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옥균과 고바야시 테쓰지로의 대국보.
조선말기의 개혁정치가이자 갑신정변의 주역, 거사의 실패 이후 10년 간의 일본체재와 상하이 미국조계 내의 한 호텔에서 맞은 허망한 죽음, 43년의 짧은 삶이었지만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했던 김옥균의 인생 전부를 논하는 것은 바둑문화기행이라는 주제와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내 지식으로는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주제도 아니다. 하지만 김옥균이 10년 간 일본에 머물면서 일본의 바둑계와 교류했던 이야기는 바둑인의 한 사람으로 예전부터 매우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이전에도 두어 번 나의 연구주제가 일본의 신문과 바둑과의 관계임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100년도 더 된 옛날 신문을 뒤지는 일이 주된 일과인 나는 종종 일본의 신문에서 김옥균의 이름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니까 경술국치(국권침탈) 이전, 조선의 문명개화와 정치개혁을 도모하다가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해 온 김옥균은 일본의 대중에게는 상당히 인기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가 조선과 청나라와의 관계를 우려해 그를 일본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오가사하라(小笠原)섬으로 보내자, 정부의 정치적 망명객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규탄하는 신문 사설이 실리기도 하고, 그가 떠나가는 날에 관한 기사에는 그가 탄 배의 이름과 출항 시간뿐만 아니라 누가 그와 함께 승선했는지 등까지 자세한 기록이 실려 있고, 그가 돌아오는 날에는 환영인파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자주 그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되자 ‘혹시 김옥균과 바둑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던 중 김옥균의 대국보가 실려 있는 신문을 발견했다! 신문은 우편호치신문으로 일본의 신문바둑에 관해 소개한 글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일본에서 최초로 기보를 연재한 신문이다. 날짜는 메이지 23년(1890년) 4월 26일로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한 지 약 5년 반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김옥균의 기보를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아직 흥분은 금물. 일단 이전 자료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2005년에 출판된 안영이의 <다시 쓰는 한국 바둑사>를 보면 김옥균과 혼인보 슈에이의 대국보가 등장한다. 김옥균과 슈에이의 두터운 우정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내용이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자. 안영이 씨에 따르면 이 기보는 일본기원의 바둑잡지 <이고세카이(위기세계)> 1952년 11월호에 실린 것으로 1886년 2월 20일에 두어졌다고 한다. 김옥균은 일본 망명 중 암살의 위험 때문에 이와타 슈사쿠(岩田周作)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데, <이고세카이>에도 이와타로 기록되어 있다. 6점 접바둑이며 230수까지 두어 김옥균이 불계승을 거둔다.
또 다른 하나는 2000년에 출판된 <이승우의 바둑이야기>에 실린 기보로, 김옥균과 다카하시 키네사부로(高橋杵三郞)와 대국한 것의 필사본을 일본 바둑잡지 <기도>의 편집장을 지낸 후 바둑사 연구가로 활동중인 미즈구치 후지오(水口藤雄)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다카하시 키네사부로는 혼인보 슈와의 제자로 호엔샤에 동참하여 미즈타니 누이지(水谷縫次)’고바야시 테쓰지로(小林金喆次郞)사카이 야스지로(酒井安二郞) 등과 함께 호엔샤의 사천왕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대국은 1886년 4월 11일 동경의 호엔샤(方圓社)에서 두어졌으며 역시 6점 접바둑이고 다카하시가 10집승을 거두고 있다. 위의 대국보다 약 2개월 정도 후에 두어진 바둑인데 김옥균의 본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주목된다.
위의 두 기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은 1886년 2월과 4월이라는 대국 날짜이다. 바둑 역사서인 <좌은담총>이나 김옥균과 관련된 저서들을 살펴보면 당시 김옥균은 이미 오가사하라로 거처가 옮겨진 상태였다. 때문에 대국 장소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슈에이와의 대국은 슈에이가 김옥균과 동행해 오가사하라까지 갔었다는 설로 미루어 볼 때 오가사하라로 가는 배 위에서 두 사람이 둔 기보일 수 있으나, 같은 해 4월 호엔샤에서 대국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공부가 부족한 탓에 이런저런 의문투성이이지만, 어쨌든 이상이 지금까지 알려진 김옥균의 기보의 전부라면 이번에 발견된 기보는 그 세 번째 것이 된다. 정말 그렇다면 이건 상당한 발견이 아닌가! (혹시 이 이외에 김옥균의 기보로 알려져 있는 것이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동은 접어두고, 좀더 자세히 기사를 살펴보자.
기사의 제목은 <김옥균 씨의 바둑(圍碁)>이며 대국은 1890년 3월 16일에 두어졌으며 상대방은 역시 호엔샤의 사천왕 중 한 사람인 고바야시 테쓰지로였다. 1890년은 김옥균이 오가사하라에서 홋카이도(北海道)로 이송된 지도 2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이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거처의 이동, 홋카이도의 혹독한 날씨,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망명 생활에 지쳐서인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역시 도쿄로 돌아와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기 김옥균은 병을 핑계로 종종 도쿄를 방문하는데 대국은 그러한 도쿄 방문 중 김옥균의 거처에서 이루어졌다.
앞서의 다른 기보들과 마찬가지로 6점 접바둑이었으며 대국의 결과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또한 일반적으로 접바둑에서는 백의 착수가 홀수로 표시되는데, 그렇게 될 경우 독자들의 혼동을 우려해서인지 이 기보에서는 백의 첫수를 ‘선(先)’이라고 표시한 후 흑의 첫수를 1번으로 표시하고 있다.
당시 전문기사가 아닌 일반인의 기보가 이처럼 신문에 실린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동안 조사해 왔던 우편호치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을 보면 전문기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기보가 실린 사람은 제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등 유명인들뿐이다. 근황을 알리는 뉴스가 아니라 기보가 실린다는 것은 김옥균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그리고 그와 바둑과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옥균이 슈호와 슈에이를 화해를 성사시켰던 일화, 홋카이도에서뿐만 아니라 오가사하라에서도 바둑 보급에 여러 가지 면에서 기여하였다는 사실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훗날 혼인보 슈사이가 되는 타무라 야스히사(田村保壽)였던 시절 김옥균이 그를 많이 후원했던 증거가 슈사이 전집에 남아있다.
1890년 5월 28일, 8월 25일, 10월 8일, 10월 15일의 대국은 대국 장소가 이와타(岩田, 김옥균의 가명)의 집 혹은 그가 묵은 여관으로 기록되어 있고, 6월 20일의 대국은 김옥균이 주최한 바둑모임에서 두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 호엔샤 소속의 기사였던 타무라가 호엔샤에서 쫓겨난 후 혼인보가로 들어 오게 된 것도 김옥균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가 일본에서 교류했던 많은 정치인들이 유명한 바둑의 후원자들이었던 것도 주목된다. 당시 호엔샤의 후원자로는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郞)’이와자키 야타로(岩崎彌郞) 등이 잘 알려져 있고, 혼인보 슈에이의 후원자로는 오쿠보 토시미쯔(大久保利通)’이누카이 츠요시(犬養毅) 등이 유명한데, 김옥균은 그 양측 모두와 자주 교류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바둑 관계로 많은 활동을 했던 김옥균인 만큼 현재 발견된 것 이외에도 많은 기보가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옥균이 홋카이도에 체류 중일 당시 슈에이가 약 7개월 간 함께 생활하며 홋카이도 곳곳에서 바둑회 등을 열었으며 이에 관한 기사가 홋카이도 마이니치 신문에 종종 보도되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조사해볼 예정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김옥균이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오가사하라와 홋카이도에 가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기도 하다.
뜻밖의 발견으로 시작된 김옥균과 바둑에 관한 조사,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아 끝내기에는 서운하지만, 후일을 기약하며 여기서 일단락 지으려 한다. 대신 조금이나마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바로 김옥균의 묘지 방문. 알려진 바에 의하면 김옥균의 묘지는 총 3개가 있다.
하나는 김옥균의 고향인 충남 아산에, 또 하나는 도쿄의 아오야마 공원묘지(靑山公園墓地)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김옥균이 도쿄에서 한때 머물렀던 사찰인 진조시(眞淨寺)에 있다. 김옥균의 묘소가 이처럼 여러 곳인 것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상하이에서 암살당한 후 김옥균의 시체는 청나라에 의해 조선으로 이송되는데 일찍부터 김옥균을 죽이고자 했던 고종은 그의 시체를 마포의 양화진에서 능지처참한 후 거의 시신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효수한다. 때문의 그의 자손도, 그를 존경하던 일본인들도 그의 시체를 온전히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의복과 머리카락 등을 조금씩 구해 묘소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 중 아오야마의 김옥균 묘는 1894년 그의 지지자들이 상하이에서 김옥균의 유발 등을 수습하여 만들었던 것을 김옥균의 사후 10년째를 기려 1904년 당시 총리 대신이었던 이누카이 츠요시(犬養毅) 등의 지원으로 새로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이누카이는 앞서 슈에이의 후원자로 소개한 적이 있으며 오청원이 일본으로 유학을 올 때 정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