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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욱 8단의 '베트남棋행'입니다. 이강욱 8단은 최근 하노이에 대형 바둑카페가 세워졌다는 소식과 함께 베트남 현지 바둑인들이 스스로 조직한 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이강욱 8단은 또한 베트남 현지의 열악한 상황을 거의 처음으로 솔직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강욱 8단은 현재 바둑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에서 바둑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오로IN]

-하노이에서-

지난 연말 하노이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싱가포르 국적의 한 베트남 사업가가(NGUYEN QUANG VU.)상당한 규모의 바둑카페를 (V-Club) 오픈 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바둑이외의 것들- 체스, 장기, 댄스 스포츠 교습 등-도 포함되어 있지만 제법 그럴듯한 바둑 카페로 하노이 바둑인들은 물론 호치민 바둑인들 조차 설레고 부러워 할 만큼의 것이었다.

나 역시도 궁금해 하던 차에 지난1월 하노이 바오 선생님의 급한 호출이 있었다. 바오 선생님께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날 하노이까지 부른 것은 내가 베트남 파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기쁘게 하노이 방문길에 올랐다.

먼저 v-club을 소개 받은 나는 카페의 규모에 놀랐고 바오 선생님과 Vu(부) 씨의 제안에 한 번 더 놀랐다. 내용인즉 호치민에서 활동한지도 2년 이상 됐고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장소도 생긴 하노이에서 함께 힘을 모아 보급을 해 보자는 것이었다. 삼국지의 위, 촉, 오 세 나라의 솔밭 형세를 비유하며 세 사람의 힘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과 함께...... ^^

부씨는 바둑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심자였지만 바둑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상당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즉답을 할 수 없는 나는 후일을 기약해야했다.

베트남 바둑 발전을 위해서는 수도 하노이에서의 보급이 보다 효과적이고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오던 내겐 제법 솔깃한 제안이지만 지금의 내 형편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호의를 거절하기엔 너무 뜻 깊은 제안이었고 하노이바둑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있었지만.

오랜 숙고(?) 끝에 지난 3월에 재방문 하여 어쩔 수 없는 내 상황을 설명하고 ‘뜻을 같이 할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하노이에서 정기적인 강의를 맡겠다는 말과 함께.

물론 그간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노이를 왕래하였지만 그것마저도 불규칙한데다 다른 일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빠지기도 하는 등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마땅한 장소가 없었던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제부터 정식으로 학생들을 모집하여 보다 체계적인 강의를 맡기로 했으니 열일 제쳐두고 라도 하노이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해서 2주에 1번씩 주말을 이용하여 하노이 강의를 하게 되었고 지난 4월 6, 7, 20, 21일 두 번에 걸쳐 하노이 v-club 에서 15여명의 학생들과 수업을 했다.

▲ V클럽에서 이강욱 8단이 강의중이다.

-호치민에서-

베트남 체스협회의 관리 하에 있는 바둑은(바둑협회는 없음) 아직은 국가의 관심도 대중의 관심도 없는 탓에 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는 1년에 단 한번 뿐이다. LS배 베트남 챔피온십이다. - 참고로 체스대회는 베트남 국내대회가 연 10여 차례 열리고 베트남에서 개최하는 국제대회만도 상당수다 .- 그 때문에 베트남의 바둑인들은 실력을 겨룰 수 있는 대회가 부족한 것을 언제나 많이들 아쉬워한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3월 호치민에선 3주 연속 (3.10~3,24) 매 주말마다 대회가 치러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3월 10, 17일 호치민 최강전. (호치민시 바둑클럽)
3월 24일 호치민 대학생 대회. (일반 카페)

소규모라도 기업이나 정부에서 후원하는 대회였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대회 현수막도 없는 바둑인들의 초라하고 소박한 이벤트에 불과했다.

호치민 최강전은 호치민 최강자 그룹 16명이 모여 스위스 리그 방식 - 베트남은 스위스리그 방식을 주로 사용함 - 으로 치룬 대회다.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이 십시일반식의 후원했고 -정말 적은 액수지만 그들에겐 큰돈이다. - 대회 참가자들 절반 이상도 후원에 동참했다. 속된말로 돈 놓고 돈 먹기(?)식의 대회였다. ^^

호치민 대학생 대회는 참가자격을 대학생, 아마3단 이하로 제한했다. 내 교실에서 공부하는 응옥(Ngoc, 2급)이 근무하는 보험회사가 작은 도움을 주었다. - 직원이 바둑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회사에서 도움을 주다니, 베트남에 이렇게 좋은 회사(?)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하다.

비록 대회장소도 초라하고 규모도 형편없이 작은 대회들이었지만 바둑 활성화를 위해 직접 대회를 만들고 참여하는 베트남 바둑인들의 열의만큼은 그 어떤 세계대회 못지 않다.

한편 같은 시기에 호치민시에선 베트남 굴지의 은행에서 후원한 국제 오픈 체스대회(우승상금:10000불)가 호치민시 유명호텔에서 벌어져 베트남에서 바둑이 처한 위치와 현실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베트남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체스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고 바둑은 상대적으로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늘 느끼는 거지만, 국가로부터의 관심이 없는 바둑을 살려보려 베트남 바둑인들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대단하단 생각이다.

나 역시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베트남 바둑 보급을 위해 이곳에 왔지만 지금의 내 활동이 순수하게 ‘베트남 바둑보급’이라고 말하기에는 얼마간 어폐가 있다.

나는 현재 호치민에서 한국교민 자녀들도 지도하고 있다. 물론 넓게 보면 이것 또한 보급이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의 지금 내 임무는 베트남 바둑 보급이다. 문제는 현재의 지원금만으론 넉넉지 않은 상황이라 유일한 경제적 수입원인 교민 자녀 지도를 하지 않으면 베트남 바둑 보급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지원금조차도 언제까지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이제 내게는 교민자녀들의 지도가 엄청나게 중요해져버린 상황이다.

이번 하노이에서의 제안도 상당히 끌리는 제안이긴 했지만 적은 교민 수의 하노이에서 교민들을 가르쳐서 호치민에서 만큼의 수입 -내 생활을 책임지는 유일한 수입원-을 얻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베트남까지 와서 한국아이들의 바둑을 지도한다. 그래서 베트남 바둑보급에 지장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베트남의 상황을 잘 모르시는 많은 분들은 말씀하신다. ‘베트남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으며 생활하면 되지 않느냐고?’

사실 처음 시작은 무료 강의였다. 하지만 책임감과 바둑을 배우려면 수업료를 내야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 약간의 수업료를 받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수업장소를 오가는 버스비 정도에 불과한 액수다.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아마도 내 바둑교실은 텅 비어버릴 것이다. 그만큼 열악하다. 그러니 베트남인들을 위한 보급 활동에만 전념한다면 나는 최소한의 생활조차도 할 수가 없다.

유럽이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베트남이라 현재 받고 있는 지원금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베트남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집세를 비롯해 외국인에게 적용하는 가격이 베트남 현지인들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

타 국가에서의 보급상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현지인들을 가르쳐서 어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고 알고 있다. 그런 점이 수입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베트남과는 큰 차이점일 것이다. 수입은커녕 아직도 학생들의 교재 뿐 아니라 기타 다른 부분도 선생인 내가 부담 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교민자녀 수마저도 줄어들고 있어서 고민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벽보까지 붙여가며 알리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고 더 중요한 것은 베트남 바둑보급에 힘을 쏟아야 할 귀중한 시간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 내 스스로에게 괴롭다.

거기에 더하여 이제는 한 달에 2~3번 (2주에 1번) 하노이 강의도 맡게 되었으니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의 항공료와 이동경비, 숙식비 등 지출은 더욱 늘어난 상황이다. 그렇다고 하노이를 소홀히 할 수도 없고.

한 베트남 바둑인은 내게 “베트남에 왔으면 베트남 사람을 가르치라. 한국아이들 가르칠 거면 무엇 하러 이 먼 곳까지 왔느냐?“는 말까지 했다.

내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긴 하지만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듯 했다. 아팠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부담과 제약 없이 베트남 바둑보급에만 나의 온 힘을 쏟고 싶지만 경제적인 부담과 함께 외국인으로서의 여러 가지 사소한 제약들이 많다. 비자를 제때에 받지 못해서 가끔씩 불법체류자가 되기도 하고, 공안(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거주문제로 트집을 잡는다. 이래저래 베트남에 섭섭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내 마음도 복잡해져서 힘이 들고 지친다.

날씨조차 이상고온이다. 요즈음 호치민은 한낮 온도가 40도를 오르내린다. 베트남 파견 만3년차 2013년 4월의 ‘이강욱’은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버린 상태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내가 맨땅에 대고 끊임없이 헤딩만을 한 건 아닌지. 내 능력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언제나 그렇듯, ‘언젠가는 꼭 내가 노력한 만큼 베트남 바둑의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교민 자녀를 위한 바둑교실 전단지를 들고 숙소를 나선다.

[글 | 베트남, 이강욱 8단]

▲ V 클럽에서 어린학생들 바둑 수업

▲ V클럽에서 어린 학생들이 체스 수업을 받고 있다.

▲ 호치민시 바둑클럽에서 호치민 최강전

▲ 베트남 현지 은행에서 주최하는 국제 오픈 체스대회 현수막

▲ v클럽에서 대국중인 베트남 학생들

▲ 일반카페에서 호치민 대학생 바둑대회

이강욱, "가슴에 대못이 꽂히는 것처럼 아플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