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도 세리머니를 하자는 아이디어는 아주 오래 전에 나왔다. 10년 전에도 얘기가 있었으니까.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질주하고 관중석에서 응원가가 울려퍼지는 축구에선 골을 넣은 기쁨을 격렬하게 표현하는 게 또다른 재미다. 동적인 스포츠에서는 흔히 접하는 광경이다. 그렇지만 바둑에서만큼은 금물로 취급되었다. 대국을 기록하는 기록자조차 조용히 침을 꼴깍 삼켜야하는 분위기를 유지해야 했고, 예를 중시하는 관례에 따라 대국을 마쳐도 승자는 패자를 배려해 웃음기조차 참아내는 게 대국장 풍경이었다. 당연히 바둑에서 세리머니를 한다는 건 어림도 없는 얘기로 치부됐다.
조심스럽게 누군가가 선수에게 “이기고 나면 세리머니를 해보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어보면 선수는 “진 선수를 생각한다면 세리머니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걸 지켜보던 사람들은 “역시…”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바둑계 또한 많은 게 바뀌고 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뒤따르는 건 한순간이다.
22-23 시즌으로 들어서면서 엄청난 변신을 보이고 있는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가 해외팀 참여, 피셔 방식 등의 도입과 더불어 굉장히 눈에 띄는 것 하나를 시도하고 있으니, 바로 세리머니다.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원래 발랄한 선수들은 멍석을 깔아주니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의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주고 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생각한 선수들조차 ‘저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과감한 동작을 선보인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랑하는 바둑팬들로서는 즐거움 두 배다. 바둑내용에 더한 외적인 즐거움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흐를 때 맞이하는 망외의 장면 같은 것이다.
KB바둑리그 주관방송의 바둑TV는 아예 ‘월간세리머니’ 상을 만들어 선수들의 의욕을 부추기고 나섰다. 팬 투표를 실시해 2월1일엔 순위를 발표했다(입상자에겐 상금도 돌아간다). 앞으로 바둑팬들에게 ‘관전하는 재미’와 더불어 ‘누가 세리머니 1위를 달성할지’를 맞히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