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질 수 없는 바둑이었다.
본선에서 두 번을 승리해야 하는 더블일리미네이션을 통과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서봉수 9단은 1승1패 후 결전을 맞이하고 있었다. 상대는 23세의 중국랭킹 14위 우광야 6단.
서봉수는 통합예선 시니어들끼리의 경쟁에서 이겨 32강에 올랐는데 16강 진출까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다수의 예상이었다.
그런데 5일 상하이에서 벌어진 201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32강 더블일리미네이션 3회전에서 서봉수는 깜짝 놀랄 내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생일대 명국으로 남을 만큼 좋았다. 우광야를 일방적으로 밀어 붙였다. 우세는 중반에도 지속됐다. 3회전 여덟 판 중 가장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서봉수라지만 이제는 60의 나이임을 고려해야 했다. 그럼에도 투혼으로 불타 혼절할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바둑팬들은 서봉수가 다시 한 번 활활 타오르기를 바랐다.
그런데 정말로 서봉수가 중국 강호 우광야를 몰아 붙인 것이다. 이 판만 승리하면 16강에 진출하는 거였다. 중반까지 서봉수의 승리를 의심하는 프로기사는 없었다. 우광야는 까다로운 전투를 벌이며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서봉수는 실수를 하고 만다. 좌변에서 대마가 죽었다. 그런데도 미세했다. 미세했지만 서봉수가 약간 유리했다. 우광야는 패를 통해 계속해서 추격했다. 차이는 반집으로 좁혀졌고, 나중엔 뒤집혔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거인' 서봉수는 굉음을 내며 그렇게 쓰러졌다.
두 기사의 돌통 뚜껑엔 수십개의 사석이 흘러넘쳤다. 392수라는 긴 수수는 서봉수가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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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보(1~268(이후 줄임))
○우광야(中) ●서봉수 392수 백5집반승
▼ 참고도1 (문제의 장면)
△를 놓는 우광야의 손길엔 힘이 없었다. 그런데... 서봉수는 왜 1, 3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중앙쪽이 조금 걱정돼서 그런 것 같은데, 백이 4로 차단하려고 해도 5~9로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 참고도2 (이게 뭐지?)
바둑을 두다 보면 단수가 안 보이는 날도 있는 법이다. 이 바둑은 서봉수 9단은의 일생일대 명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뭘까? 흑 1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한 수다. 2, 4로 두니까 흑은 6수 백은 7수이다. 수상전에서 도리어 흑이 잡혔다. 서봉수는 수상전에서 수를 한 수 잘못 세는 착각을 범했던 것이다. 우광야의 손길이 갑자기 활기를 찾았다.
▼ 참고도3 (실전진행)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둑을 초반부터 살펴보자. 백이 △로 씌워 온 장면에서 서봉수 9단은 1, 3으로 우지끈 끊었다. 백도 4는 절대. (4로 10에 두어 축으로 잡는 것은 흑이 3선을 넘어가서 백이 별것 없다) 5는 행마의 맥. 12까지 진행된 장면에서 13이 서봉수 9단만의 실전적인 한 수. 보통은 악수지만 지금은 15를 선수하고 19, 23으로 두어서 흑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 참고도4 (우광야의 착각)
백은 1로 붙이고 3~7로 두어서 패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광야의 착각이 있었다. 9를 팻감이라고 착각한 것. 10으로 하나 끊어놓고 12로 패를 해소하니까 아무런 수가 없다. 13~17로 차단해도 18, 20으로 간단하게 살았다.
▼ 참고도5 (기대기)
백은 1로 먼저 붙이고 3~7로 두면서 흑에 기대면서 나가는 것이 좋았다.
▼ 참고도6 (실전진행)
착각을 한 우광야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1~9까지 연결하고 흑 10의 공격에 받지 못하고 11로 하변을 두면서 집으로 버틴다. 그러나 12를 당하니까 백의 고전이 역력하다. 백은 자체 팻감, 흑은 좌상 팻감을 쓰면서 패를 한다. 그러나 이 패는 흑이 즐겁다.
▼ 참고도7 (실전진행)
우광야는 패를 하면서도 중앙을 노린다. 그러나 서봉수의 응수가 너무나도 정확하다. 13, 15로 중앙을 끊자고 했을 때 16으로 받은 것이 백의 노림을 수포로 만든 좋은 수. 16으로 22를 두었다면 백은 바로 16자리를 끊고 버텼을 것이다. 계속해서 노련한 서봉수는 패로써 이득을 보며 50, 52로 완전한 승세를 구축했다.
▼ 참고도8 (실전진행)
우광야는 좀처럼 실마리를 못 잡고 있다. 5에 6으로 손을 돌린 것도 서봉수의 환상적인 플레이다. 백 7~15의 현란한 스텝은 서봉수 9단의 담백한 18~22에 의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30까지 흑 필승의 형세.
▼ 참고도9 (실전진행)
백 1의 들여다봄에 흑은 그냥 받아두어도 무방하지만 2, 4로 끊으면서 백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으려고 하고 있다. 16까지 백에게 형세는 절망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항서를 준비하던 우광야의 17~25의 수순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사고였다.
[기보해설ㅣ바람의 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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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봉수 9단으로서는 흑1로 막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2로 끊어서 응수를 묻는 것이 골치 아픈 수입니다. 흑이 3으로 받을 때 백4로 끊으면 흑은 5로 둡니다. 백이 8~11을 교환하고 12로 죄면 백이 한 수 빠른 수상전이 됩니다(백이 2에 끊지 않고 그냥 4로 두면 5~7로 백이 잡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