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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대 기사회장 양건(41) 9단.

프로기사회장은 프로기사들의 뜻을 대변하고 기사들의 권익을 보호한다. 프로기사회는 친목단체다. 그렇지만 한국바둑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므로 때로 혹은 종종 역할과 권리를 강조해 이익집단이나 압력단체라고도 할 수 있다. 프로기사가 아닌 사람은 얼핏 기사회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이게 그렇지 않다. 프로기사들이 한국바둑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갖는 생각은 한국기원의 최종 의결기구인 한국기원 이사회에 반영된다. 따라서 기사회를 대표하는 기사회장이란 자리는 묵직할 수밖에 없다.

1월20일 양건(41) 9단이 제32대 기사회장에 당선됐다. 노영하(65) 9단과 조대현(57) 9단 등 선배 경쟁자를 제쳤다. 만18세 이상의 프로기사가 투표권을 행사했다. 양건 9단이 106표를 받아 반수를 넘겨 결선을 거치지 않고 당선이 확정됐다.

양건 9단의 회장출마는 이번이 세 번째였다. 제29기 첫 출마땐 최규병 9단에게, 제31기 땐 김효정 2단에게 밀렸다. 양건 9단은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려왔다. 다소 엉뚱하고 어눌한 듯한 화법을 구사하다가 한국바둑계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면 전사 같은 모습으로 돌변해, 그에게 기대를 거는 프로기사가 늘어갔다. 하지만 두 번의 낙선을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듯했다.

삼수에 성공한 양건 9단은 기사회가 있던 날 경황이 없어서인지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해서 며칠 뒤에 따로 시간을 잡았다.

▲ 제32대 기사회장를 뽑는 선거가 진행됐다. [사진제공 | 월간바둑 이시용 사진기자]

▲ 개표를 지켜보는 기사들.[사진제공 | 월간바둑 이시용 사진기자]

- 세번 도전 만에 프로기사 회장에 당선됐다. 축하 많이 받았겠다.
“많이들 축하해 주셨다. 윤성현 9단이 ‘은퇴는 막았네. 삼수에 실패해서 죽겠다고 그러면 어쩌나 했다’ 그러더라.”

- 어떤 생각에서 프로기사 회장에 거듭 출마했나?
“첫 출마가 2009년이었다. 그 전까지는 기사회장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세돌 9단 휴직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프로기사들이 ‘이세돌 9단에게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는가’를 놓고 표결에 부쳤다. 이 표결은 향후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토대가 될 것이었다. 기사들의 여론을 묻는 행위로서, 기사가 기사를 향해 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기사회에서 이런 일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수년간 대의원을 하면서 여러 안건도 제출해 보고 했지만 기사회장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다.”

- 그때와 공약은 많이 달라졌나?
“당시 내건 공약은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통합, 국가대표팀 상비군·육성군 창설, 전국체전 바둑 정식종목 입성, 기전의 구단제로의 이행 같은 것들이었다. 한국기원은 대한바둑협회와 잦은 불화 탓에 힘있게 움직이지 못하는 게 보였고, 당시 중국 쿵제 9단이 세계대회를 휩쓰는 바람에 한국바둑이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출마 땐 ‘구단제’에 강조점을 뒀다.”

- 양건 9단은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어떤 사람은 좌파의 우두머리라고 하더라. 바둑계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다들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다. 내가 말한 주장들이 받아들여진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것들이 많이 이뤄졌다.
냉정히 바둑계는 브이(V)자 반등을 하고 있는 시점 아닐까 싶다. 2년 전 홍석현 총재께서 부임한 이래 활기를 찾았다. 하지만 바둑TV 인수하는 과정은 좀 과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반기업이 하는 것보다는 한국기원이 하는게 나아 보이긴 한다. 더 열심히 할 테니.”

-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심경은 어땠나?
“선거에만 나오면 지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 선거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를 뽑아달라고 전화도 하고 문자 메시지도 주고 중요한 행사에도 찾아가고 하는 게 보통일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선거 체질이 아닌 탓인지 잘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 되려는 사람이 이렇게 했다면 미쳤단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지만 ‘공부는 평소에 하는 것이다’라는 원칙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주니어 남자기사들은 내가 연락하면 바둑연구들 하느라 바빠서 그런지 귀찮아하는 게 느껴진다 ^^;;. 프로기사가 된 지 20년이 넘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주장을 하는지 프로기사들은 안다. 그렇더라도 선배님들이나 여자기사들은 (선거운동 때 인사를 하지 않아) 좀 섭섭해 할 것 같긴 하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전화통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이다.”

- 다소 뒤늦긴 했지만, 프로기사 회장이 된 소감은?
“작년엔 연구생 수석사범을 하면서 프로지망생을 가르치는 일도 나한테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다른 걸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생 수석사범과 프로기사회장은 겸직할 수 없다. 작년 말 연구생 수석사범을 관둔 것은 출마에 대한 생각과 연관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교육 쪽에) 여지를 두고 있었다. 친한 기사들은 출마 여부를 고민 중이라는 내 말에 ‘무슨 얘기냐? 당연히 출마해야지’라는 반응이었다. 망설이다 선거 2주 전에 마음을 굳혔다. 곡절 끝에 어렵게 프로기사회장이 됐다. 프로기사들와 바둑계를 위해 몸을 바치겠다.”

▲ 당선 소감을 말하고 있는 양건 기사회장. [사진제공 | 월간바둑 이시용 사진기자]

- 공약을 소개해 보면?
“공약문을 손글씨로 썼다. 아날로그 식이다. 70장 쓰고 멈췄다. 프로기사에게 프로기사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프로기사는 경기를 하려고 존재한다. 대국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프로기사가 많다. ‘프로’엔 선수의 의미가 담겼다. ‘기사’엔 선비 사(士)가 들어 있다. 흔히 프로기사를 ‘사범이라 부른다. 호칭 그대로 ‘선생님’의 개념이다. 엄격한 가르침 속에 프로기사 됐기에 다른 이를 가르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돼 있다. 즉 ‘프로+교육’이 결합된 말이 프로기사다. 프로기사 교육에 관해서는 한국기원과 협력해 열심히 뛰고자 한다.”

- 그럼 나머지 ‘경기’ 분야에 대한 얘기도 해보자.
“과거, 바둑대회가 나아가야 할 흐름이 ‘개인전·토너먼트·상금제’로 압축된 시절이 있었다. 내 지론은 ‘단체전·리그전·구단제’였다. 지금까지 차별화 되지 않고 그게 그거 같아 보이던 국내바둑대회는 뚜렷한 색을 갖는 이벤트 대회로 변모하거나 (한국물가정보배처럼 바둑리그 같은) 단체전의 팀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대회 방식의 방향은 ‘세계기전·바둑리그·이벤트’중심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구단제를 공약하고 얘기도 꺼냈는데 실현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시원하게 말해 줄 수 없다. 기사회장은 의견을 제시하고 협력하지만 의사결정에 관해,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프로기사 자격으로 2007년에 한국바둑리그를 구단제로 시행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 본 적이 있다. 만장일치로 기사들의 동의를 얻었다. 나중에 추진위원회도 만들어지고 태국 행사에까지 따라가서 스폰서에 대한 설득작업도 벌였다. 그런데 결국 실패했다. 한국기원과 구(舊) 바둑TV는 소수를 제외하고 구단제로 이행하는 데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추구한다고 했다. 왜 구단제인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스포츠들이 구단제를 취한다. 최고의 시스템임을 증명한다. 그쪽으로 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0년간 떠들어 왔다. ‘우리의 소원은 구단제’라는 가락이 흥얼거려질 듯하다.
바둑계를 보자. 시청률이나 뉴스 조회수를 보면, 이세돌·이창호 얘기를 다룰 때 인기가 있다. 하지만 나머지 기사들은 어떠한가. 지금의 바둑리그는 어느 기사가 어느 팀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구단제가 되면 팀의 선수 구성이 어떻게 될지, 어떤 선수가 몸값이 어찌 될지 팬들도 관심을 갖게 된다. 팀마다 재미있는 스토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여러 군데로 향할 것이다. 지금은 랭킹 30몇위 40몇위가 맞붙는다고 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겠나 싶다. 바둑TV도 새단장을 했으니 구단제 추진이 좀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 때가 무르익었다.“

-아까 말한 프로기사의 정체성 확립에 대해 좀더 말해 보자면?
“경기가 필요하다. 여자기사와 시니어기사는 문제가 해결돼 가고 있다. 여자바둑리그가 생기면서 불과 2년 만에 여자기사는 거의 모든 기사가 무대에서 뛸 수 있게 됐다. 시니어바둑리그도 생긴다. 50세 이상이 출전하고 팀도 8개 이상 참가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한국기원이 역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해 준 적이 있나 싶다.
그러나 바둑리그에 참여하지 않는 20~40대 기사들이 100명 가량 된다. 그들은 작년 기준 7개 기전에서 뛰었다. 기량이 안 되니까 순위에서 밀리는 게 자연의 섭리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마기사들의 내셔널바둑리그를 보라. 그들은 훨씬 더 많은 판수를 보장받고 대국료를 받으며 대국한다. 사실 난 왜들 입단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을 정도다. 구조가 잘못됐다. 프로기사 꼬리표를 차라리 떼고 싶다는 기사들이 생기는 마당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1부리그인 한국바둑리그, 2부리그인 퓨처스리그에 이어 3부리그도 운영해야 한다. 예선도 길게 하자. 일년 농사인데 충분한 판수가 필요하다. 내셔널바둑리그 우수 성적자에게 입단 티오를 주어 3부리그에 들어오게 하자. 이렇게 하여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고리가 있게 하자.”

-3부리그에도 못 들어가면?
“영국·독일을 보라 1부, 2부, 3부 내려가다가 나중엔 프로인지 아마인지 경계가 무너진다. ‘직업’을 가지면서 경기도 한다.”

- 기사회장 되고 나서 며칠간 어떻게 지냈나?
“당선되고서 바빴다. 운영위원회가 참가하고 한국바둑의 전설 개막식에도 참석했다. 양재호 사무총장님 부친상에도 기사회장 자격으로 다녀왔다. 내몸이 내몸이 아니구나 실감했다. 일상에서 말할 때에도 기사회장의 말이 되어버리니 조심스럽다. 예전에는 밤에 잠들면 쭈욱 잤는데 요즘은 생각이 많아져서 중간에 깬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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