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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리그는 선진 바둑의 결정체다.

52개팀(갑조 12ㆍ을조 16ㆍ병조24)이 경쟁하는 대규모 대회. 난다 긴다 하는 세계 바둑계를 이끌어 가는 중국 일류기사들은 다 이곳으로 모이고 해마다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은 좋은 대우를 받으며 용병으로 초청받아 간다. 성적을 내 주기만 한다면 팀들은 파격적인 몸값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초청받는 입장에서 구미가 당기는 것은 단지 ‘머니’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리그는 새로운 수법이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바둑연구의 보물창고다. 개개인의 실력 향상에도 더 없이 도움 되니 우리 기사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보다 프로답고, 선진적 바둑이 구현되는 중국리그의 모습을 그 동안 한국 바둑팬들은 피상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리그의 대국은 관전기에서 단편적으로 다뤄지거나 한 주간의 주요 바둑을 다루는 바둑 관련 방송에서 다른 대국을 해설하는 중에 ‘양념’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국리그의 안쪽을 들여다 보며 깊이 다루는 뉴스나 해설 방송은 전무했다. 희한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한국바둑방송(K바둑)의 김홍진 제작팀장은 이런 점에 착안했다. ‘남들이 하지 않으니 해보자. 중국리그를 본격 해부하는 방송을 만들자.’

그 동안 중국리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만들기가 ‘힘들다’는 점이 있었다. 중국 각지를 돌며 일년 내내 진행되는 중국리그인 만큼 자료를 수집하고 영상을 제작하려면 제작비부터가 만만치 않다. 또 한국과 중국 양쪽 바둑 사정에 훤한 전문가도 드물다.

마침내 야심찬 이 계획은 실현됐다. 중국리그를 분석하는 전문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홍진 제작팀장은 “우리 한국바둑은 중국바둑을 상징하는 중국리그를 생각만큼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앞으로도 라이벌로서 경쟁해야 할 중국바둑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봤습니다”라고 말한다.

한국바둑방송은 중국리그를 소개할 적임자를 물색하는 데 고심했다.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섭외하기로 결정된 인물은 박승철 7단과 권효진 6단이었다.

박승철은 해설을, 권효진은 진행을 맡았다. 한국바둑방송은 두 사람이 최적의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박승철은 2001년, 2002년, 2004년, 2006에 중국갑조리그에서 활약한 ‘원조 용병’이다. 갑조리그의 초창기 모습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체험으로 아는 소수 중 한 명. 박승철은 왕위후이, 웨량, 자오저룬, 류싱, 펑취안, 푸충 등의 중국기사들과 교분이 두텁다.

중국어에도 능통하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한 번 입을 떼면 중국인들을 쉴 새 없이 웃게 만들 수 있다. 연구생 시절, 중국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기원 하훈희 국장으로부터 기초 중국어 수업을 받으며 중국어에 입문한 박승철은 갑조리그 선수로 뛰면서부터는 더욱 관심을 가져서 개인 교습을 받는 등 중국어 실력을 키웠다. 웨량 5단과 권효진 6단의 결혼식 때 참석한 중국 바둑관계자와 프로기사들이 머쓱하게 서성일 때 유창한 중국어로 안내를 도맡기도 했다.

남편이 중국리그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웨량 5단인 권효진은 남편에게서 중국리그 소식을 듣는다. 오래 전부터 한국기사들의 용병 계약의 다리 역할을 해 온 웨량은 이번 시즌엔 박정환 9단과 박영훈 9단의 계약을 도왔다. 권효진은 남편에게서 중국리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듣게 된다. 권효진은 남편과 함께 중국에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박승철과 권효진은 동갑내기 친구이기도 해서 해설자와 진행자 사이의 호흡에 관한 문제라면 반은 해결하고 들어간다. 두 사람은 이 프로그램을 맡기 전에도 다른 방송에서 해설자와 진행자로 활동해 왔다.

5월22일 수요일 첫 방송을 선보였다. 이세돌 박정환 최철한 조한승 등 한국용병들의 활동상과 기보를 분석하고 에피소드 등을 소개한다. 한국바둑방송은 국내 선수가 출전한 경기를 중심으로 라운드가 바뀔 때마다 2판씩을 선정해 매주 수요일 오후 1시30분에 방영한다.

프로그램을 보니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게 갑조리그 뒷얘기다.

“강동윤 9단은 중국의 음식과 기후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오랜 시간 중국 땅에 머물러야 하는 갑조리그에서 뛰지 못했습니다. 을조리그에서 뛰게 된 데는 그런 속사정이 있죠. 중국갑조리그에서 수년간 활동했던 저도 최근 중국엘 방문해보니 적응을 잘 못하겠더군요, 하하”(박승철),

“김지석 9단이 한번은 기내에서 비자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기권패를 한 적이 있어요. 박정환 9단은 굉장히 추운 곳에서 경기를 치를 일이 있었는데, 묵던 호텔의 난방 시설이 고장 나 실내가 영하 30도까지 내려갔더랬죠. 남편 웨량이 박정환에게 내복을 입으라고 권했지만 평소 내복 입는 습관이 없는 박정환 9단은 끝내 입지 않았다고 해요. 결국 이불 3개를 덮고 잤는데도 도저히 추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요. 그래서 주위의 우려를 많이 샀는데 다행히 대국을 치르는 덴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또, 박정환 9단의 지독한 공부량은 잘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 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에요.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으면 미위팅 같은 기사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서 연습바둑을 두지요. 그리고 가끔 웨량에게 중국의 사활문제집 등 각종 바둑서적을 구해달라고 요청을 해요. 그런데 웨량이 중국에 있는 온갖 자료를 다 갖다 주어도 더 없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한국ㆍ중국ㆍ일본의 고전사활 2만여 작품을 한데 묶어 편집한 해적판이 돌아다니기에 그걸 구해줬더니 박정환은 2달 만에 다 풀고 그런 걸 더 갖다 달라고 했다네요^^”(권효진)

방금 이야기들은 방송으로 나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못다한 뒷얘기들은 무궁무진하게 준비돼 있다.

▲ ‘중국리그에 관한 한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박승철 해설자와 권효진 진행자.

▲ 바둑팬들이 원하는 건 중국리그 바깥이 아닌 안쪽의 이야기. 한국바둑방송은 안쪽의 이야기를 다룬다.

중국리그 대국엔 새로 연구된 수법들이 많아 해설 준비도 만만치 않다. 박승철 해설자는 요령이 있다고 한다.“국가대표팀(감독ㆍ안조영)의 정상부 훈련에 참석해서 힌트를 많이 얻죠. 랭킹 10위권의 기사들이 참여하는 정상부 훈련은 주로 본인의 중국리그 기보를 연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김)지석이나 (박)영훈이에게 궁금한 대목을 직접 물어보기도 합니다. 해설할 대국 선정을 제가 합니다. 한국 용병 중 박정환 9단, 최철한 9단, 박영훈 9단의 대국을 중심으로 고릅니다만 조한승 9단과 나현 3단의 대국도 점차 다룰 계획입니다.”

중국리그는 구단제로 운영되고, 주장전이 따로 있고, 선수 트레이드도 이뤄진다. 프로다운 맛이 물씬 느껴진다.“실제로는 입단 때 이미 장기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팀에 강하게 소속되는 경우가 많고 감독의 동의 없이 다른 팀으로 가기가 어려운 면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엔트리에만 들어가도 월급을 주고 건강보험 등 복지를 보장해 줍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3·4·5장급의 기사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셈이죠. 상금ㆍ수당만 있는 우리와는 좀 다르죠. 중국리그의 장점은 우리가 흡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런 마음에서 ‘중국리그’ 방송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박승철 해설자의 말이다.

김홍진 제작팀장은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충분한 영상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내년부터는 중국을 돌면서 풍성한 영상을 제작할 생각입니다. 이 방송은 해설 프로그램인 동시엔 정보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이런 형태의 방송은 없었기에 일종의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험이지만 도전해나갈 생각입니다. 을조리그 또는 병조리그도 다루면서 중국리그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 방송을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이라고 밝힌다.

※ 1999년부터 시작한 중국 갑조리그는 12개 팀이 한 라운드당 6경기를 벌이며 각 경기에는 각 4명의 선수가 출전한다. 제한시간은 2시간 45분, 초읽기 60초 5회. 의도적으로 제한시간을 세계기전 수준으로 조정한 것이다. 속기 1판은 1시간 60초 1회로 국가 연승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와 완전히 같게 했다.

각 라운드에서 이긴 팀은 승점 3점을 받고, 패한 팀은 0점을 줘서 매라운드 승점을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이긴 팀은 3점, 진 팀은 0점이며, 2-2 동률을 이룬 경우는 '주장전' 승자팀이 2점, 패자팀은 1점을 받는다.

2012년은 '충칭'이 1위, '구이저우'가 2위를 차지했다. 갑조리그에서 충칭은 총 8번의 우승, 1번의 준우승을 기록한 강팀이다.

2013시즌 갑조엔 이세돌, 박정환, 김지석, 최철한, 조한승, 박영훈, 나현, 변상일의 8명이, 을조엔 이창호, 강동윤, 이영구, 김승재, 안국현, 이원영, 이동훈 등 7명이 용병으로 참가하고 있다.

갑조리그 각 라운드는 사이버오로와 협력하는 중국 시나바둑이 생중계한다. 사이버오로 유저들은 오로대국실에서 실시간으로 관전할 수 있다.

한편 한국바둑방송의 ‘중국리그’는 스카이위성방송, SK브로드밴드, 에브리온, IPTV, 엘지유플러스 스마트티비 등에서 볼 수 있다.

▲ 한국바둑방송 부조정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중국리그 뒷 얘기 무궁무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