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급' 아마추어가 등장했다.
'2012 olleh배 바둑오픈 챔피언십'에서 이세돌급의 대어가 출현했다. 신분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다. 이름은 유병용(88년생, 충암도장), 6월 4일 한국기원서 열린 이 대회 본선 2라운드(64강전)에서 2라운드 출전자중 랭킹이 가장 높은 박영훈에게 불계승을 거뒀다. 한마디로 '이변'이다.
4일 본선대국실에서 대국이 끝난 유병용 선수를 만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 오늘 박영훈과의 대국을 총평해달라.
"우변에서 기분좋게 포석을 마쳤다. 모양이 커서 판이 좁혀졌다. 둘만했다."
- 박영훈전에 대비해 어떤 준비가 있었나?
"사실 3일 전부터 몸이 무척 안좋아서 집에만 있었다. 집에서 박영훈의 기보를 봤다. 후반이 너무 강해서 중반에 잡지 못하면 그냥 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포석은 모양을 크게 가져가려고 했다. 그게 약간 성공한 것 같다."
올레배는 랭킹하위자와 상위자가 만나는 시스템으로 본선이 진행된다. 아마추어 선수는 프로랭킹이 없어서 최하위 랭커가 되며, 그렇기에 올라갈 때마다 가장 강한 프로와 맞붙는다. 유병용 선수는 다음 3라운드에서 무조건 이세돌과 만난다.
- 보통 통합예선에 진출한 아마추어들의 목표를 물어보면 흔히 "이세돌과 둬 보는 것"이라고들 한다. 진짜로 3라운드에서 이세돌과 공식대국을 두게 됐다. 느낌이 어떤가?
"아직까지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둬 보면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 박영훈 9단과 두는 것은 어땠나? 그런 상위랭킹 프로와 두는 것 말이다. 옆에서 두던 이호승 선수(아마추어)와 원성진 9단은 친구처럼 농담을 하던데?
"전 88년생인데 85년생인 박 9단과는 차이가 좀 있다. 나이차 말고 제가 바둑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충암도장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데 전주 금요일에 박9단이 와서 '너 나랑 같이 두게 됐다'그러면서 웃어줬다. 막상 대국을 둘 때는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겨야 하니 미묘한 흥분이 대국자를 지배한다. 그러나 대국이 끝나고 나서는 편하게 복기했다. "
- 아마추어선수로 내셔널리그도 뛰고 이렇게 프로공식대국도 같이 한다. 어떻게 다른가?
"임하는 자세에서 달라지는 것 같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공식대회인 내셔널리그는 '즐긴다는 느낌'도 같이 한다. 프로와의 대국은 그런 게 잘 없다. 제가 아마추어고 다들 제 윗길이라 배운다는 느낌도 있고, 바둑에 있어 좋은 내용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병용은 통합예선부터 본선 2회전까지 이호범, 김정현, 박영훈 등의 쟁쟁한 프로들을 이겼다. 강자를 만나도 결코 작아지지 않는, 유병용의 적극적인 스타일이 프로대결에서도 5:5의 승부를 가져다 주는 것 같다.
- 그래도 프로들을 쭉 이기고 올라오는 것은 쉽지 않다. 박영훈처럼 큰 상대를 만나면 좀 위축될 수 도 있는데?
"제가 쫄아드는 스타일은 아니고 덤비는 스타일이다.(그런 걱정은 없다)"
- olleh배의 특성은 상위랭커와 하위랭커가 붙는 것이다. 2라운드(64강전)에서 박영훈을 만났고 3라운드(32강)에선 이세돌을 만난다. 만약 그 대국을 이긴다면, 박정환이 3라운드를 이긴다는 가정하에 박정환을 만날 수 있다. 만약 박정환을 만난다면? 그리고 계속해서 아마추어 선수가 강자들만 만나는 이 시스템에 불만(?)은 없나?
"아흐흐흐. 벌써부터 박정환이라, 그런 건 아직 상상하기 힘들다. 대표강자들을 계속해서 만나지만 저로선 불만이 없다. 언제 두어 볼 수 있겠나? 오히려 최상위 랭커들이 저 같은 아마추어 선수를 만나는 게 큰 부담이고 불만일지 모른다. 하하하"
- 박정환과도 둬 본 적은 있나?
"연구생일 때 같이 10조에 있어 많이 뒀다. 당시 박정환은 아주 어린 데다 굉장히 귀여웠고 주위에선 '기재'라며 기대가 많았다, 어느순간 불쑥 크더니 이제 만나기 힘든 사람이 됐다. 하하"
-부모님의 기대도 있지 않나?
"부모님도 상대가 너무 강하니까 포기하셨던 것 같다. '그냥 편하게 두고와라' 그러시더라. 별 기대를 안하시는 것 같았다. 하하"
유병용은 연구생을 제외하고 자신과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입단을 준비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최소 10명 이상, 그리고 입단을 준비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 선수들은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입단문호가 넓어졌지만 언제나 경쟁은 힘들다.
- 프로 입단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 공부는 어떻게 하나? 연구생처럼?
"원래 한국기원 연구생을 나오고 나서 1년간 아마추어 활동에 물이 올랐었다. 그러나 입단이 너무 힘들어서 일단 군대부터 다녀오자는 생각에 군대를 다녀왔고 작년 9월에 해병대를 제대했다. 지금은 충암도장에 한번 나가면 오전10시부터 밤9시까지는 같이 공부한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끼리 리그전도 한다. 매일 나오라고는 하지만 자율적으로 하고 있다. 프로기사 이영구, 강병권 형과도 같이 공부하고 있다. "
- 여자친구가 있을 것 같다. 애인은 있나?
"얼마 전에 헤어졌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프로 입단 때문에 헤어진 것이라 봐도 된다. 입단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