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가장 친한 중고등학교 같이 다녔던 친구의 부친께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 큼지막한 조화를 일찍 보내 놓고 막상 저는 서울 영안실로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느즈막히 터벅터벅 갔습니다.

춘부장께서는 춘추가 향년80세, 이 친구하고는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중학교 2년을 같은 반, 고등학교 1년을 같은 반해서 6년중 3년을 같이 생활했으니 많이 그립고 보고 싶고 짠한 친구입니다.

짠하다는 말은 멋있다는 말씀이 아니고 이 놈을 보고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 자슥의 지난 온 시절이 너무 짠해서 제가 가슴이 시도 때도 없이 짠해집니다. 명문대 중문과 재학중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에 과 대표로 여러번 주도자로서 참가하여 경찰에 수차례 잡혀 갔습니다.

당시 같이 운동했던 같은 과 여학생은 지금은 그 놈의 와이프로 살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이놈보다 더 사상이 확고하여 군발이 정권시절 실형을 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이놈은 아버님의 배려로 투옥대신 군대로 끌려가서 병역의 의무를 일찍 완수했지요.

그런데 졸업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낙인찍혀 웬만한 기업에는 취직도 못하고 공단으로 전전하는 하루살이 인생을 살았습니다. 거기에서도 급기야 노동운동에 헌신하여 그 세계에서도 쫓겨나고 받아 들여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후론 애들도 크고 가장으로 입에 풀칠을 해야 하기에 결국은 학습지 교사로 취업하게 됩니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한 시절이 92년 이였지요. 그 놈이 중문과를 졸업한 몇년 후에 중국과 수교로 중문과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았고 당시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은 졸업후 대기업에 취직하여 다니다가 국교수교를 기회로 고속승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놈은 승진은 커녕 그넘의 전력이란 것이 족쇄로 작용하여 취직조차 못했으니 군사독재 시절의 학생운동 전력이 얼마나 가혹했던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각설하고 어제 문상을 갔습니다. 이 친구 아버님은 제가 참 존경합니다. 춘부장 슬하에 친구넘 포함하여 5명의 자제를 두셨습니다. 혼자서 이 5명 전부, 대학을 졸업 시키셧습니다. 일반기업의 월급으로 힘에 부치니 사우디에 자원근무하시고 그것도 모자라 아프리카에서도 고생하셨지요. 전부 10여년을 해외에서, 아무런 낙도 흥도 없는 곳에서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서 일하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근무후 술이 유일한 낙이었겠지요. 하루하루를 오랜기간 독한 약주로 보내신 휴유증으로 나이 드신후에 치매가 남보다 훨씬 빨리 오셨습니다.

그 말을 친구로부터 몇 년전 들었을 적에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식이 뭔지...

마지막 1년의 가봉에서의 근무는 사업주의 사기인지 부도인지 돈 한푼 못 받으셨다고 합니다. 저도 자식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이지만 제가 그분의 위치였다면 저는 절대 모래사막과 뜨거운 태양 빛이 내려 쐬는 곳에서 몇일도 근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시도초자 안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그것을 생각하면 춘부장의 자기 희생에 숙연해지고 존경스러워 집니다.

어쩔수 없이 해오던 박봉의 학습지 교사도 나이가 드니 반겨주는 학부모는 없고 오히려 기피대상이 되어 가면서 많은 시간 심각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3년 전 은행 융자를 받아 큰 맘 먹고 조그맣게 자신의 중고생 교습학원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 나이 이제 50. 오른쪽 허리 윗 부분이 가끔식 송곳을 찌른듯 뜨끔뜨끔하다고 합니다. 병원을 가야 하는 것을 아는데도 두려워서 가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교습학원을 조그맣게 운영하고 있는데 몇주 입원이나 혹여나 수술을 하게 되면 그나마 힘겹게 자리잡아서 근근히 버텨나가고 있는 학원문을 닫아야 한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가슴이 답답해 지더군요.

이 병신같은 새끼야! 왜 학생운동을 해서 니 스스로 고생길을 자초했냐!!

니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햇을터인데 니가 얼마나 잘 났다고 그짓을 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냐!

너 같이 자기 희생을 한 선배친구들 덕분에 우리는 민주와 정의를 얻었지만 니가 사는 것을 보면 고맙지가 않다.  이 바보새끼야!!

잘 살기라도 하지,  왜 이렇게 벅차게 살아서 식구들을 어렵게 하고 명문대 다니는 총명한 딸은 휴학시키고, 나 또한 아프게 하냐?   멱살을 잡고 한대 후려치면 시원하기라도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전 이친구가 자랑스럽고 제 롤모델입니다.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었던 저는 학생운동 한 번 못해봤지만 우리가 이렇게 자유스럽게 살게 해준 이 친구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꼭 생활고로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휴학한 이놈 딸에게 언젠가 시간을 내서 꼭 이야기 해주고 싶습니다.

네 아버지같은 분들의 희생심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고 민주화를 이뤘노라고...

삼가 춘부장 어르신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