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위.


그렇다면 불영사를 제대로 음미하자니 보름날 저녁에 가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30여 년 전 아침 안개 머금은 불영사가 뇌리에 박혔는데

일단 도반과 의논하여 보름날 저녁에 올라가서 불영을 친견하고 노숙한 뒤

새벽산사를 음미하고 칠십 여리 불영계곡을 따라 하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구니 도량이라 그런지 전날 스님과의 통화에서 양해를 구하지 못했고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외에는 불허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불영지의 불영은 스님들만의 것이라는 말이 되는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지만 절이 좋아도 중이 좋아야 중생도 좋다는.......

그래도 중생의 가면을 쓰고 몰래(?) 월담이라도 할 생각으로 새벽에 출발을 하였고

스님의 여운을 남기는 말도 조금 위로 삼았다.

“매표원이 없으면 어쩔수 없이...”

오는 길에 피로도 쌓이고 졸음도 쫒을 겸 월송정으로 방향을 틀었더니

달은 이미 졌고 여명이 밝아왔다

월담도 포기하고 꽁꽁 언 손을 비비며 흔한 기회가 아니니 일출이라도 보기로 했으나

그마저 동쪽에만 검은 구름이 가득하여 포기해야하나 하다가 의외로 장관을 맞이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달려가니 정각8시.

근데 생각보다는 입구가 조촐함을(?) 넘어 썰렁했다

여느 유명사찰을 상상했으나 입구에는 작은 식당 겸 잡화점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고

시간이 되었는데 매표원은 없고 걱정했던 일은 기우가 되고 무혈(?)입성했는데

다녀온 지 30여년이 지나 절 분위기가 가물거리고 너무 엄히 말씀하시는 바람에

(무슨 요새화라도 했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출발하였으나 실제는 우습게(?) 끝난 것이다.

산사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저만치서 매표원이 뭔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들어갈 때 그러려마 생각했던 일이지만 순간 갈등이 생겼다.

(어쩌지)

“매표원이 나왔네. 어쩌까.” 도반에게 슬쩍 던져보았더니.

“드리고 오세요.”

(어련하시겠소)^^

“여차저차 우리가 먼저 다녀왔습니다. 입장료....”

“하하하. 뭐 그냥 가시죠.”

“에이. 그래도”

그렇게 작은 승강이를 한 끝에 50% 할인하고 돌아서는 아침 산바람이 상쾌했다

나야 당연히 그리해야 되지만 당연하게 받았다면.........

불영은 우리의 그림자인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영사 골을 향해 합장하고 돌아섰다.

불영사의 불영지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딱히 부처를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바로 자기 마음속의 자기를 찾는 곳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오만이 아니라 자아의 발견 곧 사랑이니까.

불영사 불영지의 이모저모.

베푸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베푼 양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남에게 행함이 실제 자신에게 행한 것을 아는 손길은 바쁘고

자신에게만 행함이 실제 자신을 다치게 하는지 스스로는 모르고

그 손 또한 갈수록 오그라든다.

덕을 쌓는다 생각지 말고 업을 닦는다 생각키로 하고

생각보다 느낌을 길러 본능적으로 행하기를 이 가을에 발원한다.

중년. 그리고 가을.

쪽빛 하늘에 그리움 한 점 지나니

바람 집배원 불러 소식 전하려다

속마음 들켜서라 고개 숙인 들꽃처럼

가끔 붉어지는 수줍음

가슴 한 켠에 슬며시 접어두고

 

은행잎처럼 빛바랜 추억과

우수에 젖은 삶의 애환들을

잔주름 위에 독백하듯 걸쳐놓다

조금 슬퍼지는 이 가을

차라리 어스러지게 보듬어 버린다.

불영사 전경과 불영계곡







 

인간의 무지는 자연과의 동화를 이루지 못하고
온갖 방책으로 막아 멀리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초소에 쪼그려 앉은 우렁각시.

준비해 간 라면으로 경비를 줄여 허기를 면해주려 온갖 노력 끝에
결국 바람의 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거금 15000원 짜리 횟밥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삶이 팍팍하지만 인생이 달려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게 이유 없는 것이 없다고 우연 같은 필연의 연속이라면

어차피 못 보거나 부딪칠 것이니 마음 급하게 내몰 필요가 없겠다

비운의 주인공처럼 고뇌하다가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알건 모르건 지나가던 닥치던 오늘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늘 그렇게 지나 온 날들이 이어지리라 무심하게 생각하나

불현 듯 소스라치게 놀라 추스른다한들 얼마나 마음같이 보듬어질까

나를 안타깝게 했던 일들이 나에게서도 크고 작게 일어나고 있을 테니

어리석은 중생이나 욕심내어 일상에서 좀 더 의연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마지막은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자연은 때를 기다리는 곳이다

꽃망울도 낙엽도 그리고 앙상한 가지도 지금의 슬픔과 기쁨이 전부가 아니듯

현실인 듯 환영인 듯 살아가는 게 삶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구분하기 좋아하지만 실로 구분 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빗속을 달리는 사람이나 처연한 사람이나 맞지 않아도 될 비를 맞는 것이고

젖은 옷은 앞에 떨어지는 비와 뒤에 떨어지는 비의 시비를 모르니까.

 

혼란과 분노 속에서도 여명처럼 밝혀가고 시비에 조급해 않고 기다려 보리라

소통은 배려에서 시작되고 감사함으로 지속되니 여유가 없다면 포기를 배우고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일상처럼 편안히 행할 때까지 스스로를 다스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 안타까워하는 시비의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불영을 보았으나 비추어 진 것이고 그 실체 또한 그것이 아니라면

애써 구분 말고 마음 다스림에 위로 삼을 뿐이겠다.

 

초겨울 찬바람 풍경의 선잠 깨워놓고 여린 염불소리에 선방 기웃거리다

비구승 서슬 퍼런 정진에 놀라곤 애꿎은 나를 채근해 옷깃 여미게 하나

중생의 상심은 연잎에 매달려 제 그림자에 가린 임의 얼굴만 찾고 있고

무심히 지나치는 스님의 차가운 염주와 파리한 머리만 달빛에 애잔하다.

 

2013.11.17. 불영사에서 法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