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카오와 야마시타는 안되는가?”이와 같은 화제는 20년 전만해도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일본바둑이 오늘 날에 와서 왜 세계무대에서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것일까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최근 벌어진 제20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일본기사 중 장쉬 9단과 요다 노리모토 9단이 8강에 올랐다. 일본이 주최하면서도 우승 맛을 못본 지 벌써 10년이 된 후지쯔배에서 일본기사 2명이 8강전에 올라간 것도 3년 만이다.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일본 3대 타이틀 보유자인 다카오 신지 9단, 야마시타 케이고 9단이 출전하여 단칼 멤버로 그쳤다는 점에서 일본 바둑팬들은 실망을 감출지 않는다.
기성, 왕좌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랭킹 1위 야마시타 9단은 후 야오위 8단에게 고배를 마셨으며 명인, 본인방 타이틀 보유자인 다카오 신지 9단은 중국의 왕 시 9단에게 져 1회전 탈락했다.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들 두 사람이 중국랭킹에 20위 이내에도 들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실제 한국 기사들 중에서도 이들을 만난다고 해서 크게 부담을 느끼는 이는 많지 않다.
패한 직후 다카오 신지 9단은 “명인, 본인방 타이틀 반납은 몰라도 우승상금이라도 반납하고 싶은 심경”이라고 말했다. 시드 배정을 받아 2회전부터 출전한 야마시타 9단도 “나 또한 기성 타이틀을 반납하는 것까지는 몰라도 우승상금이라도 반납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이 팬들의 마음의 소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랭킹 1위 기전인 기성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야마시타 9단이 2000년 제5회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을 시작으로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20승 25패. 일본 1인자라는 명함에 걸맞지 않은 성적이다. 2006년 1월 1일 이후 국제무대 성적만 따져도 4승(대 한국3승, 대만1승) 6패(대 한국2, 대중국4)를 기록 중인 야마시타 9단은 중국기사들(후야오위, 박문요, 구리 등)에게 한 번도 이겨 보지 못한 징크스를 보이고 있다.
명인, 본인방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다카오 신지 9단도 18승 19패로 그다지 내세울만한 성적은 아니다. 특히 다카오 9단이 2006년 1월 1일 이후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은 1승 8패로 그야말로 상상 밖이다. 그나마 달랑(?) 거둔 1승은 2006년 5월 제11회 LG배 본선 1회전에서 중국 신예기사인 왕 레이 5단에게 거둔 것이다.
국제기전에서 부진을 보이고 있는 일본 최강자 두 사람의 부진에 일본 바둑 팬들은 초조해 하고 있다. 일본 바둑팬들은 야마시타 9단 – 다카오 9단이 국내 최강자가 아니라 세계최강자임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일찍이 조치훈 9단 1998년 본인방 10연패를 달성했을 때 “이젠 일본 최강이 세계 최강이 아니기에 결코 기쁘지 않다”는 논지의 인터뷰를 한 것이 새삼 떠오른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일본바둑=세계최강’이라는 등식이 통했고 1등 선진국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던 일본이었다. 이런 걸 두고 격세지감이라 하는 걸까.
1등이 뒤로 밀릴 땐 거기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후발주자인 한국, 중국이 모든 정보를 오픈하고 공동연구로 일취월장할 때 일본은 체면과 형식에 구애돼 폐쇄적인 전통수업을 답습함으로써 스스로 퇴보를 거듭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만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거나.
일본바둑의 부활을 보고 싶은 건 비단 일본 바둑팬뿐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