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기사들의 잇단 참패, 과연 실력만의 문제일까?

대국사진으로 본 한 중견기사의 견해
▲ 세계 최초의 신예 세계대회 2014 이민배 세계신예바둑최강전에서 본선 티켓을 따낸 주인공들. 모두 중국이다. 양딩신(왼쪽부터), 샤천쿤, 커제, 타오신란, 퉁멍청, 천하오까지. 한국은 없다. (사진=중국시나바둑)
2014-05-15 오후 5:59
어쩌면 뜬금없는 이야기

이건 듣는 이에 따라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 그런 시각이자 지적질(?)일 수 있다. 요즘이 어떤 세태인데, 요즘 세대에게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그러니까 ‘꼰대’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는 반박을 살 수도 있는 뒷얘기이다. 아래 ‘문용직의 바둑산책’ 기사가 올랐기에 사족처럼 덧붙여 보는 ‘뜬금없는 기자수첩’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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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바둑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이치리키 료의 매서운 눈빛. 글로비스배 우승자의 눈빛이다.

4월30일부터 5월3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2014 이민배 세계신예바둑최강전에서 우리나라의 촉망받는 신예기사들이 단 한명도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이민배는 프로는 1994년 이후, 연구생은 1997년 이후 출생 기사들만 모여 겨루는 신예들만의 세계오픈대회다. 지금까지 한중일 3국, 혹은 두 나라 간 신예대회나 교류전은 많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작심하고 이런 ‘청소년 월드컵’ 같은 세계오픈대회를 연 건 처음이라 관심이 갔다.

무엇보다 각국의 정상들이 참가하는 각종 오픈대회에서 근래 한국은 중국에 완전히 밀리는 양상을 보였기에 차세대 유망주들의 정도는 어떠한가, 계체하고 가늠해볼만한 대회인지라 더욱 눈길이 쏠렸다. 그런데 한국은 26명(프로 19명, 아마추어 7명)이 출전해 6명을 가리는 본선에 단 한명도 오르지 못했다.

이어 닷새 뒤 일본에서 만20세 미만 신예들이 경쟁하는 제1회 글로비스배 세계바둑U-20이라는 대회를 열었다. 이민배보다 나이제한이 더 낮은 대회다. 이 대회에서도 한국은 3명의 선수(나현, 신진서, 최정)이 참가했지만 단 한명 4강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이 대회는 제한시간이 매수 30초에 둬야 하는(도중 1분씩 10회를 생각할 수 있는 고려시간을 주는) 속기전이라지만, 예상을 뒤엎고 일본선수 둘, 이치리키 료(一力遼ㆍ17, 우승)와 쉬자위안(許家元ㆍ17, 준우승)이 4강에서 나란히 중국선수를 꺾고 결승전을 올라 놀라움을 안겼다. 국제무대에서 부진한 일본은 어느새 거의 대만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던 터였다. 한국이나 중국기사들은 일본기사를 만나면 표정관리를 하곤 했다. ‘꽃조’를 만났다고 생각했고, 실제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이겨 왔다. 그랬으니 글로비스배에서 보인 일본 신예기사들의 ‘기염’이 어찌 놀라운 ‘반란’이 아니겠는가.

장수가 전투에서 지고 이기기를 번갈아 하는 건 항용 있는 일이다. 이길 때도 있으면 질 때도 있는 것이며, 이번처럼 내리 참패를 겪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형님들에 이어 아우들까지 국제무대에서 영 시원치 않은 행마를 보이고 있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진정 실력이 모자란 것일까. 실력이 모자라 그렇다면야 온갖 이유가 다 핑계일 터이다. 한 중견기사가 사이버오로 뉴스에 실린 우리 신예들의 대국사진을 보면서 사자후를 터뜨리듯 일갈한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승부에 임하는 자세의 문제다!”`




▲ 손이 가요~ 손이 가~ 돌통에 손이가~

위 두 장의 대국사진에서 바둑판을 보면 돌이 몇 개 놓이지 않았다. 포석단계인데 한 선수는 바둑통에 돌을 쥔 상태이고 상대편은 꼿꼿이 허리를 편 채 바둑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자세다. 어느 쪽이 우리 선수들일까. 초반부터 상체를 다소 낮추고 한 손으로 턱을 괴는 모습, 어느 쪽이 자주 보였을까. 초조하면, 승부에 조급할 때, 혹은 상대를 경시할 때 무의식중 이런 자세를 취한다. 중반 이후 돌과 돌이 엮이고 수읽기에 골몰할 때 이런 자세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과 자세가 필요할 때(그런 관점으로 바둑을 대해야 더 멀리, 넓게 승부에 임할 수 있다고 생각하건만) 우리 선수들은 흐트러진 몸짓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자세가 이미 가장 편해져 버린 까닭이다. 사소한 문제인가.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에 치우친 지적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사소하고 개인적인 의견도 있다고 받아들여 주시길.

중견기사는 자신의 견해를 실명으로 써도 좋다고까지 했다. 어쩌면, 순전히 세대차에 따른 시각차일 수도 있겠지만, 후배기사들이 한번쯤 되짚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릴 적부터 바둑교실에서 도장에서 오직 승부만을 우선순위에 놓고 매진해왔기에 부지불식간 배인 습성, 습관 같은 것이 보인다고 했다. 화석처럼, 오랜 시간 시나브로, 모르는 새 굳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테크닉이 고수의 궤도에 오르면 그때부터 종이 한 장 차의 실력을 가르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라고 볼 때, 대국자세-바둑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는 승부와 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 ‘목숨을 걸고 둔다’던 조치훈 9단, 그의 휠체어대국 사례 하나만으로도 그러한 ‘치열함과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지금 우리 신예기사들은 실력이 중국 애들만 못해서 지는 게 아니다. 그들에 비해 ‘자세’에서 뒤지고 있다는 게 중견기사의 얘기다. 1년 전부터 국가대표팀을 꾸려 재기를 꾀하고 있는 일본국가대표팀, 그 중에서도 자기들의 어깨에 일본바둑의 명운이 달렸다고 생각하고 죽기살기로 덤벼들고 있는 일본신예들의 각오가 글로비스배에서의 성적으로 잠시 보인 것이다.



이 사진, 한쪽은 정장이고 한쪽은 점퍼에 운동화 차림이다. 새삼 복장 문제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운동화를 신은 한 선수의 발과 손의 위치를 본다. 초반이다. 초반부터 달달 발을 떠는 형상이 보이는 듯하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승부관, 인식은 그랬던 것 같다. 모로 가도 서울을 일등으로만 가면 되는 것이고, 일등에게 그 어떤 토를 달 수 있겠느냐고. 그래서 분명 미덕이 아닌 것인데도 후학들이 그것을 미덕으로 알고 자연스레 수용한고 답습한 것, 한두 개만은 아니다. 그러한 인식의 발로를 한 장의 대국사진에서 보는 건 아닐까. 정말로 뜬금없는 얘기라고? 그렇다 쳐도 ‘아니면 말고’ 식의 하나마한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