을 한 불교도 있고 미신에 더 가까운 불교도 있다.

자칭 한 소식 했다는
일부 승려들은 술과 여자를 끊임없이 탐닉하면서 그 행각을 수행승의 특권처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부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불교는 이것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줄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그것은 다른 말로 불교를 바로 알고 참 깨달음을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과 같다.

해마다 천 여 개의 선원에서는 저마다 참선을 하고 있지만 선의 궁극적인 목표인 깨달음의 길로 가고 잇는 수행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스님께선 참선으로 성불을 자신하고 계십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득한 일입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다가 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모던 승려들이 다 그렇습니다.”

그 승려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참선의 어려움을 실토했다.

나 또한
그 승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모던 것이 무었 때문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그 승려에게 대답해 주었다.

'모던 것이 간화선 때문입니다. 당신이 간화선을 가지고 깨우칠 수 없듯이 우리의 옛 고승들 또한 그랬습니다. 우리의 불교가 따르는 참선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중국의 천태지의에 의해 노장 사상으로 왜곡된 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깨달음을 종지로 하는 법당에서 우리 아들 수능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하는 아낙들로 북적대고 아니 그렇게 하라고 부추기는 승려들이 태반을 넘는 현실이 된 것도 우리 불교가 따르는 간화선(화두 참구선)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허구로 조작된 선을 가지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명상을 기도로 변질 시켰습니다. 마침내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처럼 누미노제 현상을 경험하고 그에 맟는 진리를 조작한 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 불교입니다'. 

'마치 장갑의 구멍이 다섯 개 이기 때문에 손가락이 다섯 개라는 논리와 비슷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붓다의 삶을 쫒아서 성불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가 절대 신에게 복을 비는 기복 신앙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물론 모든 원인은 간화선 때문입니다'


(다음 기회에는
왜 화두참구선이 아닌지 나름대로 밝혀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