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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설특집 <두터움> 특강 6편. 이어 후속편 격인 2015년 한가위 특강 <명인의 두터움> 8편. 그간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 자리했던 ‘두터움’의 실체를 구체적이고 뚜렷한 이론으로 설명한 문용직 박사의 명절특강에 사이버오로 회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2016년 한가위 특강! 이번엔 <장문>이다.

‘축’처럼 초보시절에나 배움직한, ‘장문’을 한갓 돌을 잡는 기초적인 바둑의 수법이라고만 여기고 계셨다면 이 강의를 접하는 순간 장문의 또다른 세계, 바둑의 무한한 매력에 경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협소한 범위였는지. 한가위 연휴 엿새 동안 하루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장문 특강1 - 장문을 넓히고 싶어서 ☜ 바로보기 클릭
장문 특강2 - 버리는 것이 훌륭한 안목
장문 특강3 - 축이 안될 때의 장문
장문 특강4 - 씌우고 벗어난다
장문 특강5 - 넓히고 역으로-부분과 전체의 관련
장문 특강6 - 잇는다

버리는 장문 맥을 다루자.
기초적이고도 기본적인 것.

바둑은 버릴 줄 알아야 즐길 수 있다.

옛 친구가 생각난다.
임선근 9단이 10여 년 전에『이기려면 버려라』, 한 권 썼었는데…
세상사 욕심이 별로 없던 친구였다. 늦게 배웠지만 바둑에만 전념했었다. 1975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봤는데 필자보다 약했다. 그런데 웬걸 2년 후엔 입단 실력이 되고 우리 또래에서는 입단도 빨랐다.

두서없이 쓴다.
목적이야 있지만, 목적을 계속 앞에 두고서야 인생 피곤해서 못 산다.
글도 그렇다. 책이 아닌 이런 형식의 글에 좋은 점이 많다.
가볍게 읽으시라.

▼ <1도>

1도 (13기 국수전 도전4국, 흑의 다음 한 수는?)
1960년대 제13기 국수전 도전4국이다. 당시 김인 6단이 국수였고 도전자가 조남철 8단. 조8단은 10기 때 타이틀을 빼앗긴 이후 3년 만에 도전자로 다시 찾아왔다.

김인 국수가 흑1 이하 밀어갔다. 하지만 백8 젖힘이 미처 생각지 못한 반발이었다. 백8은 A가 보통이나 조남철은 그것을 기백이 부족하다고 보아 젖힌 것이다.
다음 흑의 한수는?

▼ <2도>

2도 (13기 국수전 도전4국의 실수)
흑1이 큰 실수.
깜박한 것이다. 생각을 너무 했다. 저리 평범한 장문의 맥을 예측할 수 없을 리가 없다.
김인 국수도 술회했다. 흑1은 흑A 백B 흑C 두는 것이 정수라고.
백4 이후는 다음 <3도>-

▼ <3도> 실전진행.

3도 (2도 다음 실전 - 석점의 중앙)
흑7까지 숫자 순으로 두었는데, 여기서 다음 급소가 하나 남았다.
백8이 급소다. 석점의 중앙 자리.
백8을 A에 끊는 것은 속수다. 흑B, 백C, 흑8로 밀고 나가 백이 별거 없다. 차이를 음미해보셨으면 한다.

석점의 중앙을 체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장문의 맥과 매우 가까운 것이다.
아니, 석점의 중앙이 곧 장문의 맥이다.

석점의 중앙이 얼마나 장문의 맥과 가까운가를 보자.

궁금하실 거 같아 이후 실전진행을 <3-1도>로 보여드린다.

▼ <3-1도> (실전진행)

4도 (이창호의 놀라운 감각)
우선 감탄하는 이유부터 이야기하자.

▼ <4도> 석점의 중앙

저 장면에서 백1을 찾는데 그리 힘도 들이지 않았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백1이 “석점의 중앙” 급소다.
응?
급소?
(1997년 제5기 배달왕기전 도전자 결정전 3국. 백 이창호 : 흑 유창혁)

예전에 『수법의 발견』에도 이 문제를 등장시켰는데, 기억에 스쳐 지난 것을 책에서 찾아내느라고 애먹은 기억이 난다. 그게 어디서 봤더라? 그런 생각으로 찾았으니 … 고생했었다.

요즘엔 대국도 많고 수법도 치열해져서, 이런 수준의 놀라운 맥점은 찾아보면 꽤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5도 (급소인 이유)
이제 아실 것이다.
왜 백1이 석점 중앙의 급소에 해당되는지.

▼ <5도>

백5 이후는 숫자 순서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하나 더 주의할 것은, 백1 흑2 백3의 형태다. 백3이 두점의 장문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전에서 자주 나온다.
이런 형태는 기억해두어야 하는데 나중에 다루게 될 것이다.
아니다. 당장 다루자.

6도 (『사석의 묘』에서 사까다의 자부)
사까다의 「사석의 묘」에서 얻었다.

▼ <6도>

흑1과 흑7의 모양이 <5도>와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백A는 흑B 석점머리 맞아 괴롭다.

▼ <7도>

7도 (석점머리 맞기가 싫어)
흑1, 5가 역시 백 두점과 함께 <5도>와 같은 형상인 것을 알겠다.
흑5 이후 실전은 백이 6에 두고 7, 8로 진행되었는데 6을 A에 두면 흑에게 B 석점머리를 맞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제1기 기성전 결정전 3국. 백 하시모토 우타로 : 흑 후지사와 슈코)

이제부터 보다 많은 사례를 다루기 위해 문제와 답을 함께 드리면서 논의를 진행하겠다. 단, 그냥 숫자로만 답을 드리겠다.
한눈에 숫자가 답으로 잡히지 않기 바라는데, 옆에 바둑판을 두고 직접 놓아보시면 좋겠다.

공부에는 문제와 답을 시각적으로 따로 보는 것이 제일 좋긴 하다.

8도 (68년 10월 『바둑』 단급인정 문제)
김수영 당시 4단이 낸 문제로 아주 좋다. 초점은 좌변. 흑이 수습해야 할 판이다.
잠시 마우스에서 손을 내려놓으시고 장면도를 관조해 보시기 바란다. 어디가 정답일까?

▼ <8도> 다음의 한수는?

8-1도 (정답)
흑1이 답이다. 다음 백2에는 흑3으로 모는 것이 요령이다.
백은 따내지 않을 수 없다. 흑1이 아니라 4로 단수치고 백2, 흑1 순서로 몰아가는 것은 하변 백의 삶이 분명해진다.

▼ <8-1도> 정답.

그런데 여기서 흑1이 답이라 했는데,
1 자리가 앞서 <4도>의 백3 자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눈여겨두자.

이 정도 문제라면 답을 찾는 것이 쉬울까?

당시 이 문제에 대해 독자의 21.2%가 답을 찾았다고 한다.
12월호에 그 기쁨이 남아있고 또 그것을 출제자와 응모자가 함께 하고 있다.
그 답은 집에서 혼자 몇날 며칠 골똘히 생각하고 생각해서 얻은 것일 테니 출제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고마웠으리.

9도 (정석에서의 급소)
우상귀는 유명한 정석이다.
장문의 맥을 보여주는 문제로 오랫동안 선생들이 가르칠 때 애용한 정석이다.
우상귀에는 정석이 이루어진 수순을 다루었다.

▼ <9도> 다음의 한수는?

좌하귀의 모양은 이 정석이 이루어진 형태를 다시 놓은 것이다.
자, 여기서 다음 백의 한수는?

▼ <9-1도> 정답.

좌하귀 백돌(△)을 이용한 백1이 급소다.
이후는 숫자 순인데, 흑돌이 뭉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서로가 싸울 만하다.

10도 (이런 복잡한 경우에도 같은가)
좌상귀 백이 살아가는 문제이다.
이번에야말로 눈을 부릅 뜨고 한번 풀어보자.

▼ <10도> 좌상귀를 살려라.

10-1도 (정답)
답은, 백1과 흑2를 먼저 교환하는 것. 그것에 주의하면 된다.
그것으로 백은 살아간다.

▼ <10-1도> 백3, 5의 연타를 눈여겨보자.

백3, 5의 연타는 우하귀 백A, 흑B, 백C와 같은 맥이다.

아마도 필자는 이런 문제에 익숙하기에 독자를 돌보지 않고 다소 일방적인 설명을 하는 경향이 있을 듯하다.

예를 들어 <10-1도>에서 3과 5를 놓아볼 때 <5도> <8-1도> <9-1도>와 다를 바 없는 감각을 느끼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형상으로 볼 때 다소 차이가 있는 듯도 한데, 그러나 하나의 테두리로 설명되는 것들이다.

이 문제는 69년 11월호 『바둑』에서 가져왔다. 이 문제를 만든 백욱태 사범은 세상을 일찍 떴는데, 재주가 뛰어난 분이었다 한다.

11도 (유명한 정석에서의 변화)
우상귀가 잘 알려진 정석. 수순 중 흑11이 약간 욕심을 낸 것이나 많이들 두곤 했다.
흑11을 흑A는 백B, 흑11까지 서로가 튼튼하여 만족한다.

▼ <11도>

문제는 백C 치중 올 때다.

11-1도 (두 가지 방법)
이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좌상귀와 우하귀 모두에 그 과정을 표시했다.

▼ <11-1도>

장문맥과 관련해서 초점은 우하귀 흑이 두는 4의 수다.
이것이 축이 유리할 때의 맥인데, 앞서의 장문맥과 같은 이치다.

▼ <12도>

12도 (여기서는 답을 아니 드려도 되겠다)
상변의 흑11, 하변의 흑3을 두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백이 나가면(상변 C나 하변 A로) B나 D에 씌워서 한 점을 버림돌로 하여 돌을 정비하겠다는 의도다. 어느 것이나 마늘모로 앞을 막는 것이 급소가 된다.

13도 (69년 11월 월간『바둑』 실력테스트에서)
이제 형태만 갖추어지면, 수수가 늘어나는 것도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 <13도>

상변에서 왜 흑은 1, 3을 두었을까?
세력을 쌓아봤자, 왼쪽에 백이 있어 전혀 도움이 아니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 답을 하변에서 찾자. 하변에 장면을 다시 놓았다.
흑7 끊기 위해서다. 그러니 흑▲(상변 흑1, 3)은 축을 방지한 것이다.
초점은 하변 흑11. 이리 두어도 백은 손 뺄 수 있다. 그러나 흑도 좋다.
이제 조이는 것이 선수이니 대단히 두텁게 되었다.

14도 (천재 하시모토의 진기한 포진)
조남철 선생이 “천재 하시모토의 진기한 포진”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흥미로우니 여기 나누어서 보자. 흑1 천원의 포석이다.

▼ <14도>

초점은 흑1, 3, 7, 9로 네모로 포진하는 것.
이 형태가 집으로 굳어지면 대단히 큰 집 된다. 백14 이하 백18은 오청원다운 결단이다. (제1기 명인전 리그 백 오청원 : 흑 하시모토 우타로)

▼ <15도>

15도 (실전, 백8이 묘수)
백8이 초점이다.

바로 이것이다.

대단한 묘수로 무엇보다도 이 수를 여러분과 함께 감상하고 싶었다.
그래서 굳이 장문의 맥으로서는 그리 좋은 문제가 아님에도 오늘 굳이 이 그림을 썼다.

뭐, 꼭 글이 아름답고 주제에 딱 들어맞으라는 법 있나?
날씨도 변하는데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어, 적당히 즐기면 좋지 않을까?

묘수다.
이런 묘수를 만나면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도 마음이 점차 환하게 변하는 법이다.
아픈 건 아픈 것이지만…, 불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바둑 지고 나서 대국료 얇은 봉투 받아서 술 한 잔 마시러가는 기분도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기보다는…, 삶의 다른 기운, 다른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흠, 흠! 그런 게 있단 말이지!”
그런 거.

물론 그리 심각한 바둑이 아닐 때의 기분이다. 예선 대국 정도. 본선, 그것도 돈이 꽤 되는 본선리그 올라가는 판이면 그건 다르다.

백8의 밑붙임수가 왜 기가 막힌 묘수냐는 건 다음 실전진행도에서 느낄 수 있다.

▼ <15-1도> 실전진행.

15-1도 (실전진행)
흑1 이하 백12까지가 실전 진행으로 백이 성공한 장면이다.

▼ <16도> 젖히면?

16도 (왜 흑1 젖히지 못했을까)
장문이 기다린다. 그것이 답이다.
여기 흑1이면 백2 이하 12까지가 필연이다. 다음 A와 B를 맞봐 흑이 망한다.

여기서 우리의 초점은 이것이다.
백8, 10, 12의 형태. 그리고 백12가 흑 두점(▲)의 급소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제시한 형상과 비교해보시라.

17도 (버림돌 장문맥을 썼다고 자만하지 말자)
강철수 화백의 만화가 새로 나왔다는 오로의 소식은 기쁜 일이다.
그 분 만화 참 즐겨 보았다. 백미는 『바둑스토리』였던가. 『명인환속』은 그리 재밌게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알파고가 나왔으니, 『명인환속』의 할아버지가 따로 없겠다. 알파고가 실력 13단의 버전까지 왔다는 소식. 아마도 사실일 것으로 본다.

우울한 일일까. 프로의 입장에서는 우울하다.
우울한 일일까. 애기가의 입장에서도 그리 기쁜 일만은 아니겠다.

우울한 일일까.
멀리 본다면 미리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나 보자.

▼ <17도>

여기 <17도>는 강철수 화백의『바둑스토리』에 나왔던 것이다. 유수현이 백이던가. 아니 흑이었나. 최희중과 둔 것인가. 아니, 최희중이 아닌데…, 기억이 불확실하다. 물론 문제는 이것이 맞다.

아니, 복잡한 문제는 기억하면서 흑백을 모른다고?

하하. 그건 아니다. 이 문제는 오청원 선생이 포석강의에서 다룬 것이다. 월간『바둑』
에도 실렸고. 그래서 찾아봤다.

백1은 좋은 자리다. 다음 흑은 선택이 둘. A 아니면 흑B, 백C, 흑D 끊는 것.
물론 ‘바둑은 끊는 것이다.“ 그런 격언 있다.

▼ <18도>

18도 (국면의 초점은 여기!)
초점은 흑9와 흑11이다. 나와서 끊는 거다.

자, 이제 이 국면이 초점이다.

▼ <19도>

19도 (버림돌 장문맥도 조심하자)
초점은 백7.
정말 멋진 맥이다.
다음은 알파벳 순. 그래서 흑이 나쁘다, 백7이 장문의 묘수이기 때문.

…그리 생각하기 쉬운데….

오청원 선생은 다른 길을 제시했다.

자, 이제 이 국면이 초점이다.

▼ <20도> 오청원의 멋진 전환, 그리고 결단.

20도 (진짜 결단은 이런 것!)
흑1 이하가 멋진 전환이다.
가히 결단이라고 할 만하다. 이후는 숫자 순. 흑이 유리한 결말이다.

자, 그런데 진짜 결단은 어디에 있을까?
흑5~백8의 수순에 있다. 저 흑5와 흑7이 진짜 결단이다.

왜냐. 미루다가 백이 A 근처에 먼저 두어 좌상 흑B와 교환했다고 가정하자. 그때 가서 여기 흑5를 두면 백이 백6 받을까?
지금 이 순간 결정해야 한다.

▲ 알파고의 실력이 이미 13단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3월의 바둑을 볼 때 정말 놀라운 것은, 알파고의 소비시간이었다. 초반 중반에서도 알파고는 착점의 결정에 장고가 없었다. 그 망설임 없는 결정은, 수순의 차이가 가져오는 미묘한 손익계산을 알파고는 손색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둑은 결단이다.

[독자께 말씀…]

쓰다 보니, 장문 맥이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산천경개 유람할 만한 곳이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 묘착과 결단을 두어 개 소개했으니 용서하시라.

묘착과 결단…

결단. 특히 결단.

결단의 뒤안길은 다루기 쉽지 않다.

조금 전 알파고 잠깐 이야기하다 말았는데
프로의 정상이 두 점 접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굳이 논문을 보지 않아도 짐작되고 또 그럴 것이라 본다.

저번 3월 바둑만을 두고 보더라도, 이미 두 점은 예고되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당시에도 선(先)은 이미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3월의 바둑을 볼 때 정말 놀라운 것은, 알파고의 소비시간이었다. 초반 중반에서도 알파고는 착점의 결정에 장고가 없었다. (참고로, 이 글은 알파고의 본질을 모른다. 정책망이니 신경망이니 잘 모르겠다.) 그 망설임 없는 결정은, 수순의 차이가 가져오는 미묘한 손익계산을 알파고는 손색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린 수순을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초반과 중반에서 인간은 계산에 한계가 있다. 여기 필자가 그러하니 정상이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비교와 평가, 그것이 바둑에서 인간이 하는 일이다. 물론 알파고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판단에는 감정과 오해가 개입한다.

감정과 오해가 개입하는 이유가 있다.

세상사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선입견.
일종의 편견(bias) 없이는 우린 살아갈 수 없다. 문화라는 게 편견의 하나고, 몸의 습관이라는 것도 편견의 하나다.

삶에 필요한 그 편견은 반상에 그대로 옮겨진다.

종반의 끝내기에서도 그것은 나타난다. 1990년대 벌캄프와 김용환 박사의 선구적인 연구는 그 점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그 편견은, 초반과 중반에서도 나타난다.
본질적으로 우린 비교의 조건과 능력에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 우리의 완고한 자의식은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
이미 3월에도 선으로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

13단의 알파고를 만나더라도, 우린 알파고가 어디서 잘 두는가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두어진 다음, 결과로 알게 될 뿐이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둑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일종의 2차원 평면에 그려진 그림인데
덕분에 수순의 이해에는 한계를 갖고 있다.

수순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
우린 흘러가는 것을 붙잡는 데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

우린 붙잡는 데 익숙하다.
그것이 의식의 습관이다.

덕분에 흘러가는 과정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계속>

장문 특강(2) 돌을 버리는 것은 높은 안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