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를 알고 나자 문득 어릴적 내 바둑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아버지와 둔 바둑.

 내 바둑은 아버지 바둑과 달리 일자바둑이었다.

 포석단계가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국지전에서 전투가 일어나면 바둑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쟁.

 "앙~~~"

 내 대마가 몰살되고 나는 그만 패배의 쓴잔이 너무 고통스러워 어린 마음에 냅다

 울면서 바둑판을 엎어 버렸다.

 부친이 그때 나의 천재적인 승부사 기질을 눈치 챘더라면 이미 나는 이창호 이전의

 7080을 잇는 가교로서의 승부사가 되어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부친은 나의 천재성을 몰랐고 그로 인해 나는 무려 25년을 돌아서

 다시 바둑판에 않게 되었다.

 이미 때는 늦었다.

 25년이 지난 후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프로입단을 하기 위해 누군가 옆에서 길을 가르쳐 줄 스승이 간절히 필요했지만 그것은

 한낱 일장춘몽일 뿐이었다.

 나는 오기로 홀로 공부했지만 그 누구도 내가 가는 길에 분홍빛 전망을 깔아 주진

 않았다. 오히려 주제파악을 하라는 듯이 비아냥 거림 일색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나를 몰랐기 때문일 뿐일고 나는 나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기에

 동현이 형으로부터 싸움의 기술을 모조리 전수받기 시작했다.

 형은 동네1급 수준이었는데 난 단 3개월만에 형에게 두점을 놓아버리는 경지까지 스스로

 따라잡기 시작했고 어느날 갑자기 호선의 경지까지 초스피드로 고수의 반열에 올라 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부산의 최씨가 당시 유명했는데 아마추어 시합에서 그 분과 우연히 조우하게 되면서

 하늘위에 또 하늘이 있음을 절감하게 되면서 한계와 동시에 오기가 발동, 기필코 혼자

 저 경지까지 가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일뿐 역시나 사상누각에 불과했고 나의 기력은 좀체 발전이 안되고

 정체상태가 몇년이 이어진다.

  기력은 3개월 단위로 정체- 상승 - 정체 - 상승의 곡선을 그리는데 정체하는 시기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고통의 나날의 연속이다.

 터널을 통과하면 밝은 빛이 나타나면서 일별(불교에서는 한번보고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깨닫게 되는  고귀한 찰나를 두고 일별이라고 함)이 순식간에 달려든다.

  그 과정을 1년동안 끊임없이 반복하면 간신히 초고수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을 싸부를

 만나고 나서야 확실히 깨달았지만 이미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나로선 절치부심일 수 밖에 없었다.

                               -내일 다시 부쳐드립니다. 후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