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읽었던 책은 주로 샤르트르와 까뮈의 실존철학서적이었다.

   그런데 이들 작가의 공통점은 無神論에 있었다.

   무신론은 허무하다. 그때는 그 사실보다 그들의 말장난이 너무 멋있었다고나 할까.

   인간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함축적이면서 난해한 언어 구사의 기술에 매료된

   뒤로 비록 그것이 허무주의에 빠진 자들의 넋두리인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 자체

  가 뭔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글은 이렇게 쓰는거야.

  성서 따위는 너무 고리타분해.

  지금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聖書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언어다.

  단지 인간을 통해서 그분의 뜻이 드러난 것일 뿐이지 인간이 결코 창조해 낼 수 없는

  경지의 결정체다.

  성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실존주의자들에게 믿음은 현실이며 소망은 존재며 사랑은 자기확신이다.

  그런 이들에게 아무리 神을 부르짖어본들 <소 귀에 경 읽기>인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었다.

  그녀와 만날 때면 왜 하늘은 그렇게 푸르고 맑았는지, 그녀와 헤어질 때면 왜

  시간은 빛의 속도보다 빨리 흐르는지 새삼 아인슈타인에게  다시한번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엘리사벳.

  아담이 태초에 하와의 유혹에 넘어가서 먹어서는 안 될 사과나무의 열매를

  받아 먹은 것이 인간 최초의 실수였다.

  神은 분노했고 그 댓가로 인간은 타락했다.

  타락한 천사는 곧 사탄이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다.

  사탄은 인간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숨어서 인간이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타락한 천사는 절망속에서 희망의 꽃을 피우기 위해 神이 내려준 계명을 받아적었다.

  모세의 십계명이 시나이산에서 주어진 것은 인간에겐 상상할 수 없는 크나큰 기회였다.

  예수의 계명 중에 가장 큰 계명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후의 히든카드.

  살아가면서 내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그들도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쳐야 하는 화두와 같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너에게도 시키면 안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못하면 죽어서 어디로 갈까.

  불교에서는 축생의 경지로 떨어진다고 한다.

  사람같이, 아니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살한 사람은 어디로 갈까?

  모른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했거늘 현대의 도시인들 뿐만 아니라 시골인들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

  수록 늘어가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대여, 돈을 사랑하는가? 권력을 사랑하는가? 지식을 사랑하는가?>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인간이라면 사랑의 조건은 무엇인가.

  적어도 그녀를 사랑하는데 필요한 것은 존재 그 자체였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그녀에겐 모든 것이었고 더이상의 조건도 필연도 충분할 수 없
 
  었다.

  '아, 엘리사벳'

  '아,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지금도 어디선가 하늘을 바라본다면 나를 용서해다오.

   바람과 구름이 흘러가듯이 나의 사랑도 흘러가는 것, 그대의 마음도 흘러가는 것.

   그대가 나를 용서한다면 나 또한 이미 그대를 용서한 것이니 다음 세상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나지 않을까'

   문득,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서려는 순간 동네슈퍼의 라디오에서

   이문세의 노래가 흐른다.

   이 노래를 그대에게 바치면서 여러분에게 못다한 사랑의 언어를 대신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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