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루 너만 믿는다(단편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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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너만 믿는다(단편1-4)
2022-05-02 조회 76    프린트스크랩

그라고 객꾼들은 이긴다고 생각하는 개에게 약간의 돈을 걸면 재미가 두 배가 된다오.”

구루와 독그는 사방이 철망으로 막히고 무덤 두기가 나란히 있는 10평 정도의 공간에 갇혀서 상대방에게 적의의 울음을 토해내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싸움을 즐기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의 외침인지도 모른다.

카앙, 크르르 컹.”

덩치가 큰 독그가 구루에 비해 불리한 점도 많았다. 구루가 바로서면 독그의 목덜미에 이빨을 바로 꽂을 수 있었다. 두 마리의 개는 서로 힘자랑을 하는지 몸을 서로 대보며 밀치고 있었다. 두 다리에 근육이 서고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약간 힘에서 밀리는 구루가 독그의 목덜미를 먼저 물었다. 독그는 목덜미에 구루의 이빨이 박히자 신음을 내지르며 괴성을 질렀다. 동시에 목덜미를 이리저리 돌렸지만 구루는 한 번 문 목덜미를 놓지 않았다.

그렇지, 구루 잘한다. 쎄기 물어라 더 힘껏.”

형은 구루가 한 번 물면 결코 놓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형의 처절한 훈련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약 오 분간 버티는 독그는 꼬리를 내리고 전의를 상실한 눈을 내리깔며 등을 돌리려고 하였다. 세상 살기가 싫은 표정 만사가 귀찮은 표정, 그것은 삶에 지친 인간들이 평소에 내보였던 권태 바로 그 표정이었다.

심판은 두 마리의 개를 떼어 놓았다. 독그의 목덜미는 구루의 이빨 자국으로 움푹 패 있었다. 개들의 목덜미가 상대방이 흘린 침으로 젖어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저절로 침이 흐르듯이 개들도 상대방을 물기 전에 허연 침을 흘렸다. 서로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까무러치기 전에 흘리는 게거품일까. 10분이나 쉬었을까 구루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상대와 판을 벌여야 했다.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검투사. 형은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형은 구루가 계속 새로운 상대를 꺾어주어야 구루의 몸값이 올라갈 테고, 형의 허영심이 만족될 것이었다. 형은 서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세상의 모든 사악한 인간들과 싸우듯이 끝없는 적의를 들어내었다. 구루가 싸우는 것이 아니고 형이 싸우고 있었다. 두 번째 도사도 구루보다 약간 큰 놈이었으나 구루의 상대는 아니었다. 이미 구루는 싸움개로 거듭나고 있었다. 고기 맛을 아는 놈이 계속 고기를 먹듯이 한 번 승리의 월계관을 써본 구루는 상대방의 약점과 급소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더니 어렵사리 승리하였다. 이제껏 구루는 지난번 싸움을 합치면 33승이었다. 오늘 이미 2승을 하였으므로, 구루도 투견으로써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있었다. 형도 서서히 어떤 광기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약자를 누르고 찢고 깔아뭉개는 폭력의 광기, 인간의 마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형의 선량한 심성은 폭력의 광기에 의해 사라지고 있었다.

김 형 한 판 더. 이번만 이기면 구루는 몇 천만 원짜리 투견으로 소문이 날거요. 약간 무리이긴 하지만.”

구경꾼들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들도 구루의 연승에 고무되어 흥분하고 있었다.

구루야 한 번 더!”

집단의 광기가 무덤주위의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합세하여 무언의 약속을 만들어 내었다.

, 무명의 구루가 벌써 2승을 하였네요. 이번에는 육 개월 전에 지방 투견대회에서 경량급 3위를 한 번개와 한번 해보겠습니다. 만약에 구루가 이기면 신문 한 페이지에 날 일이지요.”

심판이 말하였다. 구루는 충분한 휴식을 가지지도 못한 채 싸움터로 들어갔다. 구루는 들어가면서 원망스러운 듯 간절한 눈길을 형에게 던지고 있었다.

나는 구루가 불쌍했지만, 형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형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므로. 몸으로 세상을 살아온 형은 특히 좀 배웠다는 쪽들의 얘기는 듣기 싫어했다. 특히 동생이 형에게 말하면 위계질서 운운하며 당장에 불호령을 내릴 것이었다.

세 번째 개는 불독이었다. 일본에서 수입한 순종으로 외피만 보아도 그동안의 혁혁한 전공을 몸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외피는 물린 자국의 흉터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땅딸막했지만 몸뚱이 전체가 근육으로 뭉쳐있었다. 번개는 이름값을 하듯이 단번에 탱크처럼 돌진하여 구루의 오른쪽 다리 위를 꽉 물어버렸다. 눈 깜짝할 새였다. 구루도 정신을 차릴 여지가 없었다. 모든 탐색전이 무시된 싸움개 본래의 임무를 정확하게 구사하였다. 목표물을 향한 집념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물어서 쓰러뜨리는 것이라는 듯, 번개의 몸짓은 확신에 차있었고 거침이 없었다. 이겨본 자의 확신, 정확함, 집중력, 무아의 경지랄까. 이미 싸움은 애당초 글러 먹은 것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싸움은 번개를 스타로 만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구루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더니 힘없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구루의 첫 패배였지만 한 번의 패배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몰고 올 것이었다. 구루가 제일 처음에 번개를 만났다면 아무도 오늘의 승자를 점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충분히 상대를 파악하고 힘을 뺀 뒤 번개를 내보낸 번개 주인의 승리였다. 그랬다. 형은 세상일에 대한 전략의 부재가 오늘의 싸움에 드러났던 것이다. 주인을 잘 만난 번개는 승승장구하고 형을 만난 구루는 자신의 타고난 싸움개의 역량을 펼쳐 보이지도 못하고 무명의 작은 대회에서 패배한 것이었다. 번개에게 물린 구루의 상처는 복숭아씨 크기로 심각했다. 정육점에서 칼로 정교하게 떼어 낸 듯 살점이 뜯겨 나가고 없었다. 다행히 피는 많이 나지 않았다.

형은 집으로 와서 옥도정기를 발라주곤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버렸다. 구루는 며칠 동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처량하게 처져있었다. 밤에는 우우하며 야생의 늑대들이 내는 소리를 내었다. 구루는 마음의 상처가 커 보였다. 나를 보아도 애써 외면하며 먼 데를 바라보았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하루하루 더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탁구공이 들어갈 정도의 깊은 상처. 형은 구루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찢어진 살점을 꽤 메어야 빨리 완쾌할 텐데 형은 더 이상 구루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약국에서 가루약을 사 와서 구루의 상처에 하얗게 뿌려 주었다. 그러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형이 기대했던 불로소득의 꿈이 깨어지자, 형은 더 이상 구루에 대한 희망이나 미련을 두지 않았다.

보소 너무 하요. 사람도 다치면 병원에 가서 꿰매는데 말 못 하는 동물이 얼마나 아프겠소. 그라고 두 번 이겼으면 그만하고 다음에 또 했으면 좋았을 긴데 내처 죽기 살기로 할 때 알아봤다니까요.”

형수가 한마디 하자 형이 지지 않으려는 듯이 대들듯이 말하였다.

여편네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나. 인자 구루한 테 신경 딱 꺼라. 구루는 꼴도 보기 싫다.”

형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자책을 하는지, 구루만 보면 속에 울화가 치미는지, 구루를 보기 싫어하였다. 모든 화근의 불씨는 욕심이었다. 형의 돈을 떼먹고 일주일 전에 서울로 도망간 최 씨에게 사기당한 것도 구루가 무참한 상처를 입은 것도 냉정히 따져보면 형의 막무가내식의 욕심 때문이었다. 잘살아 보겠다는 소박한 욕심,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지 못한 형의 작은 욕망 이런 모든 인간적인 욕망이 불러온 화근이었다. 언제쯤 형도 사람들이 내뱉는 이야기의 진의를 냉정히 파악하는 스타일로 변할까? 어쩌면 형은 이제껏 살아온 스타일로 볼 때 변신은 가능하게 보이질 않았다. 천지가 개벽하여 모든 사람들이 바른말만 하는 사회가 되기 전에는. 오늘 아침에 형은 구루를 데리고 외출을 하였다. 어디로 간 걸까.

병원으로 아니면? 나는 몹시 불안하였다. 밀린 원고를 정리하며 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서 원고지와 씨름을 하였다. 과거에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였으면 유명대학의 박사가 되어 대학의 전임자리 하나는 땄을 것 같았다. 땅거미가 하늘에서 내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세상에 전등불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대문이 열리고 이 층 계단을 밟는 소리가 요즈음 같지 않게 힘차게 들려왔다.

삼촌아 나와 봐라. 불독 한 마리 사왔다. 개집에서 샀는데 진짜 수입산 불독이다.”

맙소사 내가 우려하던 일이 내처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면 구루는, 불쌍한 구루는 어디로 간 걸까. 아직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았는데. 밖으로 나와 보니 주둥이가 엄청 큰 불독이 구루가 살았던 개집으로 형을 잡아끌듯이 가고 있었다. 구루를 이긴 번개보다 더 험상궂게 생긴 정떨어지게 못난 놈이었다.

어떻노. 자알 생겼재. 온몸이 근육인 기라. 요놈이 인자 물건이 된데이. 두고 봐라. 석 달만 훈련시키면 멋진 놈 될끼다.”

형은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내가 생뚱맞게 인상을 일그러뜨리자 형은 떫은 감을 씹은 표정을 짓더니 약간 심각한 어조로 말하였다.

구루 글마 인자 늙었는지 상처도 잘 안 낫고 해서 복날 개장국용으로 근수 달아서 팔았다.”

형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갈치 시장에서 나오는 참도미 대가리를 한 통 얻어올 것이다. 나는 속에서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쓴웃음을 참느라고 불독의 머리에 시선을 꼬나 박았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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