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잘 아는 정약용(丁若鏞, 1762.6.16~1836.2.22)의 시 한 수를 감상한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권 시문집 제2권(第一集詩文集第二卷○詩集)에 실려 있는 사륙팔언(四六八言)이란 시다.
 

四六八言(사륙팔언)                 사언 육언 팔언으로 짓다

時往時還(시왕시환)                 때로는 가고  때로는 돌아오고
似忙似閒(사망사한)                 바쁜 듯 한가한 듯
今日群賢曲水(금일군현곡수)         오늘은 뭇 현인 곡수¹에서 노닐더니
明朝九老香山(명조구로향산)         이튿날 아침에는 아홉 노인 향산²에서 모임 갖네
琴囊棋局風前月下(금낭기국풍전월하) 바람 부는 달빛 아래 거문고 타며 바둑 두는데
酒榼茶甌竹裏花間(주합다구죽리화간) 대나무 숲속 꽃밭 사이 술통과 찻잔 있네

榼 통 합, 甌 사발 구

1. 곡수(曲水)는 굽은 물줄기. 진(晉) 나라 왕희지(王羲之)가 회계군(會稽郡) 내사(內史)로 있을 때 삼짇날 오현(吳縣)의 난정(蘭亭)에서 당시의 명사 42인과 함께 모여 좌우에 흐르는 시냇물에 술잔을 띄워 마시며 시를 짓고 즐겼다고 한다.

2. 향산(香山)은 중국 하남(河南) 낙양(洛陽) 용문산(龍門山)의 동쪽에 있는 산. 당(唐)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형부 상서로 있다가 그만두고 호고(胡杲)ㆍ길교(吉皎)ㆍ유진(劉眞)ㆍ정거(鄭據)ㆍ노정(盧貞)ㆍ장혼(張渾)ㆍ이원상(李元爽)ㆍ여만(如滿) 등 나이 70이 넘은 노인 여덟과 구로상치지회(九老尙齒之會)를 맺고 자기의 향산 별장에서 시를 지으며 놀았다고 한다. 《新唐書 卷119 白居易傳》

다산(茶山)이 40세 되던 해인 1801년부터 무려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아마도 대강 이 시기 혹은 그 이후에 지은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그는 바둑을 무척 즐긴 것 같다. 그가 바둑에 관해 읊은 시만 해도 삼십여 편이 넘는다. 애기가였던 것이다.

왕휘지의 군현곡수(群賢曲水)와 백거이의 구로향산(九老香山) 고사를 거론한 것으로 보아 그는 유배생활을 정신적으로는 넉넉하게 받아드린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여유로움 속에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같은 저술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글 쓰다가 지치면 바둑 두고, 술 마시고, 차 다려 마시며, 바람 불어오는 밤에 거문고 뜯는 그 정취가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