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메이필드 호텔.
이세돌 9단에게 이 장소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6년 전 여름 메이필드 호텔에서 열린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이세돌 9단은 눈시울을 붉혔다.
“한국에서 마지막 대국이 될 것 같습니다.”
휴직을 앞두고 있던 이세돌은 무겁게 말을 맺었다. 아픈 기억이 박혀 있는 곳이다.
세월이 흐르고 2015년, 같은 장소에서 이세돌은 꽃다발과 트로피를 가슴에 안고 활짝 웃었다. 그의 나이 서른 둘. 제27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한국랭킹 1위의 후배 박정환을 꺾고 대회2연패를 달성했다. 바로 이곳에서.
이세돌에게 아픈 기억은 기쁜 추억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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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회식 무대에 선 이세돌.
-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통산 4회, 최다 우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소감은?
“2009년이 많이 기억난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이번 우승을 기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쁨이) 남다르다.”
- 역시 속기에 강한 것 같다.
“1분 초읽기보단 30초 초읽기에 더 자신 있다. 1분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좋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질 못한다. 농심신라면배도 1분,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도 1분… (하하) 초속기는 감각에 의존해야 하는데 상대나 나나 같은 조건이 된다.”
- ‘선택과 집중’을 하나?
“건방져 보일 수 있는데, 솔직히 말해 어릴 때는 더 치중하는 기전이 있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전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10번기도 그렇고…”
- 공부량은 어느 정도?
“공부가 뭔지 잊어 버렸다. (하하) 스마트폰으로 기보를 살펴보는 걸 말하는 거라면 하고 있다. 어릴 때는 바둑판이 늘 머릿속에 들어 있었는데, 지금은 편안하게 승부에 임하게 됐달까. 바둑도 나이가 들면서 부드러워졌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패하고 쓴 맛을 보면 그걸 잘 안하게 된다. 경험이 쌓인다는 건 그런 것인가 보다.”
- 새로운 수법에 대한 대비가 어려울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초반에 고전한다. 나는 업데이트가 돼 있지 않다. 상대가 새로운 수법을 들고 나오면 ‘아, 다 연구돼 있나 보다’ 생각이 들면서 긴장하게 된다. 이럴 땐 그냥 실전에서 해결한다. 막상 아주 큰 차이는 아니다.”
- 실전이 최고의 공부라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 실전이 최고의 공부다.”
- 박정환 9단이나 김지석 9단을 보면 사활 문제를 부지런히 풀고 있다.
“그들이 워낙 사활 풀기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초일류 기사들에게 사활 풀기는 주된 공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활문제는 종류, 난이도를 막론하고 실전에서 응용하기 어렵다. 그보단 초반 수법 연구가 공부다. 이런 얘기들은 정상급 기사들에 관한 것이다.”
- 10번기 한 번 더하라고 하면?
“마땅한 상대가 없다. 저랑 연배가 맞는 기사도 별로 안 보이고… 구리 9단을 보면 정말 절묘하게 맞수다. 전적도 5대5, 나이도 동갑. 또, 중국의 최근 정상급 기사 중에 구리 9단만큼 세계대회 우승 횟수가 많은 사람도 없다.”
- 나이에 대한 부담은?
“서른 넘으면 사람은 급속하게 노화가 된다고 한다. 나도 그런 걸까. 경험은 쌓여서 좋은데 번뜩이는 수는 좀 더 어린 기사들한테서 나오는 것 같다. 2010년 이후 내 기풍은 변하고 있는 듯하다. 부드러워졌다. 가령 어떤 변화에서 5대5의 승산이 있는 전투가 나오면 무조건 실행했는데 지금은 타협할 생각부터 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난해엔 10번기에서 우승했는데 그 의미를 잃지 않도록 이번 TV바둑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세계대회 우승을 쌓아가고 싶다. 또 마흔 이전에 조로하지 않겠다.”
▲ 준우승자 박정환 “결과를 떠나서 좋은 내용을 두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개인적으로 유감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다음에 이세돌 사범님과 다시 결승에서 겨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왼쪽부터), 중국기원 왕레이 단장, 우승자 이세돌, 준우승자 박정환, NHK 다나미 히로시 단장, KBS 스포츠국 배재성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