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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류’...나밖에 둘 수 없는 바둑을 두고 싶었다!
‘우주류’...나밖에 둘 수 없는 바둑을 두고 싶었다!
‘영원한 반상의 로맨티스트’ 다케미야 마사키 9단 (上)
[기획/특집] 정용진  2017-10-25 오전 08:15   [프린트스크랩]


[월간바둑] 11월호에 동시게재하는 인터뷰입니다. 한 편으로 소개하기에는 기사가 길어 사이버오로에서는 상하, 두 편으로 나누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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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접어들 무렵까지만 해도 일본바둑은 바둑을 대표하는 무대였다. 오늘날 우리가 두는 현대바둑을 꽃피우고 발전시킨 선진국이었고 당연히 세계최강의 실력이었다. 그랬기에 조치훈 9단이 처음(1980년) 일본 명인(名人)을 차지했을 때 크게 환호하고 벅찬 감동에 젖었다. 분명 일본바둑은 배우고 따라잡아야할 선망과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축구의 한일전이 그러하듯 일본과 일본선수에 관한 한, 이유불문하고 기어코 이겨야만 하는 상대였다. 조치훈이 도전무대에서 상대한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가 그러했고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를 대하는 감정이 그러했다.

그런데 한 사람,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에 대해서만큼은 약간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조치훈을 맹렬히 응원은 하되 그 상대가 다케미야라면 어쩐지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기사. 일본기사이긴 해도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참말 멋진 바둑을 선보였던 기사. 숱한 기사들 가운데 독보적으로, 일관되게 중앙바둑을 구사한 그의 기풍을 한국팬들은 ‘우주류(宇宙流)’라 불렀다. 감성적으로는 둘 수 있을 것 같아도 이성적으로 감히 둘 수 없는 바둑이었기에 우주류는 시대의 로망이었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이전, 20세기 바둑사에서 딱 두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신포석을 창시한 우칭위안(吳淸源) 9단과 끝내기 영역의 신경지를 개척한 이창호 9단을 꼽겠다. 여기에 한명을 더한다면 다케미야 9단이다.”

목진석 국가대표 감독이나 김성룡 9단을 위시해 대다수 기사가 20세기 위대한 족적을 남긴 3명의 기사로 망설임없이 ‘우주류 바둑’을 꼽는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군림한 일인자는 있었다. 그렇지만 새롭게 눈을 떠 새로운 길을 열어 바둑의 지평을 양껏 넓힌 일인자는 드물다. 더군다나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알파고를 대면하고 보니 더 절감하게 되는 사실이다. 알파고의 출현 이전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 보이고, 가치를 더 인정하게 된 바둑이 다케미야의 우주류다.

바로 이 사람을 만나러가는 길. 프로데뷔 때부터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중앙바둑'을 구사하며 1970년대 일찌감치 일본바둑을 호령했고, 바둑무대가 국경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대회를 선보이기 시작한 1988년부터는 후지쯔배(2년 연속 우승)와 TV아시아선수권(4연속 제패)을, 그러니까 제한시간 3시간과 속기 양 대회를 양손에 움켜쥐었던 '원조 세계챔프'가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다. 사진은 1976년 31기 혼인보(本因坊) 도전기 장면. 당시 '컴퓨터 바둑'으로 불리던 이시다 요시오(石田芳夫) 9단에게 도전해 4-1로 첫 혼인보에 올랐다. [사진제공/일본기원]

그렇지만 20여 년 이상 일본바둑이 세계대회에서 별 성적을 내지 못하자 우리의 관심은 멀어졌고, 지금은 일본의 타이틀매치에 대해, 명인이 누구인지 혼인보(本因坊)가 누구인지 그런 것들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최강의 승부사, 그들이 펼치는 무대만이 온통 관심사니까. 그렇지만 예전부터 혹 몇 백명의 일본기사 가운데 딱 한 사람 인터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사람, 다케미야 9단과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알파고가 등장한 마당이다. 때마침 올여름 방한한 다케미야 요코(武宮陽光, 77년생, 다케미야 9단의 장남) 6단과 저녁식사에 이어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혹 일본에 가게 된다면 당신 아버지를 꼭 한번 인터뷰하고 싶다 넌지시 응수타진했더니 (술김은 아닌 듯한데) 노타임으로 자기가 반드시 다리를 놓겠다 호언장담을 했다. 이 인터뷰는 그때의 약속으로 이루어졌다.

도쿄에 도착한 9월12일은 다카오 신지(高尾神路) 명인과 이야마 유타(井山裕太) 9단의 제42기 명인전 도전7번기 2국이 친잔소도쿄(椿山莊東京) 호텔에서 시작된 날이었다. 일본의 3대 기전(기성, 명인, 혼인보) 7번기는 1년 전에 이미 예약을 받아 대부분 지방에서 유치하기에 이처럼 도쿄 한복판에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란 좀처럼 잡기 힘들다고 한다. 이 대국의 입회인이 다케미야 9단이었다. 이틀바둑이었으므로 이틀째(13일) 오후에 호텔에서 인터뷰하기로 사전 약속이 돼 있었다. 장남 다케미야 요코 6단도 검토실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통역은 일본기원 인터넷사업부에서 일하는 홍근표 씨가 해주었다. 홍근표 씨는 제주도 출신이다.

▲ 장남 요코 6단과 함께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들 또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낭만과 풍류를 아는 쾌남아다. 부자간 공식대국은 단 한 판도 없었다 한다.

▲ 다케미야 9단이 42기 명인전 도전2국을 입회(심판장)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고 이날을 인터뷰 날로 잡았다. 다케미야 9단은 종일 검토실에서 젊은 후배기사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 받았고, 종국 후에도 대국장에서 대국자들과 오랫동안 바둑내용을 검토하는 열정을 보였다.

알파고 출현 이후 재조명 받는 ‘우주류’
다른 사람이 둔 바둑을 따라하긴 싫었다
나만의 바둑을 두고 싶었고, 이기기 위해 실리바둑을 둔 적 없다


-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께서는 많은 한국팬들이 좋아하는 일본기사입니다. 특히 한국기사들이 20세기를 밝힌 3명의 기사로 꼽고 있습니다. 알파고가 등장한 이후 선생의 우주류가 알파고의 바둑과 비슷하지 않느냐. 일찍이 두터움과 중앙세력을 구축한 선생의 바둑이 흡사한 면이 있어서 거기에 대해 꼭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알파고나 딥젠고...인공지능도 몇가지 있긴 하지만 이들이 두는 기풍이 나도 AI 바둑을, 감각적으로 인공지능의 기풍을 좋아합니다.”

- 한국에선 우주류로 통합니다만, 이전에 선생은 우주류보다 자연류(自然流)라고 불러달라고 하셨는데...

“그런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자연류’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 같네요.”

- 선생의 중앙바둑이 자연스러운 흐름의 결과여서 자연류라고 하시나요? 자연스런 흐름을 따르다보니 중앙으로 흘러가게 되는 건지...

“단지 중앙만이 아니라 내 바둑은 뭐랄까, 바둑돌들이 판 전체의 아름다운 흐름을 따라간다고 할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거겠지요. 자연스레 흘러가는 모습이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중앙이 중시되는, 그런 모습이 되었다고 봅니다.”

- 그럼 프로가 되기 이전 연구생시절부터 중앙바둑에 대한 발상이랄까, 개념이랄까. 우주류에 대한 그런 구상을 하셨던 건가요?

“13세에 프로가 돼서 14세에 프로 경기에 나섰습니다. 처음 둘 때는, 14~15세 경에는 ‘우주류’가 아니었습니다. 프로가 된 뒤 바둑을 공부하면서 중앙 발상이 가장 좋지 않을까, 나만의 감각으로 두는 것이 맞지 않나 싶어 우주류로 가게 된 것이지요.”

- 그렇지만 이기는 것만 생각하면 중앙바둑보다는 실리바둑을 두는 쪽이 승률이 높던 때인데...

“실리로 두면 이길 확률이 높다는 얘길 듣지만 나는 두고 싶은 바둑을 둡니다. 나밖에 둘 수 없는 바둑을 두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둔 바둑을 따라하긴 싫었지요. 나만이 둘 수 있는 바둑을 두고 싶었기에 이기기 위해 실리를 중시하는 바둑을 둔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손종수 바둑평론가 같은 이는 다케미야 9단이 중앙바둑을 개척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그의 뒤늦은 기타니 문하 입문을 얘기한다. 1951년 도쿄 생인 다케미야는 8세에 바둑을 배워 13세에 프로 입단을 했고, 14세 중학생 때 기타니 문하로 들어간 색다른 행로를 걸었다. 프로 초단이 된 다음 기타니도장에 들어간 것. 자신도 훗날 “내 바둑의 골격과 성향은 최초의 스승 다나카(田中三七一, 7단)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만들어졌다”고 술회할 정도로, 밖에서 이미 배울 만큼 배운 뒤 기타니 문하로 들어갔기에 그 덕에 실리에 민감한 스승의 바둑과 도장 기풍에 젖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거다.

우스갯소리에 가까웠지만, 서봉수 9단이 언젠가 다케미야 9단이 평생 우주류를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그의 유복하고 부유한 가정환경을 든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의사였고, 바둑을 처음 배운 계기도 어깨너머로 익혔다거나 뛰어난 재주를 보여 발탁되었다거나 한 게 아니라 여덟 살 생일선물로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시작했다. 바둑 정도는 교양으로 배워두는 게 나중 아이 삶에 낫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의도로. 집안이 부자였고 일본바둑계에서 말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만들어진 기사’였기에 비장감이랄까 벼랑에 선 듯 처절한 승부욕 같은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 ‘이기지 못하면 수입이 줄어 당장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은 결코 꿈도 꾸지 못할 바둑(서봉수 9단식 표현)’이 우주류라는 거다.

▲ 참 상쾌하게 살고, 그리하여 유쾌하게 나이를 먹을 수 있다는 거...다케미야 9단을 보며 든 생각이다.
▲ 20대 젊은날의 다케미야 9단. 단신을 훌쩍 커버하고도 남을 귀공자풍 풍모로 인기가 대단했다.

알파고의 감각을 대단히 좋아하지만 3-三 수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승부결과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바둑을 두는가가 더 중요


- 알파고의 출현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심지어 바둑사는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거란 말도 합니다. 알파고의 바둑을 보고서 느낀 점이라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감각적으로 대단히 좋아하고,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나와 맞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알파고의 감각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바둑판 전체를 보면서 자유롭게 두는 것이 알파고의 바둑인 것 같습니다.”

- 전부는 아니라고 하셨는데 차이점이라면?

“중앙지향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3-三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알파고와 나와의 차이점은, 3-三은 아직도 좋은 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좀더 확실히 얘기하면 안 좋은 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프로나 아마들이 알파고의 3-三을 흉내내고 있지만 나의 직관이랄까, 감각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수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알파고는 3-三을 두고서도 매번 이기지 않습니까?

“결국은 그게 좋은 수여서 이겼다기보다는 그 후 수의 전개가 잘 돼 이긴 것일 겁니다.”

- 프로란 일단 이겨야 빛날 수 있는 존재이지요. 어쩌면 알파고의 3-三 수법을 따라 하는 것도 그렇게 두어 이겼으니까...본디 승부세계에 발을 디딘 다음에야 그런 숙명을 벗어날 수 없을진대 프로에게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있을까요?

“프로기사는 이기고 지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바둑을 두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둑이라는 것은 줄곧 좋은 수만을 둘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딘가에서 악수, 실수가 나오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바둑이 나오고 승부는 여러 면에서 갈리지요.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바둑을 두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어떤 바둑을 두는가에 가장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 바둑의 수법이 워낙 치열하게 연구되고 있고 웬만큼 속속들이 파악되어서일까요? 요즘 기사들은 예전 각양각색의 기풍을 내세우던 선배들의 시대와 달리 자기 개성, 특색 없이 흡사 한 사람의 바둑을 보듯 이기는 바둑에만 골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승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야 이해가 갑니다만 일색의 바둑은 재미가 없죠.

“전반적으로 자기의 생각이 아닌 흉내 내는 바둑이 많습니다. 물론 흉내 내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흉내 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 두는지 생각하고 알고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 전례 없던 알파고나 딥젠고 등 강력한 인공지능 바둑의 등장은 이미 바둑계에 상당한 영향과 파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향후 어떻게 될지 기대와 더불어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선생께서는 인공지능 바둑의 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알파고의 새롭고 좋은 점들을 참고로 해서 바둑을 배우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생각해본다면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알파고의 출현에 대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인공지능이 나와서 바둑은 더 발전할 것입니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에 자꾸 지더라도, 예를 들어 지구력만 놓고 볼 경우 인간은 2시간 계속 집중하는 게 물리적으로 무리지만 알파고의 에너지는 영향을 받지 않잖습니까. 인간과 기계가 100미터 경쟁하는 것은 승부 자체가 되질 않지요. 애초에 인간과 기계는 서로 경쟁할 대상이 아닙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알파고가 나온 이후 대단히 많은(좋은) 감각을 몸에 익혔기 때문에 이전의 기사들보다 빠르게 공부할 수 있고 진전을 보일 수 있게 되었지요. 알파고의 공헌입니다.

단 알파고가 대단히 훌륭하고 나도 대단히 좋아하지만 인공지능도 퍼펙트 하지는 않습니다. 100% 절대적이지 않지요. 알파고는 1초에 몇 천만 건의 수를 일순간에 찾아내지만 그것이 100% 해명되지 않는 것이 바둑의 훌륭함이지요.” (下편으로 인터뷰 이어집니다)


▲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 하면 멋진 대결을 펼쳤던 조 프레이저가 떠오르는 것처럼, '다케미야' 하면 조치훈 9단이 따라온다. 극도의 세력 대 극도의 실리로 서로 양 극단에 선 바둑을 보여주었던 두 사람의 대결이었기에, 더없이 짜릿했다. 1985년 1월 서울에서 벌인 9기 기성전 도전1국은 바다 건너 일본이 아닌 지척에서 목도할 수 있는 대결이었고, 그래서 더 짜릿했다.

조치훈 9단을 ‘안에서 살기 힘들게 했던’ 다케미야의 우주류!

“그렇다면 ‘이것이 내 바둑이었다’ 생각한, 그런 바둑이 있었을까요?”란 기자의 질문에 다케미야 9단은 “역시 조치훈을 상대해서 둔 7번기 중 몇 국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두 기사의 기풍이 극명하기 때문에, 아마도 조치훈 9단을 상대할 때 우주류의 위용을 더 드러낼 수 있었을 터이다.

아래 <장면1>은 1985년 1월 16~17일 서울에서 둔 9기 기성(棋聖)전 도전7번기 1국이다. 일본바둑 최초로 해외에서 연 도전기다. 서울을 첫 해외대국지로 선택한 건 아무래도 기성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7번기 결과는 아슬아슬하게(4승3패) 조치훈 9단이 기성 타이틀을 방어했는데, 당시 조치훈 9단은 “4년 전 혼인보(本因坊)전에서 서로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바둑으로 변하여 있었다”며 “본래 우주는 3차원적이 존재가 아니냐. 무한히 넓은 것뿐만 아니고, 무한한 깊이도 갖춘다. 기성전 일곱 판을 두면서 다케미야의 우주식이 3차원적인 충실도를 더하고 있음을 통감했다”고 말했다.

<장면1> 바둑의 관상만 봐도 누가 두었는지 척 알 수 있다.

흑1로 넘었을 때 백의 다음수는 A가 정수일지 모른다. 그런데 다케미야 9단은 여기에 수를 더 소비해서는 대세에 뒤진다고 보고 백2, 과연 그답게 호방한 중앙경영을 들고나왔다. 이 수에 소비한 시간은 고작 8분이었다. 이로써 극도의 실리 대 극도의 세력이라는 두 기사의 본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런 식이다. 매번 두 사람의 대결은. 그렇기에 관전자로선 한껏 스릴과 쾌감을 맛보게 된다. 드디어 흑45로 뛰어들었다. 첫날 봉수(封手)였다. (240수 끝, 흑 7집반승)

상대가 대세력 바둑을 펼치는 다케미야 9단이기에, 두 사람의 대결은 언제나 상대 진영에 깊숙이 침투한 조치훈의 특공대가 살아남으면 이기고 잡히면 지는 양상이었기에, 악전고투 끝에 이 대국을 이긴 직후 조치훈이 한 “안에서 살기 어려웠다”는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국에서 서전을 장식한 기분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조치훈 기성에게 기자들이 종국소감을 물었을 때 “안에서 살기가 어려웠다”는 미묘한 말을 던졌고, ‘다케미야의 대세력 속에서 대마를 살리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받아들여도 그만인 이 말은 ‘재일한국인이 일본땅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었다는 심정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 ‘일본과 한국 어느 쪽에서도 깊숙이 들어서지 못하는 회색지대의 경계인으로서의 심정을 피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 다케미야 인터뷰 (下) "바둑은 고대의 신들이 즐기던 게임, 인간에게 준 선물" ☜ 이어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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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  2017-10-25 오후 8:02:00  [동감0]    
안에서 살기 힘들었다는 한참 예전에 한 말이라 알고있는데요. 워낙 젊었을 때라 두서없이 얘
기한듯한데, 기자는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라는 말로 해석하더군요.
니차는막써 |  2017-10-25 오후 7:24:00  [동감0]    
저도 팬입니다
高句麗 |  2017-10-25 오후 6:52:00  [동감0]    
3.3은 좋지 않은 수라고 지적한 다께미야
그것은 우주류의 대가 다께미야가 아니면 누구도 할수 없는 말이다
자신들은 실리를 파고들면서 알파고의 33을 지적한다면 누구 수긍하겠는가
오직 현대포석을 창시한 오청원과 우주류만을 지향하는 다께미야만이 그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高句麗 |  2017-10-25 오후 6:48:00  [동감0]    
알파고의 3.3은 좋지 않은 수라고 지적한 다께미야 다른 프로기사가 그런말 했다면 일류라고 해도 그건 아마가 프로의 바둑을 지적하는 격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류의대가 다께미야가 한말이라면 나는 거기에 수긍한다
다께미야는 중앙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감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섬진나루 |  2017-10-25 오후 2:24:00  [동감0]    
멋진 기사.
황토강 |  2017-10-25 오후 1:07:00  [동감0]    
나만의 바둑을 두고 싶었다...!
프로기사라면 마땅히 품고 있어야 할 생각이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요즘은 이런 자신만의 류를 가진 멋진 바둑기사가 나오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ㅎ
술익는향기 |  2017-10-25 오전 10:43:00  [동감0]    
흥미로운 인터뷰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가장 멋 있는 기사를 꼽으라면 망설임없이 다케미야 를 선택 할 것 같습니다.
바둑 뿐만 아니라 그분은 인생도 낭만적이고 멋있게사신 분인듯합니다.
몇년전 미국바둑 축제때 참석하셨는데 멋진 탱고춤을 추시더군요...ㅎㅎ 정말 멋있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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