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주인공이 되는 방법'아는 프로

인터리그, 아는 만큼 재밌다. 이것이 관전 포인트
 
2012-01-28 오전 12:03

- '한종진, 박승철'의 인터리그 방담
- 박지은, '주인공이 되는 방법'아는 프로
- 조혜연,박지은,최정에 관한 평가

프로기사에 관한한 프로기사의 평가가 가장 정확한 경우가 많다. 특히나 승부나 실력에 관한 부분이 나오면 더 그렇다. 인터뷰를 하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생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바둑 실력에 관한한 프로기사들이 '전문가'니까.

한종진 8단(79년생)과 박승철 7단(82년생)은 '2011 인터리그' 스마트오로팀의 30대 선수들이다. 1월 26일 저녁, 두 선수들이 사이버오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마침 퇴근 무렵이라 을지로 3가에 자리한 중국집 '안동장'에서 저녁을 함께하며 인터리그 출전선수를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리그는 인터넷 4개사가 4개팀을 구성해 벌이는 연승전 형식의 단체전이다.

박승철은 2007년 한국바둑리그를 뛰었고, 매년 50% 이상의 승률을 올리고 있다. 한종진 8단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분위기다. 한종진 8단은 2011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9연승을 달리고 있다. 그 승리의 행진 목록에는 이창호 9단도 끼여 있다. 충암도장에서 연구생들을 지도하며 같이 공부한 효과가 나오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야기는 그래서 한종진부터 시작됐다.

○●.. '한종진의 시대'인가?

한종진
연구생들 제자들이 나를 보고 '시대'라고 놀린다. 시대가 뭐냐고? 즉 한종진의 시대라는 뜻이다. 그냥 '시대'라고만 하는 건, 말하자면 그게 좀 나를 놀리는 거다. 하하 심지어는 '아쭈 요즘 좀 실력이 늘었는데'라는 투로 농담을 던지곤 한다. 원생들에겐 엄격하게 대할 때도 많지만 이런 장난은 잘 받아준다.

오래된 연감에는 '앗 이런 수가'라는 식의 대실수를 모아놓은 코너들도 있는데, 어떻게 찾았는지 그런 곳에서 내 이름을 찾아 기보를 놓아보고 있다. 나보라고 하는 식이다. 내가 공부하는 것을 둘러 볼 때 내가 잘 보이게 기보를 놓아 본다. 찾기도 힘든데, 그걸 어떻게 용케도 찾았는지 하하 정말 재밌다.

[ ※ 한종진 8단은 급한 성격으로 주요 판에서 상대적으로 실수가 많았던 편, 특히 이상훈-한종진의 신인왕전 결승대결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한종진이 돌을 던지자 이상훈은 얼떨떨해 하며 '(던져줘서 고맙긴한데...) 내가 진 거 같은데 왜 던졌어?'라고 한 복기상황이 아직도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

원생들을 가르치며 도장에 항상 같이 머물러 있다보니까, 자정까지 연구생들처럼 같이 바둑공부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돈도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덜 쓰게 되고 좋은 점이 많다.

○●.. 조혜연, 박지은, 최정

한종진의 평가
최정은 충암도장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도 손뼉을 같이 부딪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다른 팀이네. 최정은 정말 바둑소녀다. 고등학생이 되니까 다른 쪽에도 관심이 생길 때도 됐지만 바둑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바둑을 너무 재밌어하고 있다. (최정은 현재 충암중 3학년이며 올해 고등학생이 된다.)

박승철의 평가
최정은 여자라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프로다. 여류대회도 출전할 수 있고, 신예대회도 나갈 수 있고, 본격대회도 모두 출전할 수 있으니까 행복해하는 것 같다. 최정의 라이벌은 같은 여류들이 아니라 남자기사들이다. 그렇게 느끼고 목표를 잡고 공부를 하는 것 같다.

차민수 사범님께 살짝 미안하지만 조혜연이 차민수 사범님께 진 것은 좀 충격이다. 조혜연 9단은 더 이길만한 실력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박지은에 이어 여자랭킹 2위의 조혜연이다.

박지은은 자기 스타일이 다른 여류들보다 훨씬 확실하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프로들이 어디 있겠냐만 박지은은 주인공이 되는 방법을 안다. 그게 노골적이지 않아서 좋다. 국내 여류대회서는 루이나 다른 강자들에게 잘 지기도 하지만, 여류 세계대회에서 두는 것을 봐라. 박지은은 이미 예전에 루이를 뛰어 넘었던 것 같다. 요 몇 년간 큰 상금이 걸린 세계대회에서는 박지은은 거의 지지 않았다. 정말 잘 둔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내대회 승률이 세계대회보다 떨어지는 것은 체력적인 문제로 집중을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박지은은 작은 체구로 '콜록'거리며 대국장에 나타나서 연승을 하곤 했다. 대국전에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안좋을 때가 많은데, 이건 그만큼 집중을해서 체력에 무리가 간 것이다. 박지은이 최정을 만나면 상대가 어려 부담이 되겠지만 이기고자 맘 먹으면 루이를 이겼듯이 이길 수 있다. 박지은은 웬만한 남자기사들보다 랭킹이 높거나 비슷하다. 본인의 의지와 체력이 변수다.

☞참조 : 한국일보/ [서화숙의 만남] 최정 초단 "마음 비우니 놀랄만한 승리 거둬…"


○●.. 이동훈 김세동 홍기표 송태곤

인터리그 4개팀 주장급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한종진, 박승철의 평가
인터리그 최고의 실력자는 홍기표라고 본다. 홍기표는 운이 없는 강자다. 국수전 도전자가 되서 이창호에게 지고 군대를 갔는데, 그 타이틀이 현재까진 이창호의 마지막 타이틀이다. (힘이 덜 빠지기 전의 이창호를 상대한 느낌?)

그런 실력을 가졌어도 한국리그도 거의 뛰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리그 선발예선전에서 자꾸 떨어졌다. 최근엔 잘 이기고 올라가다 GS칼텍스배 본선에서 김승준 9단에게 또 졌다. 주목해 볼 만한 기사인데 2년 이내 큰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저물 수 있다.

이동훈은 1년 뒤면 굉장히 발전해 있을 것이다. 가령 한국리그를 이동훈이 뛰게 된다면 1년뒤에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현재는 김세동, 홍기표 등이 강하다. 특히 김세동이 은근히 강하다.

송태곤. 아 어쩔까. 뭐라 해야 할까. 누구한테나 지지만 그 누구라 할 지라도 또 이기는 스타일이다. 한 방의 실력을 그 누가 모를까. 어색한 비유지만 마치 전성기를 지나보낸 조훈현 9단같다. 상위랭커들을 잘 이겨내지만 하위랭커에게도 자주 진다.

김세동은 팬들에게 잘 안 알려져 있을 뿐, 은근히 강하다. 홍기표와 비슷한 레벨로 인터리그 선수들중에서 최강자급에 속한다. 이원도는 작년 한해 부진했는데 역시 강한 선수다.

- 10대기사들, 또 새로 입단한 기사들의 실력을 평가하면?
"다 세니까 입단했지. 그러니까 대하기가 까다롭다. 나이 좀 있는 기사가 너무 어린 기사를 만나면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두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그런 것도 약간 있다. 그렇지만 아직 전적이 별로 없어서 검증된 것도 없다. 장래를 보고 각 팀이 뽑은 거니까, 평가에 거품이 있을 수도 있다. 더 둬봐야 알 수 있다. 우리팀의 조인선 초단도 포인트 누적에 의한 최초 입단을 했지만 조금은 더 검증이 필요하다."


○●.. 나이많은 이무기들의 입단

바둑계의 '이무기'란 프로에 입단할 실력이 있으면서도 프로입단에 실패해 결국 나이제한에 걸려 연구생을 나온 아마추어 기사들을 뜻한다. '이무기' 기사들의 적체는 한국기원이 입단문호를 확대하는 한가지 이유이기도 했다.

박승철

본격적인 입단 체증은 최철한,원성진이 입단하고 나서, 85년생들이 입단한 후부터 더 커지기 시작했다. 최철한,원성진,박영훈이 입단할 땐, 그러니까 입단에 있어선 지금보다는 더 좋은 시절이었다. 어린 나이에 입단할 수 있었으니까. 또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입단해야 실력도 쑥쑥 늘고, 잠재력이 있는 기사들은 그렇게 큰다. 그러나 입단하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입단하면 당연히 발전도 늦어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세돌, 박정환, 최철한 등의 전성기가 더욱 늘어날 거다. 이건 정체가 심해서 최철한이 입단할 때처럼, 어린 나이로 입단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입단문호를 넓히고 영재입단을 허용한 것은 그래서 잘한 일이다.

- 새벽까지 술을 먹고서도 다음날 대국서 곧 잘 이겼다는 이세돌은 어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세돌 9단은 "밤새는 다음 날 대국을 잘 이긴다"는 소문으로 해서 많은 프로들을 실의(?)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어떤 면에선 노력보다는 재능이 우선 아닌가?

박승철
"이세돌이야 입단 후에도 바둑계 사람들 누구나 인정하는 블루칩이었다. 그러니까 이세돌이 술 좀 마실 때, 그때는 이세돌의 방황하는 시절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지금 박정환을 봐라. 이세돌이 그 당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그 몇 년간 정진했으면 바로 지금의 박정환이었을 거다. 방황한 시절이 있어 재능에 비해 늦게 핀 거다."

한종진
"연구생들이 프로기사가 되어 대성하는데는 연구생 자신, 부모, 그리고 좋은 선생님이 필수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게 자기 자신이고 그리고 부모님이다. 좋은 선생은 가장 마지막에 조그만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

○●.. 바이링배 출전여부

바이링배는 중국기원이 주최하는 두 번째의 세계대회다. BC카드배를 모델로 해서 본격 OPEN전 및 상금제를 표방하고 있다. 한국프로들은 이 대회 통합예선 참가가 가능하다. 물론 참가는 자비부담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기사가 중국 베이징에 예선참여를 위해 비행기에 오를지도 주목된다. 일본기사는 참여자가 적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박승철
"약간 고민이 된다. 가 볼까? 말까?, 일단 첫 대회니만큼 참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일본 선수들은 통합예선 참가차 베이징에 가는 걸 꺼릴 수도 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쇼핑의 편의 같은 것도 어느정도는 작용할 것이다. "

한종진
"통합예선에 중국측의 징글징글한 강자가 끼여 있을 수 있다. 나같은 경우 시간이 더 흘러가면 이런 강자들과 손을 섞을 기회가 없어진다. 그래서 무조건 가보려고 한다. "

○●.. 인터리그 전망

- 한종진, 박승철이야말로 스마트오로팀에서 승부의 핵심 아닌가?
"그런 말 옳지 않다. 인터리그의 승패는 결국 10대~20대 기사들이 낼 것이다. 시니어와 여류의 승수도 중요하다. 우리는 그 와중에 1승씩은 꼭 건져야 할 책임이 있다. "

- 혹시 프로가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있나?
"(박승철) 프로가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후회는 조금 든다. 바둑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고 노력했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것들. "

"(한종진)나 또한 마찬가지, 프로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니까 더 그렇다. 나보다 더 나은 프로를 키워내고 싶다."

- 스마트오로의 우승가능성은 ?
(한종진, 박승철) "1라운드에서 한게임을 이기면 우리가 우승할 가능성이 높다."