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 너만 믿는다(단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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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너만 믿는다(단편1-2)
2022-05-02 조회 3139    프린트|스크랩

 나도 별 볼 일 없는 전문학교 화공과 시간강사로 재직 중이었다. 4년 가까이 일했는데 아직 전임이 될 가망은 없었다.

구루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었다. 매일 형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털에 윤기가 짜르르 흘렀다. 투견대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들은 형은 아침마다 구루를 데리고 뒷산으로 조깅을 하였다. 처음엔 비무장으로 하다가 구루가 힘이 붙자 작은 타이어를 달고 끌도록 했다.

“이번에 1등을 한번 해 볼끼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을 이 구루가 증명할 끼야.”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형은 세상에 부딪힐 때마다 자신의 몸이 작은 것을 한탄하였다.

구루를 통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단단히 앙갚음을 하고 싶어 했다.

“제기랄 돈 없고 학벌 없음 몸집이라도 좀 컸으면…최 씨한테 돈 뺏기고 목까지 졸리지는 않았을 긴데. 좆만 한 새끼가 싸가지 없이.”

형은 몸집이 작은 구루가 큰 싸움개들을 이길 수 있으리라 철떡 같이 믿는 눈치였다.

“여보 개는 하루에 한 끼만 주어야지 삼시 세끼 고봉으로 다 먹이면 개 짜구 난다구요.”

“마 걱정일랑 붙들어 매드라고. 운동하면 배 금방 꺼지니께.”

형은 농산물 장사를 하면서 전국을 돌다 보니 어느 지방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전국의 방언이란 방언은 죄다 지껄여대었다. 그러다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경상도 본래의 강한 억양의 사투리가 나왔다.

“메인게임 벌이기 전에 오늘 윗마을 독구 하고 한 번 부쳐 볼끼다.”

“뭐시고 수퍼 집 중학생 남자아이를 문 박씨 개 말이지요. 그 개는 덩치가 구루보다 두 배는 될 낀데 괜찮겠어요.”

심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형수가 말하였다. 이미 구루는 형과 형수의 가족으로 두 사람의 가슴에 와 닿아 있었다.

형수가 불안한 시선을 형에게 보내자 형은 가소롭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입이 찢어지도록 하였다.

“하 하 핫 걱정마라. 내가 누고, 천하의 김철모가 훈련시킨 구루가 질 리가 없다. 만약에 지면 내 손에 장 지진다.”

“헤헤 그라먼 나는 장을 다리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되겠네요.”

“엣끼 망할 예편네 김바리 세게.”

형은 두 주먹을 내지르며 형수가 아닌 세상을 향하여 휘둘렀다.

“가자! 구루, 싸움은 남자가 하는 기라. 치마 두른 여자가 우찌 세상을 알끼고.”

형은 구루를 데리고 한바탕 시위를 벌인 뒤에 뒷산으로 뛰어갔다. 세상에 지친 형은 구루를 통하여 세상과 단단히 일전을 벌여 볼 셈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찬란한 승리를 하여 형의 멋진 웃음을 오늘 저녁 식탁에서 볼지도 모른다.

나는 오전 11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버스를 놓칠세라 황급히 뛰어갔다.

 

수업을 마치고 서면 서점에 둘러서 투견 훈련 책을 한 권 사왔다.

막연하게 훈련시키기보다 체계적인 훈련과정이 구루에게 필요할 것 같았다.

아래층에서 구루가 컹컹대는 소리가 나고 형이 대문의 빗장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내가 잘 샀다. 지보다 두 배 가까이 되는 놈의 목을 꽉 물고 늘어지니 못 견딘 박 씨 개가 항복을 한기라. 그래도 질기더라. 반항을 하는데 역시 덩칫값은 하더만. 목을 물린 채로 구루를 획 던져버리데. 그래도 끝까지 목을 물고 안 놓아주니 진들 견딜 재간이 없었재.”

나는 문득 구루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형만 의기양양했지 구루는 다소 풀죽은 모습으로 피로에 지친 얼굴을 하며 나를 약간은 외면하고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람들의 눈요기를 위해 싸운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든지도 모른다. 그저 사람들의 투쟁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한 대리전을 한 구루는 모든 것을 다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구루의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제야 구루도 안심이 되는지 꼬리를 약간 흔들며 아는 체를 하였다. 구루는 형이 주는 밥도 먹지를 않고 물만 약간 핥아 먹더니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서 이내 드러눕고 말았다.

구루와 한바탕 떠들썩하게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싶었던 형은 약간 머쓱해져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영감 이긴 소감이 어때요. 상금은 받아 왔어요.”

“헤헷 상금은 구경꾼들이랑 박 씨하고 술 받아서 다 마셔버렸다. 잔돈 남은 것은 목욕했어.”

“그래도 집에서 애태우는 사람들 생각도 안 하고 다 마셔버려요. 에이 참 마음에 안 든다.”

“와이라노. 일주일 뒤에 메인게임에서 우승하면 내가 당신한테 한턱 쏠게.”

“우승 좋아 하시네. 구루가 오늘 같이 안 다치고 무사히 돌아와 주면 좋겠네요.”

“어허 재수 옴 붙는다. 방정 맞는 소리는 치아뿌라마.”

형은 얼굴에 박 같이 환한 웃음을 달고 냉수를 한 그릇 마셔버렸다.

“아이구 시원하다. 오늘은 진짜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라. 내일부터 구루 훈련계획을 짜서 확실하게 한번 해 볼끼다.”

형은 마대 자루를 둘둘 뭉쳐서 나무에 말고 있었다.

“요기 볼독 대가리고 최 씨 놈 상판대기라 말이다. 구루는 한 번 물었다 하면 안 놓아준다.

진짜 독종이데. 적어도 세상살이할라 먼 구루 같이 해야 한다. 동생도 올해는 장가가야지 맨 날 큰 형 집에 얹혀살지 말고.”

장가 얘기만 해도 나는 별로 기분이 유쾌해지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가 나를 버리고 다른 놈에게 시집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싫은 여자들은 나를 못살게 따라다녀서 곤욕을 치렀건만, 그런 여자들의 대부분은 나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는 치들이었다.

“어머 낭만적이야. 어머 목소리 좋으시네. 어머 당신은 어쩌면 작가가 될지 모른다. 어머 돈키호테적이야. 현실감각이 무딘 여자들이며 나와 동질의 분류인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는 평소에 독신주의를 표방하며 연막전술을 펴드니, 늙은 노총각보다 먼저 시집을 가버렸다. 곱게 잘 지켜 주었더니 남 좋은 일시키고 말았다. 그래도 내가 사랑의 열병을 앓게 한 여자가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직은 생기지 않는다.

“엄마가 선생님 직장이 마음에 안 든대요. 언제 전임이 될지도 모르고. 결혼생활은 경제가 받쳐주어야 된다네요.”

나는 현실경제에 대한 감각이 무뎌서 그녀의 엄마가 결혼을 반대했다는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선생님 우리 둘이서 제주도로 도망가 버릴까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즉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뛰어야 부처님 손바닥인데 가봐야 어디로 가겠노.”

일단 반대하는 그녀의 엄마가 미웠고 자존심이 상한 나는 도저히 그녀를 데리고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반대해도 그녀만 좋다면 만사 오케이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만치 그녀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늙은 총각의 짝사랑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후 그녀는 나 보란 듯이 경제력이 탄탄한 녀석에게 시집을 가버렸다.

서울로 이사 가기 전에 큰 형은 이렇게 말했다.

“니는 한 번 물면 꽉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부족하다.”

큰형이 물러터진 내 성격을 잘 말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쯤 튼튼한 이빨이 생길까 궁금해진다. 내 이빨에 과연 누가 물릴까?

어쩌면 세상을 무는 것처럼 공허할 것이다. 형의 장가 얘기에 작은 가슴에 통증이 올려고 한다. 형에게 뭐라고 대거리해봐야 구루보다 못한 놈 될까 봐 골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간강사의 월급이 적으므로 나는 온갖 종류의 문장을 써댔다. 잡지, 기업체 사보, 만화시나리오, 성공한 사람들의 일대기 대필, 과학책 번역 이런 글들을 마감일에 맞추어서 제출하면 푼돈이라도 만질 수 있었다.

언제쯤 진정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독자의 흥미를 만족시켜주는 글이나, 구매자의 요청에 따라서 대충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꾸미면 되었다. 진짜 생명이 있는 글이라면 세상을 향하여 구루처럼 물고 뜯는 글이 되어야겠지. 무는 방법도 직접적으로 무는 형식의 생경한 글도 있겠고, 은유나 상징을 써서 좀 고상하게 물고 늘어지는 글도 있겠다. 구루 때문에 우리 식구는 세상을 향하여 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오늘은 글쓰기는 글렀고 투견에 관한 책을 보았다.

밤 11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10대와 20대에는 나도 막연한 꿈이 있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또는, 돈키호테처럼 인생을 한 번 좌충우돌하며 살고 싶었다. 그랬다.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나도 직장을 가져야 했다. 세상과의 연결고리로 겨우 얻은 전문대학의 시간강사 자리 일주일에 8시간 분석화학 실험 담당 직이었다. 일 년 전에 학과장은 나를 불렀다.

“김 선생, 전임 한 번 되어 볼 생각 없어.”

“왜 없겠어요. 시켜만 주시면 고맙지요.”

“근데 그게 말이야 그 좀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게 좀 필요해.”

그러면서 학과장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나타내었다.

“얼마나 필요해요.”

“다섯 장.”

학과장은 다시 손가락으로 5를 나타내며 강조하였다.

오백만 원은 아니겠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수중에 단돈 천만 원도 저축이 없는데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구한단 말인가. 더욱이 이것은 명백한 부정이었다. 전임직을 돈으로 산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현실과 야합하고 싶은 생각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석 달 후 분석화학 이론 담당교수로 내 대학 후배인 윤 선생이 임명되었다. 학과장과 나 윤 선생은 같은 대학 동문이었다. 세상은 인격보다 돈이 더 높은 사회적인 잣대였다. 그때 돈을 들여서 전임 자리를 확보했더라면, 설사 약간의 무리를 하여 돈을 빌렸더라면, 나도 좋아하는 여자와 당당히 결혼을 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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