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업체로 납품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간만에 아침부터 따뜻한 햇볕이 환하게 비추어 차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참으로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오랜 추위속에 움츠리다가 날씨가 봄기운 물씬 몰려오니 지나가는 여인네의 짧아진 치마를 보면서 가슴이 쿵탕거려 왔습니다.

(아이구! 공자님이 40이면 불혹이라 했건만 그 나이가 지난지 꽤 되었는데 나는 왜 이리 철딱서니가 없냐! 혹시 공자님께서 50을 불혹으로하시려다 잠시 졸다가 지천명과 바꾼거 아냐!!)

그때 어떤 청취자가 보내온 녹음된 이야기가 라디오로 흘러 나왔습니다. 시내버스 운전을 하시는 아주머니의, 자기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착 가라앉으면서 간간히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버지는 주색잡기만 능하셔서 생활은 어머니가 일찌감치 책임을 졌던 모양입니다. 나이든 여자가 당시에 하던 일이라고 뻔해서.. 겨우겨우 식당일을 잡았는데 집과 거리가 너무 떨어진 관계로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번만 집에 와서 쌀과 연탄을 채워 놓고 다시 식당일을 가는 그런 생활속에서 초등학교를 보냈던 모양입니다.

너무 찢어지게 가난한 관계로 그 흔한 괘종시계도 없어 당시 중학생이던 오빠는 옆집에서 나는 괘종소리를 듣고 일어나 학교를 갔다 합니다. 어느날 시계가 5번이 울리길래 오빠는 일어나서 밥을 해먹고 학교로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오빠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 오더란 겁니다.

잊어 버린것이 있어 다시 왔냐고 오빠에게 물었더니 침통한 어조로 시간을 잘 못 봣다는 것입니다. 밤 11시를 치던 괘종시계의 소리를 끝 5번만 들었던 오빠는 새벽 5시인줄 알고 일어났던 것이랍니다.

아이구! 이거 방송을 듣는게 아닌데... 이런 방송만 들으면 눈물이 쏟아져서.. 때는 늦었습니다. 조금씩 고였던 눈물이 점점 많아져서 한손은 운전대에 다른 손은 휴지를 찾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제기랄!  안경까지 쓰고 운전까지 하는데 이제 콧물까지 나오니 참말로......

이 내용을 보내오신 청취자분은 4남매 였다는데 지금도 연로하신 홀 어머님의 근황을 걱정하시는 것을 보니 생활은 그 후로도 넉넉치 못했던 모양입니다.

힘들고 배고프게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성장해서도 그분들의 적지 않은 수가 또 다시 넉넉치 못한 생활을 답습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보게 됩니다.

"가난의 대물림"  그래서 더 가슴이 시려왔습니다.  자기가 공부를 못하고 죽어도 하기 싫어서 교육과 담을 쌓는 아이들은 차치하고, 하고는 싶은데 할 수없거나 잘해왔지만 과학고니 외고니 하는 특목고의 학비가 도저히 감당히 되지 않아서 지례 포기하는 그런 일을 없어야 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많은 정권이 사교육을 없애겠다고 무수한 공약을 내걸었건만 제가 다녔던 30년전 고딩시절보다 작금의 사교육은 물적 양적으로 엄청 팽창을 하였습니다. 그에 반비례해서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도 줄어들은 것 같습니다.

국내 최고의 서울대 입학생의 40% 가까이가 강남출신인 것 까지는 백발 양보하여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사시 출신의 무시 못할 비율 역시 강남 출신이라면 다시 한번 기회의 균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해서 서울대를 못가고 사시 패스를 못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편중현상은 없는 자의 입장에선 생활고로 대학은 커녕 그래서 일찍 사회에 첫 발을 디뎌 힘들게 몇배 고생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처지는, 그래서 그 자식들에게 까지 가난의 대물림을 답습하게 되는 그런 분들 입장에선 과연 우리 사회의 동질성과 화합이라는 물음에 쉽게 수긍을 하게 될까요.

피를 말리는 경쟁을 이겨낸 똑똑한 소수가 전챙으로 폐허가 되었던 우리 국가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리고 일본이 두려워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초석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분들에게 참으로 감사하지만 이제는 그런한 화려한 성장 못지 않게 어둡고 힘든 사람들에게도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그러한 교육환경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