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깨와 가슴에 자랑스런 태극마크를 달고 바둑을 연구하고 있는 국가대표•상비군. 그들 뒤쪽에 유창혁 감독이 서 있다.
얼마 전 상비군 신진서 2단은 인터넷 바둑을 이기고서 유창혁 국가대표•상비군 감독한테서 꾸지람을 들었다.
신진서는 중국의 정상급 기사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대국했는데 초반에 상대 대마를 몰살시키고 판을 결정지었다. 신형이 나왔는데 상대는 이 변화의 결과를 잘 몰랐는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새로운 모양이 나오더라도 처음 보는 쪽에서도 임기응변한다면 그럭저럭 한판의 바둑으로 되돌아가고 다시 승부가 될 수 있는 법이지만 이 경우는 중국 상대가 워낙 망해서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지경으로 갔다. 화끈한 승리였다. 신진서가 쓴 수법은 국가대표•상비군들이 연구했던 내용 중 하나였다.
신진서는 승리에 기분이 좋아져서 이런 일이 있었음을 동료 상비군들에게 말했다. 사실 국가대표•상비군은 연구 내용을 외부에 유출하지 못하도록 내부 규정을 가지고 있다. 신진서는 이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유 감독은 그래서 신진서에게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실전에 사용된 바둑 모양만 보고도 경쟁 국가 중국은 금세 관련된 연구를 해 결론까지 낼 것이다. 유 감독의 고민은 이런 데 있었다. 이 사건 뒤 국가대표•상비군 29명은 더 조심하게 됐다.
국가대표•상비군은 전체 연구회를 열기도 하고 몇 팀으로 나뉘어 연구회를 열기도 한다. 연구된 내용은 여자 국가대표 조혜연 9단이 취합해 정리한다. 바둑의 기술적 부분에 관한 고급 정보는 조혜연이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기원 편집부장은 조혜연이 가진 연구 변화 중 아마추어 바둑팬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정리해 월간 ‘바둑’ 8월호부터 연재한다. 물론 전력 노출이 될 만큼 무게감 있는 내용은 싣지 않는다.
중국도 연구가 활발하니 우리가 독자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신진서가 앞에 증명한 바와 같이 중국이 몰라서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 변화를 세계대회에서 썼더라면 주요 길목에서 1승이 될 수 있었지 않겠나. 국가 간 바둑 경쟁이 더 깊어가는 터에 중국기사를 상대로 한 1승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철저한 비밀 유지는 국가대표•상비군이 갖춰야 할 덕목이 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전력 노출을 막기 위한 비밀 유지 노력을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 성과를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는다. 이는 중국이 여유를 부리고 있다기보다는 중국인의 성향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바둑의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 중 일 삼국의 연구 경쟁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전력을 노출시키지 않는 방침은 우리 국가대표•상비군뿐 아니라 가까운 미래엔 중국과 일본도 세우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우리나라 국가대표•상비군 코칭스태프의 고민은 여전히 있다. 국내기전에서마저 국가대표•상비군이 연구회를 통해 얻은 변화를 쓰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국가대표들과 상비군들은 연구회 때 각자의 생각을 감추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