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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랭킹 2위 이세돌 9단과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이 벌일 세기의 승부 제2회 몽백합배의 결승5번기 1국을 하루 앞둔 29일, 후원사 헝캉가구회사 니장건 회장 주최로 중국 난퉁시 진스(金石) 호텔에서 만찬이 열렸다. 녜웨이핑 9단, 왕루난 중국기원 주석, 화쉐밍 중국 국가대표팀 총매니저, 창하오 9단 등을 비롯해 중국 바둑계 인사 200명 가량을 초청한 큰 규모의 행사였다.

기자회견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세돌 9단에게 물어봤다.

- 최근 커제 9단의 도발적 발언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도발이 아니고…. 음…”

- 커제를 의식하게 되나?
“아무래도… 잘 두니까…”

- 결승 첫 대국을 하루 앞 둔 심경은 어떤가?
“뭐라 말하기 어렵다. 일단 한 판 둬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세돌은 28일 현지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다 저녁 때 이창호 9단의 동생 이영호 씨와 한정식을 먹었다. 29일 만찬에 나온 이세돌의 표정은 밝았고 가끔 테이블 위의 물체를 응시했다.

▲ 왁자지껄한 만찬장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이세돌.

▲ "앗, 사이버오로와 인터뷰를요?" (커제)...

커제 9단에게도 물었다.
- 내일의 결승1국에 어떤 각오로 임하나?
“지금은 나도 어떤 심리 상태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커제는 만찬에 참석해서 계속 시선을 바꾸며 두리번거렸으며 중국 바둑계 인사들이 악수를 청해오면 반가운 얼굴로 같이 인사했다).

- 긴장이 되는가?
“(즉답을 피하려는 듯) 식사를 계속하고 싶다.”

회전테이블을 돌리면 순서대로 나오는 중국요리를 맛보는 이 만찬은 저녁 8시(한국시각) 시작해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한국시각 30일 오전 10시30분 제2회 Mlily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5번기 1국이 중국 난퉁시 진스호텔 특별대국실에서 열린다. 오로대국실에서 최철한 9단이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시원한 해설을 준비하고 있다. 점심시간은 한국시각(1시~2시). 제한시간은 2시간55분에 초읽기 60초 5회를 준다.

■ 냉정하게 말하면 '이세돌 불리', 그러나 승부사 이세돌이라면!
“이렇게 도발적인 후배는 만난 적이 없다. 그런 게 오히려 이세돌 9단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있다. 독기를 품은 이세돌 9단이 뭔가 보여줄 것이다. 비록 연패하고 있지만 이번 몽백합배 결승이 기대된다.” 한국 국가대표팀 코치이자 연구생 사범 홍민표 9단의 말이다.

상대가 중국 바둑계의 핫 아이콘 커제라서 더욱 뜨거운 관심이 쏠린다. 커제는 현존 유일한 세계대회 2관왕(백령배·삼성화재배)이다. 실력도 실력인 데다 언행도 거침없어 세계바둑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입단 7년 만인 올해 처음으로 이세돌과 겨뤄본 커제는 삼성화재배 4강 3번기에서 이세돌을 2-0으로 이겼고, 단체전인 금용성배 순위결정전에서 승리를 추가해 현재 상대전적 3승 무패로 앞서나가고 있다.

반외신경전은 커제에게서 시작됐다. 몽백합배 결승을 앞두고 이세돌은 5대5 승부라고 했는데 커제는 이를 두고 이세돌 9단이 자신을 이길 가능성은 50%가 아닌 5%라고 해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커제는 자신의 발언을 뒤집기를 여러 차례 하고 있다. 요컨대 ‘자신이 낫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나이 어린 기사라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홍민표 9단은 “지금까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자신이 우세하다고 전망한 기사조차 없었다. 작년 10번기 때만 해도 구리 9단과는 서로를 높이 평가하고 추어올리는 분위기였지 않은가. 그런데 커제 9단은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일을 처음 당해보는 이세돌 9단으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승부욕이 끌어 오를 것이다.”라고 말한다.

▲ 이세돌은 한국랭킹 1위가 아닌 2위지만, 1위 박정환이 이세돌을 잘 꺾지 못한다.

▲ 최명훈 코치(오른쪽)가 이세돌과 만나 가벼운 얘기들을 나누면서 큰 승부에 대한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중국의 반응이 아주 뜨거운 것은 이세돌 때문이기도 하다. 2013년 후반부터 2014년 초반까지 이세돌 위기설이 나돌았다. 쉬운 사활을 착각하며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란 얘기마저 나돌았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이내 쏙 들어갔다. 2014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10번기에서 우승하면서 컨디션을 완연히 되찾았다. 중국이 인정하는 구리를 돌려세웠고 라이벌을 제압한 것이었다. 2014년 연말에 렛츠런파크배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초반엔 TV아시아선수권 우승을 했다. 2015 삼성화재배에선 4강에 오른 유일한 한국선수였다. 그리고 지금 몽백합배 결승에도 올라와 있다. 이세돌이 커제를 약간 의식할 수는 있어도 컨디션이 염려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몽백합배 결승1국 오로대국실 해설을 맡은 최철한 9단은 “나도 30대다. 같은 30대로서 이세돌 9단이 30대의 힘을 10대 커제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세돌 9단이 45대55 정도로 불리한 번기 승부다. 무엇보다도 연패를 끊어내고 첫승을 거두는 게 당면 과제겠다. 최대한 까다로운 수로 멘탈을 꺾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유창혁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세돌 9단이 이번 결승전을 앞두고 준비를 많이 했다. 이번에야말로 승부사 기질을 살린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다.”라고 낙관했다.

박정상 국가대표팀 코치 겸 연구생 사범도 “이세돌 9단의 승부 기질이 발휘될 시점.”이라며 “몰렸을 때 괴력을 발휘하는 신비함이 있다.”고 했다. 또 “커제 9단은 보통 중국 기사들과 달리 조금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철저히 괴롭혀서 크게 이기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감각이 좋지만 정상권 기사들에게 수읽기 격차는 서로 크지 않다. 또 기풍상 난점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기에 자신감 싸움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허영호 9단 역시 현재로선 커제 9단이 좀 더 우세하다고 말하면서 “세돌이 형이 예전처럼 두지 않고 최근엔 포석을 무난하게 짜려고 한다. 이게 좋다고 보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전처럼 자신이 두고 싶은 데 두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 편이 더 승산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 백번에 특히 강한 커제?
중국기원의 기준에 따른 공식기록으로 커제의 성적은 29일 기준 57승15패(승률 79.17%)다. 백번일 때 34전 전승(승률 100%), 흑번 23승15패(60.53%).

백번일 때는 신비할 정도로 승률이 좋고 흑을 들었을 땐 그저 평범한 기사다. 커제 역시 이 점을 강하게 느꼈는지 현행 덤 제도에 대한 의문마저 품고 있다. 중국식 덤인 7집반은 백에게 아주 유리하며 한국·일본식인 6집반도 다소 백이 유리하다는 지론을 편다.

▲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를 커제.

▲ 최철한은 커제(사진)를 일컬어 현대바둑이 추구하는 걸 모두 갖춘 기사라고 평가한다. 즉 발이 빠르고, 감각이 좋으며 실전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허영호 9단은 “백번 승률을 따져보는 것은 프로기사에게 본질적이진 않다. 프로기사는 저마다의 주기가 있다. 백번이 잘 풀리는 해가 있고 흑번이 잘 풀리는 해가 있다. 커제 9단이 백번 승률이 좋다면 그저 2015년이 그런 그래프의 지점을 지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커제가 예전부터 이렇게 백번 승률이 흑번 승률에 비해 지나치게 좋았던 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번기승부에선 흑백이 번갈아 나타난다 (1국과 5국은 돌을 가린다). 이세돌로선 타이틀 획득을 위해서라면 흑이든 백이든 이겨야 한다.

30일 중국 난퉁시(상하이에서 승용차로 2시간 가량 가는 거리에 있다)에서 제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결승5번기 1국이 열린다. 31일은 2국으로 이어지며,하루를 쉬고 1월2일에 3국, 또 하루를 쉬고 4일 4국, 5일 5국이 치러진다. 긴 일정이다. 1국과 2국은 난퉁시 진스 호텔에서, 3국~5국은 장소를 이동해 루가오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제2회 몽백합배의 덤은 7집반. 우승상금은 180만 위안(약 3억2,000만원), 준우승상금은 60만 위안(약 1억600만원)이다. [단독취재 | 난퉁시=김수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