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바둑예능. 2015 KB리그 주간명승부 여름특집. 바둑으로 꾸미는 ‘1박2일’이다. 물론 지상파 방송의 바로 그 프로그램을 차용해 바둑적 요소로 꾸민 특집물이다.
첫날 이런 콘셉트인 줄 전혀 모르고 왔던 출연자 5명(김만수·이희성 해설자, 추두엽·김여원 진행자, 최명훈 바둑국가대표팀 코치)은 정말 고단했을 터. 강원도 인제의 어느 정자에서 대형 바둑판을 펼쳐놓고 시원한 들바람을 쐬며 리뷰를 진행할 때만 해도 상쾌했을 테지만 명령바둑의 혈투를 벌이고서 저녁 폭포의 찬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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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어둑어둑해지자 출연자와 제작진은 숙소로 향했다. 산과 밭, 수풀로 가득한 외딴 곳에 숙소가 있었다. 김정연 피디의 지인이 가끔, 아주 가끔 사용하는 별장이었다.
▲ 이곳이 숙소. 해가 질 무렵 스태프와 출연진이 이곳으로 왔다.
솔직히 다행스러웠다. 기자는 더 지독한 오지에 가는 걸 각오했기에. 아니 착각했을 것이다. 1박2일이 아니라 ‘정글의 법칙’쯤으로. 몇 시간을 걸어 나가야 인가가 나오는 그런. 아니, 꼭 그런 건 아니더라도 폐교 같은 곳에서 이불도 없고 씻을 물도 없이 버텨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도 각오했다. ‘악마 피디’ 김피디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작은 배낭 안에 웬만한 생필품을 착실히도 쑤셔 넣었던 것이다.
겉은 허름해도 내부엔 있을 거 다 있는 이 건물은 고맙기만 했다. TV나 에어컨 같은 건 없었지만 넉넉히 큰 냉장고, 싱크대, 약간 눅눅한 이불, 그리고 선풍기 두 대가 있었다. 두 대면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가 이용하기에 부족하지만 뭐 그런 거 따질 계제는 아니었다. 샤워기가 있는 화장실의 단점이라면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땀에 쩔은 기자가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가 불 켜는 곳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자 최명훈 코치와 이희성 해설자가 씩 웃으며 말한다.
“우리에게 달빛이 있잖아요~”
기자 역시, 뭐 서로 알만한 걸 착각했다는 눈짓으로 응수한 뒤 창문을 열어 고마운 달빛에 의지해 감각적으로 씻었다.
▲ 강원도의 달밤. 달아 고마워.
김여원 진행자는 벌레에 약했다. 집안에 벌레가 기어다니면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최명훈 코치는 “벌레가 그대를 보고 매우 더 놀랄 듯하오.”라며 장난쳤다.
그러나 이 집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쥐가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쥐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이희성 해설자. 평소에도 극한 체험을 하곤 하는 이희성 해설자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 조연출 2명과 김여원 진행자는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새끼쥐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천장이 아닌 방바닥을 기어다닌다. 사람을 경계하는 척 연기를 한다. 오랜만에 쥐를 본 기자는 이곳에서 하룻밤 잘 마음이 싹 가셨다.
또 다른 여성 조연출 한 명은 영상에 담겠다면서 쥐를 추격한다(영상에 담는 일은 결국 실패했다). 쥐는 이따금 나타나기에 동일 쥐인지 여러 쥐가 한 마리씩 출몰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필시 쥐는 여러 마리일 것이었다. 김여원 진행자는 “벌레는 보고 소리를 지르지 않게 됐다. 쥐를 보니 벌레는 이제 귀여워지려고 한다.”고 했다.
▲ 외관은 옛날 집. 안에 들어가면 현대식이다. 문제는 건 쥐가 나온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은 쫄쫄 굶었다. 아침 9시에 한국기원을 출발해 강원도에 가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저녁이 될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피디는 저녁식사를 걸고 복불복 게임을 시킬 심산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미리 먹게 해주면 출연자들의 ‘리얼’이 사라진다. 김피디는 5명 출연자를 숙소에서 잠깐 쉬라고 한 뒤 제작진, 기자와 함께 주변의 소문난 두부 전골집으로 향했다. 조연출 중엔 출연자들이 너무 배고프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김피디는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다.”라고 했다. 숙소 냉장고엔 식빵 몇 조각이 있었다. 그게 다였다. 김피디는 그것도 먹지 못하게 하려다 눈감아 주었다. 날씬하지만 한끼에 밥 두 공기도 너끈히 먹는 김여원 진행자는 웬일인지 식빵에 입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김피디는 두부전골을 배불리 먹고 온 뒤 출연자들에게 복불복 게임을 시키지 않았다. 생각을 바꿔 모두가 밥을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단, 추두엽 진행자가 요리를 하게 했다. 바둑 1박2일을 찍기 전 김피디는 몰카를 찍은 적이 있다. ‘수퍼스타B’라는 패러디인데, 지금의 출연진 각자에게 초중급자용 바둑강좌 강의를 시킨 것이었다. 막상 강좌가 시작되면 몰래 준비한 평가단이 들어가 심사를 하도록 했다. 심사위원은 장수영 해설자, 이광구 일요신문 바둑전문기자, 그리고 바둑TV의 임진영 국장과 이세신 편성팀장이었다. 심사가 있을 줄 몰랐다가 당황한 출연자들은 가까스로 강의를 마치며 각자 점수를 부여받았는데, 추두엽 진행자가 당시 점수를 가장 적게 받았다.
요리는 간단한 찌개였다. 된장이 아닌 비빔밥 양념장을 넣는 이름 모를 찌개로 출연자들은 한밤중에, 드디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 게임이 아닌 먹방이다.
▲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추두엽 셰프.
▲ 이것은 된장이 아니다. 비빔밥 양념장이다. 추두엽 이희성 셰프는 이것을 찌개에 듬뿍 넣었다.
▲ "탕 속을 찍어야 하는데..."
▲ "맛있게 요리되고 있구만..."(추두엽)
▲ 와, 정말 밥이 얼마만이냐.
▲ 어, 살 거 같아. (사실 이나마도 밥이 많지는 않았다).
▲ '사랑이라는 이유로~'. '나는 개그맨이 아니라 가수다' 추두엽의 통기타 음률에 맞춰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 노래와 함께 한밤의 토크는 이렇게 시작됐다.
▲ 야간에 야외에서 촬영할 기회는 거의 없었던 김정연 피디.
밥을 먹으니 이야기와 노래가 절로 나온다. 화제는 어느덧 이희성 해설자의 여성관 얘기로 흘러간다. 이희성은 “예전엔 같은 프로기사 중에서 결혼상대를 찾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관심 가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옆에서 누구냐고 물어보니 알려주질 않는다. 나이대가 모호하다는 알쏭달쏭한 힌트만을 남긴다. 한데, 이 힌트만으로 최명훈 코치는 “아, 알겠다. 누군지”라며 확신에 찬 표정을 보였다.
쥐 탓에 잠을 못잘 것 같다는 사람이 많았다. 한 무리는 찜질방으로 갔고, 기자와 김만수 해설자, 최명훈 코치 등은 그냥 숙소에 남았다. 미리 싸가지고 간 침낭을 폈다. 밤사이 쥐가 기자의 배·얼굴 위를 지나다니진 않았겠지 ^^….
둘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식사를 건 게임이 펼쳐졌다. 바둑퀴즈다. 사활도 풀고, 골든벨처럼 답을 화이트보드에 내기도 한다. 많은 문제가 나왔지만 그중 “위기십결을 한자로 쓰시오”가 참 기억에 남는다.
푸는 시간으로 몇 시간을 허락한 문제도 있었다. 정상급 기사들도 30분 이상, 한 시간 이상 쳐다보고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는 문제였다. 목진석 9단이 출제했다. 이 문제는 너무 어려워 모두가 합심해 푸는 것으로 했다. 첫수를 김여원 진행자가 맞춰 다른 출연자들이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마지막은 또 다른 대국의 리뷰로 장식했다.
▲ 거의 하루 동안 먹지 못한 출연자들이 아침밥을 얻기 위한 게임에 참가하고 있다. "우선 팀명을 정해주세요" (김정연 피디)
▲ 저희 팀명은 "전지현팀"으로 하겠습니다!" (김만수)
▲ "그 팀명을 인정 못하겠습니다." (추두엽, 이희성).
▲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팀명은 정해졌다.^^ 추두엽 이희성의 팀명은 '와우'팀. 그냥 기분 좋으면 '와우'하고 소리를 질러서 와우다.
▲ 아이패드를 통한 영상 문제 출제.
▲ 이번엔 영상 출제입니다.
▲ 벌레가 손에 앉아도 영상 출제에 여념이 없고, 미동도 않는 김피디.
▲ 워어어어. 벌레야 날 놔주~
▲ 박정상 9단이 영상으로 출제한 것이었다. 부인 김여원 진행자가 아예 아이패드를 독차지했다.
▲ 사활문제도 주어졌다.
▲ 아, 틀렸네요.
▲ 우리는 맞혔다. 이번에도 '와우!'
▲ 전날 저녁식사를 배불리 먹지 못한 출연자들이 아침부터 너무 배고파하자 상품을 미리 제공하고 있다. 먹을 거다.
▲ 으헝헝. 먹을 거다.
▲ 감격.
▲ 빵 한 조각이 이렇게 귀할 줄이야.
▲ 난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당.
▲ 냇가에서 문제를 풀다.
▲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 이게 답 아닌가?
▲ 어... 안 풀린다.
▲ 발 걷은 스태프들은 시내를 종횡무진.
▲ 최명훈 국가대표팀 코치의 역할은 늘 심판인데, 퀴즈시간에 출제자다.
▲ 위기십결을 한자로 쓰라고요?!
▲ PD님은 사랑입니다는 '사람입니다'로 오인되기도 했다.
▲ 이희성 추두엽의 와우 팀도 포기 수준.
▲ 드디어 나왔다. 악마PD. 김피디는 사랑이었다가 악마였다가 한다.
▲ 점심은 그야말로 배불리 먹었다. 소문난 막국수집을 찾아갔다.
▲ 막국수 맛집에 왔다.
▲ 그동안 쫄쫄 굶은 걸 한방에 풀리라.
▲ 유 후~
▲ 바로 이거야.
▲ 적나라하게 들어가는 음식.
▲ 바로 이 맛이야.
▲ 건배!
▲ 스태프들도 건배!
▲ 막국수를 썩썩 비벼서.
▲ 먹으려는데.
▲ 육수를 권하는 사람도 있다.
▲ 강원도의 대자연 속으로 방송 장비를 옮기는 스태프들.
▲ 야외 퀴즈를 또 한번 하려 했다.
▲ 카메라도 정비하고...
▲ 날씨도 좋구만.
▲ 장소도 좋네.
▲ 이제 준비 다 된 거야?
▲ 생각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답사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벌집이 있다. 결국 촬영 포기!
▲ 이럴 수가... 절망의 순간도 있다.
▲ 정상급 기사들도 쩔쩔 매는 문제를 풀어야 했던 여름특집팀. 김여원 진행자가 첫수를 알아내 탄성이 터져나왔다. 모두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결국 풀어냈다.
그리고 우린 서울로 돌아왔다.
처음 이 프로그램 얘기를 들었을 때 ‘의욕은 좋지만 만만치 않겠다. 피디가 너무 실망하지 말아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출연자들이 예능프로에 출연해 오던 연예인들도 아닌데 각자 역할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돌아보건대 생각보다 훨씬 잘들 해낸 것 같다. 첫술에 배부르랴는 속담이 있다. ‘배부르다’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그래도 꽤 먹은 것 같네’라는 정도는 충분히 해냈다고 느꼈다.
김정연 피디는 “바둑이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려면 예능, 그러니까 바둑을 다채롭게 사용하는 장을 열어야 한다고 봤다. 막상 제작을 하면서 아쉬운 상황이 많았다. 열악한 상황에서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잘 참고 이겨내준 출연자들에게 감사하다. 또 스태프들이 자랑스럽다.”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이 경험들을 토대로 다음 기회에 더 나은 방송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 바둑 1박2일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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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