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기사는 3월13일 경향신문에 엄민용 기자가 보도한 <알파고 깰 비책 ‘우주류’에 있다…큰 모양 짓게 하고 폭파하라>의 주요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 [경향신문] 기사원문보기 ☜ 클릭
"신의 경지’라고 얘기할 만큼 완벽하지는 않다."
이세돌 9단이 졌다. 12일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특별대국장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3국에서 이9단이 176수 만에 흑불계패를 당했다. 1·2국에 이은 3연속 불계패. 이로써 인간 대 인공지능(AI)의 승부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이번 승부는 일단 인공지능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제3국이 끝난 후 이9단은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알파고가 분명 인간과 다른 감각으로 우월함도 보였지만, 그것이 과연 바둑계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실력인지는 의문”이라고도 했다.
이9단은 자신의 패배 원인을 심리적 요소에서 찾았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심한 압박과 부담은 없었다”며 “그것을 이겨내기에 내 능력이 부족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9단은 “5번기의 승패는 갈렸지만, 이제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난 만큼 제4·5국을 지켜봐 주기 바란다”며 “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남은 두 경기가 더 정확할 수 있다”고 투지를 보였다.
그의 말대로 승부는 끝났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13일과 15일 오후 1시 같은 장소에서 이제 이세돌 9단의 도전이 펼쳐진다. 1승을 향한 도전이다.
이와 관련해 ‘우주류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세돌 9단이 기존처럼 초반부터 알파고와 맞붙어 싸우지 말고, 판 전체를 큰 모양으로 만든 뒤 적진에 뛰어들어가 수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기 전부터 “알파고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이세돌 9단이 0-5로 질 수도 있다”고 경고해 온 김찬우 6단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3국에서 알파고의 약점이 노출됐다. 하변에서 이9단이 패를 만들면서 수를 낸 것이 승리의 희망을 갖게 하는 부분”이라며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딥마인드 측에 따르면 ‘알파고’는 형제다. 단일형과 분산형이 있다. 지금까지 이9단과 대국한 분산형이 좀 센 ‘녀석’이다. 하지만 분산형도 단일형에게 7 대 3 정도의 승률을 보인다. 결국 분산형에도 약점이 있다는 소리이고, 아직 풀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김찬우 6단은 해법을 일본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의 ‘우주류’에서 찾았다. 실제로 프로기사 사이에서도 바둑판의 중앙은 ‘미지의 세계’로 분류된다. 중앙은 다시 말해 넓은 공간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바둑은 돌과 돌이 부딪치는 대목에서는 많은 부분이 계량화되고 최적의 착점이 확인됐지만, 넓은 공간은 여전히 미지수이고, 알파고 또한 이 부분에는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6단의 논리다.
제3국에서 사람(프로 고수)이라면 쉽게 수를 내주지 않을 하변에서 알파고는 패를 허용했다. 이9단의 타개 실력이 뛰어난 때문도 있지만, 알파고가 문제점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다. 제3국에서 초반에 워낙 망한 것이 문제였지, 그때까지 국면이 조금 뒤져 있었다면 그 한방으로 단번에 역전시킬 수도 있었다. 팽팽한 국면에서는 패로 조금의 이익만 취해도 충분하다.
따라서 한 수 한 수를 둘 때마다 ‘최고의 승률을 보이는 안정적인 착점’을 하는 알파고를 상대로 초반부터 힘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서로 큰 모양을 짓되 상대가 이9단보다 좀 더 넓은 공간(그래야 이기므로 알파고는 당연히 이9단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려 할 것임)을 갖게 한 후 3국처럼 뛰어들어 수를 냄으로써 적진을 폭파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게 김6단의 전략이다.
그는 “알파고가 자꾸 이기니까 수읽기가 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수읽기가 강한 것은 아니다. 3국 하변 전투에서 그것이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이세돌 9단은 비록 승부에서는 졌지만 1승이라도 건지겠다면 제4·5국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이제 마음의 부담을 던 그가 과연 어떤 전략으로 알파고를 공략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