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와 호치민, 같은 땅 두개의 나라
언어와 기질이 전혀 다른 베트남 양대 도시
▲ 호치민이 없었다면 현재의 베트남이란 나라도 없다. 그래서 국부(國父)이자 상징이다. 베트남 어딜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호치민 동상
2012-05-02 오후 4:44
이강욱 8단의 '베트남棋행'입니다. 최근에 하노이와 호치민, 베트남의 양대도시를 오가며 바둑보급을 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하노이와 베트남은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발음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답니다. 그래서 호치민의 베트남어를 익힌 이강욱 8단이 두배로 힘들수밖에 없군요. 이강욱 8단은 바둑 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에서 바둑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오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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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베트남 생활도 3년차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베트남 생활, 늘 더운 날씨로 인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쯤, 그동안 미루어 왔던 숙제 한 가지가 떠올랐다.
작년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던 하노이에서의 정기적인 바둑강의다.
여러 가지 제약과 사정상 지금껏 미루어 왔지만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어서 하노이 바오(BAO) 선생님과 연락해, 여러 상의 끝에 어렵게 첫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작년까지는 주말에만 운영되는 하노이 바둑클럽의 스케줄을 따라, 한 달에 한 번 주말을 이용해 이틀 정도의 일정으로 강의를 했다. 물론 이틀의 짧은 일정으로는 하노이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도 없고 하노이 학생들은 물론 나 역시도 아쉬움이 많았었다.
그런데 바오 선생님께서 나만 괜찮다면 평일에 학생들을 모집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내 일정을 고려한 4일간의(월~목, 이동일 까지 일주일정도) 주중 강의를 제안하셨다. 하노이에서는 내가 좀 더 긴 시간을 할애해 주기를 바라셨겠지만 일주일 정도 호치민을 비우는 것도 내겐 꽤나 부담이 따르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들의 열의를 생각하며 힘들게 첫 발을 내딛는다.
베트남에선 저녁7시~9시 반까지의 강의 시간은 제법 늦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참여하는 학생의 대부분이 대학생이거나 직장인들이기에 어쩔 수 없는 시간 선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하노이에서의 첫 강의라서 기대도 컸지만, 사실 그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다.
수도 하노이와 호치민의 언어는 발음이나 억양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같은 단어임에도 뜻은 전혀 다른 단어들이 너무 많다. - 학교에서조차 하노이 발음, 호치민 발음을 따로 가르칠 정도이다. - 이제까지 많은 교류가 있어 왔던 호치민 학생들은 내 언어가 조금 틀리더라도 상황에 따라 내가 어떤 말을 하려하는지 알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교류가 적었던 하노이 학생들은 내게 부담이다. (호치민에서 처음 만나는 학생들은 내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자주 만나는 학생이 내 베트남어를 듣고 다시 호치민 베트남어로 통역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 예상된(?)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다른 문제(?)들로 인해 당황하게 되었다.
하노이 바둑강의를 제안 받을 때만 해도 그간 안면을 익혔던 상위 소수그룹의 지도가 될 줄 알고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 강의시간에 찾아온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제껏 만난 적이 없던 새로운 얼굴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하노이 뿐 만이 아닌 하노이에서 약100km, 2시간 쯤 떨어진 하이퐁 - Hai Phong, 베트남 북부의 대표적 항구, 공업도시 - 에서 까지 내 강의 소식을 듣고 먼 길을 찾아온 이들도 있었으니, 아아아... 그 열의에 난 또 당황(?)할 수밖에!
연령층도 19세~45세, 실력 또한 아마4단~8급까지 들쑥날쑥이다.애써 준비해간 교재들은 사용할 수도 없었다.
부랴부랴 임기응변으로 정석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학생들의 호응이 상상 이상으로 좋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기에 이제껏 짐작으로만 알 수 있었던 하노이, 호치민 학생들의 전혀 다른 수업태도 또한 내게는 또 다른 당황스러움이었다.
정확한 시간엄수는 기본이고 수업시간 내내 보여준 학생들의 열의와 진지함이란!하노이도 베트남의 다른 도시일 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선생인 내가 가장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공부시간에는 약간의 틈만 보여도 어느새 시끌 벅쩍 왁자지껄한 호치민, 그리고 진지함으로 가득찬 하노이, 과연 이곳이 같은 나라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호치민 일부 학생들의 문제이긴 하다. 괜한 부아(?)가 일어 호치민에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한마디 한 적이 있다.
“하노이 학생들은 시간도 잘 지키고 수업시간에 굉장히 조용히 공부하던데 너희들은...”
그들에겐 제법 자존심 상할만한 위험한(?) 발언이었고, 이에 자극 받아 변화하는 호치민 학생들을 기대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를 다시 한 번 당황시켰다.
“선생님~호치민과 하노이는 달라요. 그쪽은 그쪽이고 여기는 여기에요.” ^^(풀썩~) 그렇지. 하노이는 하노이고 호치민은 호치민이니까...ㅜ.ㅜ(서둘지 말자)
베트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계시는 분들께선 이렇게 말씀들 하신다. 베트남에는 정치수도 하노이, 경제수도 호치민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한다고, 나 역시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도여서 그런지 하노이의 분위기는 훨씬 엄격하고 질서 있게 느껴진다. 도로 곳곳마다 서있는 수많은 공안(경찰)들, 호치민에선 보기 힘들었던 위법 차량 견인, 불법 노점상 단속 등.
가장 간단한 예로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 역시도 승, 하차 문의 구별이 없는 호치민과는 달리 하노이 버스는 승, 하차 문의 구별이 확실하며 질서가 잘 잡혀있다. 심지어는 하차 벨도 있다. ^^
질서정연하고 조금은 엄격하며 무표정한 하노이 사람들,
자유분방하고 밝은 모습의 호치민 사람들.
이렇듯 같은 나라이면서도 전혀 다른 사람들의 성향이 양 도시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어느 쪽이 옳다거나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어려운 부분.
(우리의 남북관계와 비교가 가능할까?? 북한을 안 가봤으니 모를 일이다. ^^)
하지만 호치민에서 나와 가깝게 지내며 평소 내 성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베트남 친구가 한 말이 떠오른다.
“강욱씨는 호치민보단 하노이가 더 잘 어울려요...”
이제는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약속이 되어버린 하노이 방문.
아직은 바둑을 가르쳐서 금전적인 부분-수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베트남. 물론 금전적인 부분을 기대하며 하노이에 왕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지원금만으로는 호치민, 하노이 양 도시를 오가며 활동하기엔 꽤나 벅찬 상황이다.
비행기로 2시간씩 걸리는 호치민-하노이의 왕복 비행기 표만 해도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그 지원금마저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ㅜ.ㅜ
게다가 일주일이라는 호치민에서의 공백 기간까지 생각하면 어려운 점이 참 많다. 물론 호치민에 있는 내가 하노이 까지 신경 쓰는 것은 무리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베트남 바둑 발전을 위해서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 어느 곳이 됐든, 아무리 힘들더라도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호치민이라는 한 도시가 아닌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바둑 보급을 위해 온 거니까 말이야.
많은 어려움은 있지만 하노이는 내게 늘 신기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곳이다. 학생들의 열의 가득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호치민에서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일까? 이제는 하노이에 가는 날이 자꾸 기다려진다.
이래저래 하노이와 호치민 두 개의 나라(?)를 두고 부쩍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글 | 베트남, 이강욱 8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