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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초유(初有)가 아니다. 이유(二有)나, 삼유(三有)쯤 되려나?'

'사상 초유의 비디오 판독'이라는 9월 17일 바둑리그 뉴스 제목에 대해 다른 제보가 들어왔다. 바둑생방송 프로그램 담당 PD가 징계까지 받은 건 사상초유일지 몰라도 '비디오 판독' 자체는 그 훨씬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둑역사에서 비디오 판독의 '기원'을 찾아봤다. 더 이전에 어떤 사건이 있을지 모르지만 바둑계의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한가지 사건 있었다. 비디오 판독이니 당연히 스튜디오 방송대국이고, 바둑TV 개국 이전의 방송대국이라면 KBS바둑왕전과 MBC제왕전 둘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 그랬다.

1986.02.03 ●천풍조 ○문명근 제5회 바둑왕전(KBS)본선 207수 흑불계승

월간바둑에도 실렸던 이 사건은 86년 KBS 바둑왕전 본선 천풍조-문명근의 대국이다. 당시 백대국자가 착수할 때 옷소매에 돌이 쓸렸고 날일자 행마가 눈목자로 바뀌었다. 대국자 모두 그것을 제대로 모른 채 대국을 끝냈다. 날일자보다야 눈목자가 백에게 더 유리했다고는 하지만 승패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이 사실은 녹화방송을 본 시청자의 제보로 뒤늦게 알려졌다. 한국기원은 사실을 파악한 후 대국자에게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방송 대국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일이다.

따지자면 더 많은 사람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비디오 판독' 대국이 있다. 2010년 지지옥션배에서 벌어진 '안관욱-김윤영' 옥집사건이다. 사이버오로를 비롯한 전문 바둑싸이트와 여러 매체에서 흥미롭게 다뤘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그 해 10대 뉴스에 넣느냐 마느냐 할 정도였다. 이 사건은 86년도 사건과 달리 계가에서 문제가 생겼다. 안관욱 선수의 옥집에 김윤영 선수가 자신이 잡은 사석을 채워 넣어 대국계가를 마쳤다. 옥집을 제외한 정상적인 계가였다면 김윤영의 반집승일텐데, 옥집에 사석을 넣어 딱 반집으로 승부가 뒤집혔다. 결과가 '반집'이었기 때문에 더 논란이 됐다.

2010.09.24 ○안관욱 ●김윤영 제4회 지지옥션배 17국 285수 백0.5집승

이 대국도 86년의 사건과 동일한 점이 있다. 대국이 완전히 끝나 승패까지 가려진 다음 시청자 제보로 알게 됐다는 점이다. 대국이 끝나자마자 비디오를 수차례 돌려 본 것으로 치자면 '안관욱-김윤영'의 대국이야말로 진정한 '비디오 판독' 대국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앞선 두 대국은 경기가 끝나고 대국자 서로가 승패를 인정한 후의 일이다. 대국자들이 승패를 인정한 후에 돌까지 쓸어담았던 터라 판정 번복까지는 힘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비디오 판독'이라 함은 스포츠 중계처럼 시합 안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스포츠 중계처럼 진행중 비디오 판독이 일어난 것은 올해 9월 16일 한국바둑리그 홍성지(포스코LED) - 이호범(신안천일염)의 대국 외엔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승-패'는 물론이고 대국을 정상 진행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생방송' 대국중에 대국을 멈췄다. 녹화 비디오를 돌려 봤다. 선수는 물론이고 양팀의 감독, 담당 PD까지 비디오를 봤다. 2012년 올해 9월 16일 열린 한국바둑리그 '홍성지-이호범'의 대국에서였다. 스포츠 중계에서 판정을 위해 잠시 시합을 멈추고 비디오를 돌려 보는 것과 같았다. 앞의 두 번이 대국자가 아닌 시청자 제보에 의해 뒤늦게 알려졌다면, 올해의 사례는 비디오 판독이 대국중에 일어났다는 게 확연히 다르다.

▲ 9월 16일, 대국중단1 - 제작진(담당PD, 리그운영위원)이 이 상황에 대해 선수와 계시원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있다

2012.09.16 ●이호범 ○홍성지 2012 한국바둑리그 17라운드 4국 288수 흑5.5집승

문제는 초읽기 때문이었다. 이호범 선수의 착수와 동시에 대국 계시원이 열을 불렀다. 그리고 "내가 열을 너무 빨리 부른 것 같다"며 선수들에게 대국 재개 의사를 물었다. 이 지점부터가 진정한 '비디오 판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는 알려진 대로다. 계시원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다시 초를 불렀고 사태가 꼬였다. 감독까지 스튜디오에 올라 우왕좌왕 하던 순간에 홍성지 선수가 얼떨결에 한 수 착수를 했다. 담당 PD, 감독, 제작진이 자초지종을 묻고 이호범 선수의 착수에서 카운트 열이 빨랐는지, 착수가 빨랐는지 비디오 판독까지 하게 된다.

앞의 2번의 대국은 대국자들의 착각에 기인한다. 심판의 행위가 끼여든 것은 아니다. 마지막 비디오 판독은 심판의 일원이랄 수 있는 계시원의 초읽기가 관련되어 있다.

분란의 원인이 입회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리그 규정에 의하면 당일의 바둑TV 담당 PD가 심판의 권한이 있지만 방송을 지휘하면서 입회인의 역할까지 하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그럼 혹시 16일에 입회인이 배치되어 있었다면 단숨에 공정한 해결을 내렸을까? 절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시원의 '열' 하는 카운트가 시간패를 의미한다면 계시원은 분명 대국 '심판'의 일부다. 그러나 그 계시원이 가진 재량이 어디까지냐가 분명하지 않았다. 향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제보에 따라 정확한 표현을 해야한다면 9월 16일의 대국은 이렇게 서술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방송 도중, 대국을 멈추고 비디오 판독을 한 사례는 사상초유의 일이다. 한국리그에서 담당 PD가 징계조치를 받고, 방송 계시원이 출연금지를 당한 것도 사상초유다'

사건이 발생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당사자인 홍성지 선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후 감상을 이야기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데 계시원의 권한이 어디까지였는지를 묻고 있다.

"초읽기에서 열을 불러 종국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제3자가 개입해 대국을 연장하는 행위가 일어났다. 계시원이 스스로 판단한 독단행동이라지만 (= 방송진행자 누군가 계시원에게 대국재개를 권해보라 지시했는지에 대한 의혹이 없다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문제다. 이의제기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넷마블 양건 감독은 룰을 더 정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감독은 "열을 불렀지만 아홉에 두셨어요" 이 말이 처음 나온 케이스여서 문제가 됐다. 보통 "열"이면 끝이다. 계시자가 "열"이라고 부른 것을 스스로 번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지가 첫번째 쟁점이 될 것이다. 정황상 분위기가 굉장히 묘했을 것이다. '누군가 현장에서 명확히 판정을 내려주면 좋을텐데, 현장의 계시자가 심판의 역할까지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은 대국자라면 누구나 할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바둑 계가 룰의 원칙을 확실히 하는데 보다 나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담당자의 징계보다는 아직 허술한 반상/반외 룰의 기초를 확실히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버오로 손종수 상무 또한 관련 룰이 보다 정확히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계시원이 열! 했으면 현행룰로는 시간패가 맞다. 계시원이 어떤 말을 했든 홍사범은 시간패를 주장하고 착수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의제기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시간패를 당한 이호범 사범 쪽이다. 나는 아홉에 뒀는데 그 뒤에 계시원이 멈추지 않고 열을 불렀다. 뭐, 이런 이의제기다. 최근, 속기가 많아지면서 초시계에 익숙해진 신예들이 아홉, 열 사이에 착수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도 분쟁의 소지가 다분한 만큼 관련 룰을 확실하게 정해두는 게 좋겠다. 홍사범 같은 제2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둑계 내에선 기록자, 계시자를 보다 전문인원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일반 속기대회 예선에서도 다양한 일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비디오 기록을 보편화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계시자가 초를 부르는 게 아니라 아예 초읽기 시계를 대국자가 직접 누르게 하자는 의견도 있다.

세계대회인 LG배가 아예 계시원 없이 직접 초시계를 누르는 경우에 해당한다. 담당자가 초읽기 시계 작동여부를 체크하고 대국자가 대국시에 착수를 하고 초시계를 직접 누른다면 여러모로 분란의 소지는 없어진다. 다만 방송대국의 경우, 사람의 목소리로 초를 읽는 게 시청자들이 보고 듣기에 적합하다는 의견도 많다.

▲ 대국중단2-양 팀 감독과 바둑TV 제작진의 비디오판독 중, 제작진은 이즈음 멘탈붕괴.

▲ 대국중단3- 양팀 감독까지 나섰다. 카운트가 빨랐음을 일단 인정하고 대국 재개를 결정한다.

초유? 바둑에서 '비디오 판독'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