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오후 3시경.

우리는 일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느라 수시로 문자와 통화를 한다.

상호 무료라 그렇지 예전엔 한 달에 무선 통화비가 20~30만원씩 나올 때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점심은.(?)

서로가 동시에 문자로 안부를 묻는데 두 사람 모두 여의치 않았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아내는 가끔 집에서 준비해가는 음식 외엔 거의 라면이고

그마저 제 시간에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영업패턴에 따라 당길 수도 늦어질 수도 있지만 아예 굶을 수도 있다

나야 운명이지만 아내가 안쓰럽고 자신의 무능이 원망스러워 지는 순간이다.

살다보면 가끔 충돌이 일어나는데 사랑으로 살기엔 현실의 해코지가 녹녹치 않고

도리도 명분도 한계에 다다르면 삶에 대한 분노가 두꺼운 인내의 지표를 뚫고 치솟는다.

그 때의 표독스러움을 보면 과연 이 사람을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하나 싶지만

밥도 제때 못 먹고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맞대응을 못하고 소주병 들고 컴에 앉아 삭힌다.

“그럼 어떠해요. 뭐라도 먹어야지.”

“그래 나도 고민이야 뭘 먹지. “

“짜장이라도 한 그릇 할까.”

“그러던 지요.”

“에이. 먹고 나면 부대끼는 걸.”

“그럼 칼국수라도…….”

“그러다 또 입술 난장판 되라고.”

“썰렁........”

예전에 몸이 부대끼는 날 이래저래 입맛도 없고 해서 칼국수를 먹은 적이 있는데

다음 날 결국 입술이 다 부러 터고 몸살을 하면서 칼국수 탓으로 돌린 적이 있다

(어저께 먹은 칼국수에 칼이 너무 들어갔었어. 국수만 건져 먹어야 되는데.)

.......................

적지 않은 나이에 정직과 성실함으로 점주에게 신뢰를 받아 근무한지도 거의 10년.

이젠 교대하던 딸내미 같은 알바 학생들이 애기를 안고 놀러오는 사람도 여럿 있다

딸내미 고등학교 마칠 때 까지만 하다가 대학 3학년.

나도 성실함과 정직으로 무능과 가난을 변명하고 살지만 대단한 여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코드가 맞는지도 모른다.

다 맞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닌데 독서와는 거리가 먼지 어릴 때 삼국지와 홈즈에 심취하고는. 쩝.

하지만 아내는 주 3~5권을 읽는다. (그 독서량을 훔쳐오고 싶지만…….)

나도 정서적으로 척박하지는 않다고 중딩 때 연예 편지 몇 번 써본 솜씨로 여기 달려들어

긴 가민가 하는 사람에게 꽤 오래 버티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드물지만 간혹 괜찮았다는 호평도 받은 것 같고.

그리고 수시로 집으로 들락거리며 호출 대기하는 시간에 짬짬이 집안일을 찾아한다

팔불출이라 해도 어쩌겠는가.

환경이 그러면 환경에 맞춰 살아야하고 그게 인간의 장점이니 나는 본능에 충실하다고 본다.

가게 손님이 왔다고 통화를 끝내고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니 마땅찮다.

오늘 벌이도 시원찮은데 지출하기도 내키지 않고.

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국수가 생각났는데 간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다

양념장이 없고 나 혼자 먹자고 그걸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못 만들어서. 아니다

파 총총 썰어 조선간장에 진간장 3:2 비율로 넣고 고춧가루와 참기름에 올리고당 조금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깨를 적당량 버무리면 되니 몰랐던 사람은 적어 둘 필요도 있다

허기는 지고 호출대기중이라 시간도 대중없고 물론 밥도 없으니 오만가지 음식이 지나가고

그런데도 딱히 이거다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아 괜히 짜증도 났다

에라이.

바람 부는 대로 사는 인생인데 굳이 허공에 노 젓는다고 언제 내 뜻대로 배를 몰았나.

세상은 편한 곳 없다.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여유롭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인다.

국수를 꺼낸다.

오디오를 튼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산울림의 찻잔이 흐르고 젓가락으로 국수를 저으며 따라 부른다.

♪

너무 퍼지지 않게 골고루 젓고

하얀 속살 뽀얗게 익어가네

내 허기진 배 달래주려

너는 너무도 예쁘고 소담히 누웠네.

너를 만지면 손끝이 쫀득해 입안엔 소리 없이 군침이 고인다. ♪

흔히들 눈물 젖은 빵을 가지고 인생을 논하더라마는 나는 식은 밥 샤워시키기에 능통하다

그러다 맨밥이 맞는지 민밥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찬 없이 밥을 먹어 보았다

그 자체론 엄청 서글픈 서사시겠지만 실제는 그렇지만도 않다

처음엔 목도 메이고 조금의 구토증 비슷한 느낌이 오지만 거기서 조금만 지나면 엄청 달라진다.

구수하면서 달콤한 맛이 어디서 나오는지 참 희한하다

물론 얕은 상식으로 짐작컨대 침과의 효소작용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마는.

그런데 오늘 민국순지 맨 국순지를 거기서 착안하여 게으름을 변명하며 도전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수를 삶을 때 가끔 상태를 보기 위해 한우큼 집어 먹어 보잖은가. 괜찮더라고.

하지만 그게 맛 뵈기 하고 식사용은 좀 달랐다

처음엔 그런대로 넘어갔고 두 번째는 좀 거북하더니 세 번째 젓가락은 멈춰서 버렸다

“자기 점심은 어떻게 해결했어.?”

“웅 지금 해결중인데. 자기는.?”

“나도 먹으려고 해.”

“뭐 먹어.? (동시에)

“라면”

“국수”

우리는 동시에 묻고 동시에 대답했다

“국수는 일거리가 많잖아. 어떻게 먹어.?”

“웅.”

“그냥 먹어보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무슨 소리야 국수를 그냥 어떻게 먹어요.”

“그래서.?”

“그래서 마땅한 짝을 못 찾아서 키라도 맞춰줘야겠다고 생각했지.”

“?”

“양념이 없어 부추김치랑 먹고 있는데 그 참 묘한 앙상블이네.”

뚜뚜뚜뚜...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  보  세  요. 거기 누구 없소.?

예나 지금이나 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풀빵과 오뎅(어묵)과 꼬치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난했던 부모님들의 애환이 녹아있다.

지금은 별식으로 그리고 갖은 양념을 추가해 먹지만

삶이나 음식이나

그것이 품고 있는 메시지는 경험자에겐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