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부터 중국 바둑국가대표 남자팀을 맡고 있는 샤오웨이강 감독.
세계대회인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의 결승엔 중국의 젊은 기사 2명이 올랐다.
그 직전 4강전은 중국기사 4명이 독식했고, 8강전은 독식은 아니었지만 중국 6명ㆍ일본 2명의 중-일대결 구도였다. 한국은 16강전에서 전멸했다. 한국은 중국이 주최하는 세계대회 몽백합배에서도 16강 전멸의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열린 다섯 차례의 세계대회(개인전) 중 한국은 한 번도 우승자를 내지 못했다. 이 중 네개를 중국이 삼켰고 한 개는 일본 차지였다.
중국을 한국과 세계바둑의 패권을 다투는 국가라 부르기 어색해졌을 정도의 차이를 보인 해다. 중국은 이제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상대가 됐다는 데 그리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중국의 ‘공동연구’는 중국을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려 세운 원동력 가운데 으뜸일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는 예전,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일본바둑을 따라잡을 때 특효를 보았던 바로 그 비법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국도 일본도 이를 따라 국가대표상비군체제를 서둘러 꾸리고 정상급 기사와 신예기사가 같이 머리를 맞대는 연구 풍토를 조성했다.
▲ 지난 6월 LG배 16강전에서 한국이 전멸했다. 8강에 진출한 중국과 일본기사들이 8강대진 추첨을 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공동연구의 차이
한국도 1990년대 중반의 충암연구회를 비롯해 공동연구가 없지 않았지만 형태는 중국과 좀 달랐다. 한국의 경우는 강제성이 없고 정상권 기사가 참여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근래에는 다소 바뀌었다고 하지만 연구회는 뜻 맞는 기사들끼리 그룹, 그룹 하는 게 보통이다. 체질에 맞지 않아 여전히 혼자 공부하는 기사들도 있다.
올해부터 틀을 갖춘 우리나라 국가대표상비군은 정상급기사부터 여자기사, ‘영재입단대회를 통과한 막내들까지 모두가 참가하면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 말 못할 어려움은 있다. 실전에 사용하려고 쌓아둔 연구, 소위 ‘비장의 카드’를 국가대표상비군 연구회 자리에서, 혹은 리그 훈련 뒤 복기에서 다 꺼내 놓을 수 있을까. 훈련에 참가 중인 기사 중엔 더러 ‘아니오’라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당연할 것이다. 평시에 아군일지라도 반상을 마주하면 적인 것이다. 이쯤되면 구조적으로 탁 터 놓은 연구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얼마 전 세계대회 단장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 남자국가대표팀 감독 샤오웨이강 9단은 중국의 공동연구에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음을 짚는다.
“실력이 강한 기사가 약한 기사를 도와주고, 남자기사가 여자기사를 돕는 정신은 1969년부터 4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온 중국 공동연구에 뿌리 깊게 스며 있다.”
프로가 자신의 연구를 남과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보다 정상권과 비정상권의 차이가 더 컸던 시절엔 정상급 기사가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게 더 어려웠다. 말 그대로 같이 연구해야 하는데 실력 균형이 맞지 않아 일방적인 가르침이 되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세계대회 결승에서 동료가 다른 국가의 기사를 이기는 것은 모두의 기쁨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자신의 연구를 제공하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국가대표로 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료가 국가대표로 나가 우승하는 것 역시 못지않게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우리 기사들이나 일본기사 어느 누군들 동료의 우승이 기쁘지 않겠는가마는 중국은 이것이 좀더 공동화했다는 이야기다. 근본적으로 프로기사로서 개인주의에 앞서 국가주의를 우선시할 자세가 충만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는 다음 말에도 오롯이 드러나 있다.
샤오웨이강 9단은 스웨 9단이 지난 LG배 결승전에서 원성진 9단과의 일전을 준비하던 때의 상황을 들려 줬다.
“세계대회 결승전 같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감독은 상대국 선수와 비슷한 스타일의 기사를 데려다 스파링을 시킨다. 원성진 9단처럼 힘이 넘치는 중국기사들을 동원했다. 또 스웨 9단을 도울 팀을 구성해 줬다. 팀은 원성진 9단의 기보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스웨 9단이 연구하다 궁금한 게 생기면 팀은 성심을 다해 각자의 견해를 말해준다. 물론 이 팀은 정상급 기사들로 구성됐다.”
문화의 차이, 전통의 차이, 제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말을 듣고 기자는 명치를 한방 맞은 듯한 둔탁한 충격을 받았다. 뭔가 정신의 차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졌고, 이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차이로만 퉁 치고 넘어가기에는 뭣한 그 어떤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계대회 성적, 제한시간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종종 거론하고 있는, 공동연구 외에 중국과 한국의 성적 차이를 가져온 것은 제한시간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어떨까. 한국의 바둑대회 대부분은 속기다. 사실 한국 언론은 이런 질문을 중국 바둑관계자들에게 자주 한다.
“중국기사들은 연습바둑을 둘 때 자신이 준비하는 기전의 제한시간에 맞춰 준비한다. 그뿐이다. 제한시간이 긴 기전이면 길게 설정하고, 속기전을 준비한다면 짦게 설정한다. 훈련 방식도 자유롭다. 판팅위 9단 같은 어린 기사들은 인터넷 바둑을 즐긴다. 인터넷 바둑은 주로 속기다(중국기사 중엔 10초 바둑을 좋아하는 기사가 많으며 속기전에서도 대체로 한국기사들에게 승률이 좋다.)”
샤오웨이강 감독의 말이다. 그는 더 중요해 보이는 말을 덧붙인다. 우리나라 축구와 야구가 프로화되면서 실전이 많아졌고 덩달아 수준이 늘었듯, 샤오웨이강 감독 또한 중국바둑의 실력향상은 대회가 많아지면서 실전을 많이 쌓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점을 들었다.
“공동연구도 중국바둑의 실력 향상에 큰 역할을 했지만 기사들의 실전 기회가 많아진 것도 못지 않게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국기사들은 경기 일정이 바빠 한달에 공동연구할 시간을 며칠도 갖지 못하는 때도 있다. 기사들은 실전으로 철저하게 다져지고 있다. 중국 경제가 활성화되고 바둑에 대한 열기가 커지면서 바둑대회는 하루가 멀다하고 많아지고 있다.”
감독에게 한국에 경계할 만한 기사를 꼽아봐 달랐더니 “정상급 기사인 이세돌 9단, 박정환 9단이 당연한 경계 대상이며 어린 쪽에선 양신(신진서ㆍ신민준) 그리고 변상일 3단을 주목한다.”고 했다.
중국의 넘치는 바둑자원, 열기가 가장 두려운 성장 요인
중국에서 프로기사는 부러움을 받는 직업이다. 성적을 내고 우승을 하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동시에 각종 이벤트에서 먼저 초청된다.
어린이 바둑교실은 중국 전역에 분포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중국바둑의 중심지는 수도 베이징이다. 중국 바둑국가대표팀 국가대가 이곳에서 훈련하며 프로기사가 되려는 어린 학생들도 이곳으로 몰린다. 프로지망생의 교육은 우리나라처럼 주로 사설 도장이 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도장 중 최근 각광받는 거위홍 도장은 2013년 중국입단대회에서 13명의 입단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도장의 운영 형태는 우리와 비슷하다.
사설 도장이 아닌 곳도 있다. 중국기원 분원 항저우바둑학교(교장ㆍ항텐펑 4단)는 이들 말로 ‘공빤’의 지위다. 공빤은 ‘공식 지정했다’는 뜻으로 항저우 시차원의 지원을 받는다. 중국 전역에서 사설 도장이 아니라 관이 지정한 교육체계를 가진 곳은 항저우바둑학교뿐이다.
보통, 사설 도장은 학생이 원하면 들어가므로 실력이 천차만별이지만 항저우바둑학교는 중국 각지에서 우수한 인재 약 40명을 가려 뽑으며 이 가운데 20명 미만의 소수 정예반이 입단권으로 특별 관리된다.
학생들은 8시30분에 등교해 바둑 공부를 하고 낮 1시30분부터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조를 짜 리그전을 벌이고 6명씩으로 구성된 조가 경쟁하면서 성적에 따라 상위 2명은 윗조로 가고 하위 2명은 강등된다. 이 밖에 프로ㆍ아마가 섞인 리그전도 시행한다.
4시~5시엔 일반 학교 수업 또는 체육 활동을 한다. 렌샤오, 류싱, 리친청, 샤천쿤, 푸충, 류시, 안둥쉬 같은 유명 프로기사들이 항저우를 거점 삼아 활동하는데 이들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한다.
◀ 항텐펑 항저우바둑학교 교장. 항저우는 베이징에 이어 바둑교육의 중심지를 지향하는 지역이다.
자신이 중국갑조리그 선수였고 지금은 감독이기도 한 항텐펑은 교육현장과 승부세계의 괴리를 좁힐 줄 안다. 항텐펑 교장은 질책보다는 격려를 중시한다. 바둑을 졌다면 원인을 분석하게 할 뿐 조급해 하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학교수업을 등한시하지 않는 게 항저우바둑학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역의 우수한 학교의 교사를 바둑학교로 초빙해 학업도 균형을 맞춘다. 과목 중엔 음악ㆍ서예 등도 포함된다. 중학교ㆍ고등학교 교사를 바둑학교로 부를 정도로 학생들이 일반 교과에서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항텐펑 교장의 지론이다.
꼭 프로기사가 되지 않아도 학업으로 전환이 부드럽다. 학부모들이 마음이 가볍다. 바둑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등 우수한 성적을 내면 중학교ㆍ고등학교ㆍ대학 입시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가산점을 어느 정도 주느냐는 성이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
샤오웨이강 감독은 “중국 한개 성에서 배우는 아이들의 수가 한국에서 바둑을 배우는 아이 수 모두를 더한 것보다 많다.”며 말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